고식당109 광복절 전 날 삼시 세끼 오이가 하마터면 곱게 늙을 뻔 했으나, 남편놈 눈에 들켜서 우리 입으로 들어왔다. 남편놈이라 함은 순전히 전지적 오이 시점에서 말 한 거고, 내 감정은 아니다. 내가 오이였으면 그렇게 말했을것이다. 화분뒤로 늘어져서 몸을 숨기고 길쭉했던 다른 오이들과 달리 배 나온 스모선수들처럼 몸집을 불려가며 색깔도 늙은 오이들처럼 변해갈려고 하는 참이었다. 남편이 따 온 오이를 보고 내가 그랬다. "곱게 늙기도 어렵네" 화분 뒷 쪽으로 늘어져 있어서 낮은 포복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꼼꼼한 남편 눈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그렇게 늙어갔을지도 모른다. 가지에 달린 것만 오인줄 아는 내 눈에는 절대로 들킬 일이 없는 위치였으나, 옥상에 가면 텃밭 주변을 샅샅이 금광처럼 살피는 남편 눈은 피할 수 없었을테니 "오이야,.. 2021. 8. 16. 지중해식- 한우 스테이크 우리집 커피 집사님 남편이 이번 주에 가져 온 커피는 온두라스커피 커피의 쓴 맛보다 단맛과 부드러움이 지금까지 마신 커피와는 다른 맛이었다. 혼자서 연구하고, 어디서 줏어듣고, 실습해서 이제는 짝퉁 바리스타 정도는 되는 남편이 주말 아침에 내려주는 커피가 이 사람이랑 살아야 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된다. 커피 하나만 내려주지, 먹는 일, 식생활에서는 라면조차 자기가 하기를 꺼려하는 상남자중에 상남자지만 빨래도 남편이 하고, 분리수거도 남편이 하니 삼십년 가깝게 산 우리 사이에 이제는 니가 뭘 하네, 내가 이것을 했네 할 나이도 연차도 지난 지 오래다.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됐고, 여건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될 일 이걸 오래 전에 알았더라면 신혼 때 우린 덜 싸웠을까 모든 걸 알만하니 둘이 합쳐 .. 2021. 8. 1. 머위대 들깨 스프 '차'덕분에 알게 돼서 이용하기 시작한 '언니네 텃밭'에서 보내 준 삶은 머위대로 들깨가루넣고 스프처럼 끓였다. 언니네 텃밭 덕분에 내 의지로는 절대로 사지 않을 것 같은 요리 재료로 강제 요리를 할 때도 있다. 삶은 머윗대가 그런 요리 중 하나 우리 엄마나 시어머님은 명절 음식으로 해주시지만 내가 사서 해 먹고 싶은 마음은 안드는 요리 재료다. 우선 삶아서 껍질도 벗겨야 되고, 친숙하지 않은 재료이다보니 눈도 멀리 가고 손도 멀리 갔던 머윗대 가끔 언니들이 그런 요리 재료들을 귀신같이 알아내서 보내준다. 버릴수는 없으니-.- 냉장고에 들깨가루도 있고 해서 스프처럼 끓였더니 남편의 작은 눈이 또 반짝거렸다. 까나리 액젓과 마늘, 양파 청양고추,생새우를 넣고 볶다가 표고 가루 넣고 생수 붓고, 들깨 가루 .. 2021. 7. 20. 엄마없으면 얻어먹기 힘든 갈치 조림 쉽고도 어려운 갈치조림 생선은 언제나 해망동 배 들어 올 때 짝으로 사서 쟁여 놓던 엄마 덕분에 집에 늘 있는 건 줄 알고 살았다. 돼지고기 소고기는 정육점으로 엄마 심부름을 다니면서 내가 사 온 적도 많았지만 생선은 엄마가 주머니에 돈넣고 비장한 각오로 가서 매의 눈으로 고르고 흥정을 해서 손도 크게 짝으로 들여 놓으셨다. 잘 살아서 짝으로 사서 들여 놓은 게 아니라 엄마 입장에서는 목돈을 들여서라도 그렇게 사놓아야 반찬 걱정 안하고 생선 한 마리라도 우리한테 구워 줄 수 있으니까 그러셨던거다 싶다. 자식이 다섯이라는 건-.- 무서운 일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을것이다. 엄마 덕분에 생선은 원없이 먹고 살았다. 오죽하면 막내 남동생은 군대 가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엄마가 무친 꽃게 양념 무침이었다. 우.. 2021. 7. 20. 옹심이가 맛있어. 어른 입맛 된것같다 황토 흙이 아직도 밭 색깔 그대로 붙어 있던 햇감자를 미안하리만치 싸게 팔길래 사다가 반은 쪄먹고 반은 옹심이로 먹었다. 