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목욕"
어제 일을 오늘 편히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축복이다.
하루가 지났다.
우리 딸이 시험을 봤던 대학교의 입학 상담 게시판은 지난 주 금요일부터
"조기발표" 네 글자로 도배가 되어져 있었다.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번주 월요일에 나올 결과
미리 알고 정신을 다 잡겠다는 것이니 그들의 요구가 그다지
무리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으나
이 놈의 학교
"철옹성"
정해진 대로 월요일 오후 5시에 발표하겠다는 공식적인 언급만 답변에 적어놓고
꿈쩍도 없이 주말이 지나갔다.
머리가 한 쪽만 아파오기 시작한것이 금요일 오후부터였다.
오른쪽 머리 힘줄이 튀어나올만큼 두통이 심해서 머리를 누르고 다니는 것도 내 일중의 하나였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간다" 라는 삶의 법칙은 언제나 옳다.
아파도 힘들어도 죽을만큼 초조해도 아무리 궁금해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만 토요일도 가고
일요일도 가고 월요일이 오는 것이다.
월요일이 되자 아침부터 학교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지만 오후 발표 그것도 5시에 한다고
참 융통성 1도 없는 학교
작년에 떨어졌던 학교는 정각 여섯시에 발표를 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여섯시에 퇴근 시간이니 발표의 결과를 다른 이에게 드러낼 일 없이
자신의 감정을 처리 할 수 있을 테였지만 문화센터 수업은 대부분 직장인 위주 시간대여서
내 수업은 여섯시부터였다.
시험이야 붙은 사람있으면 떨어진 사람도 있을테니
떨어졌다고 땅이 꺼질것처럼 비틀댈 일은 아니었지만 울면서 전화하던 딸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그 아이에게 가지 못하고 크게 돈도 되지 않는 일을 해야 했을 때
나는 그 학교의 발표 시간 여섯시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겐 잔인했던 여섯시
하지만 회원들은 하나 둘 들어 왔고 한 시간동안 나는 노래도 불러주고 가르쳐도 주면서
내 마음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수업을 했지만
그날 딸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일도 싫고 엄마 차를 타고 오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혼자 하루를 보냈다.
주말부부를 할 그때였고 아들도 딸도 기숙사에 있을 때라서
그때는 주말 부부를 할 때였고 위의 아들도 막내 딸도 기숙사에 있을 때라서
나도 집에 혼자 있었다.
그날은 내 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딸이 쓰던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왜 그러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애 침대에서 잤다.
편한 잠을 못 자고 뒤척였던 것 같고 생각이 많은 하루를 보냈던것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년이 조금 못된 시간이 흘렀다.
월요일 학교 수업도 집중하지 못한 체 발표에 신경을 쓰다가
수업이 끝나갈 무렵 살짝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결과가 떠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수험번호 (딸도 모르는) 집어넣고 클릭해보니
뭐라고 뭐라고 글씨가 써있는데
참으로 난감한것이 수험생 정보 박스 안에 무슨 글씨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아래 부분에 써 있으니
이 말이 우리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공지사항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난독증"
결국 핸드폰 확인을 포기하고 수업을 한 학교에서 선생님 컴퓨터로 확인하고
선생님이 수업을 했는데도 가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신기해서
컴퓨터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1학년 2학년 애들과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다.
딸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더니 정말 시크하게 전화를 끊더니
나중에 