일요일 아침, 남편도 자고 있고 애들은 더욱 자고 있는 조용한 아침 사각사각 감자 가는 소리만 들리던 우리집 감자를 갈면서 육수를 중간 불에 뭉근히 내고 있었다. 먹고 싶은 것을 향한 내 집념도 참 무섭긴 하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전쟁통에서도 가마솥 걸 위인이 바로 나다. 주먹만한 감자를 일곱개 쯤 갈았더니 제법 큰 한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내 맘대로 밤톨만큼씩 뭉쳐놓고 한개는 썰어놓고 손이 많이 가는 준비는 이걸로 끝 엄마가 보내준 파김치가 팍 익어서 옹심이 먹을 때 남편 먹으라고 꺼내놨다. 나는 파김치를 안먹어도 남편은 김치라고 이름이 붙은 건 가리는게 없다. 옹심이만으로는 부족.. 2021. 6. 28. 무심한듯, 하지만 검나 신경 쓴 차돌박이 초밥 드디어 초밥 개시 일주일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아침시간부터 꽉꽈 채워서 쓰는 딸이 토요일에 온다. 휴학중이라 오전 시간에 늦잠자고 느긋해도 될 테지만 오전에만 하는 알바를 구해서 하루를 제대로 쪼개서 쓰고 있다. 토요일까지 아이들 렛슨하고 집에 오면 딱 저녁 밥 시간 남편도 남편이지만 일주일에 주말만 집밥을 먹는 딸을 위해서 한우 차돌박이 사고 계란 풀어서 설탕 소금 물 조금 넣고 믹서기에 갈아 푹신푹신하게 말이하고, 묵은지는 씻어서 물기 빼놓고 부추는 살짝 데쳐서 끈으로 쓰게 끔 준비 밥은 배합초로 버무려 김을 빼놓고 차돌박이는 딱딱하지 않게 구워놓기만 하면 준비는 끝 뭉쳐놓은 초밥 위에 와사비 쪼금 짜놓고 차돌박이로 둘둘 말아 부추 끈으로 돌돌 말아 차돌박이 초밥 완성 뭉쳐놓은 초밥 위에 와사비 올린 .. 2021. 6. 16. 연어 치라스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본 가정식 "연어 치라스시" 5월 31일 한시적 기간제 보육전담사 일이 끝나고 다시 시작 된 구직 활동 겸 전업 주부 생활 자신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떨어질거라고 많이 생각하지는 않았던 공무직 면접에서 똑 떨어지고 보니 현실이 제대로 보여 두 번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없다못해 도전 하고 싶은 용기마저 없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또해볼지도 모른다. 나는 나니까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해서 먹는 일본의 가정식 "치라스시" 치라스라는 동사에 스시를 붙여서 흩뿌리다+초밥의 두 단어가 합해진 뿌려먹는 초밥의 의미 정도 된다. 3월 3일 여자 어린아이들을 축하해주는 히나마쯔리에 해먹는 축하 음식이기도 하고 파티등에 내놓는 음식이다. 화려하고 보기좋고 맛도 좋은 음식이고 가성비도 좋고, 어렵지.. 2021. 6. 6. 금요일은 빨간 맛 한 주가 마무리 되는 금요일 저녁은 잠 자기도 아까운 기분이 들어 밥을 먹고 남편이 내려주는 드립 커피를 카페인 신경쓰지 않고 마셔 버린다. 일찍 들어 온 큰 애까지 금요일 저녁이면 밥공기가 두개였는데 모처럼 세개다. 항상 다섯개의 밥공기가 있던 때도 있었는데 다섯이 머리 맞대고 밥 먹을 일이 한 달에 한 번이면 많은거니 이제는 남편 만 우리집 식구거니 하고 살아야 될 것 같다. 석달 동안 일하는 대체 전담사로 들어가긴 했지만 여차저차하면 조금 더 연장해서 일할 수 있지 않을 까 했는데 복직하기로 한 전담사가 6월 1일자로 복직을 한다는 통보를 금요일 오후에 받고 잠시 마음이 허전했다. 다음 주 일주일만 하고 그만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안해도 되는 걱정거리들이 마음에 쓰였다. 화장실만 갔다하면 삼십분은 .. 2021. 5. 23. 이전 1 ··· 4 5 6 7 8 9 10 ··· 14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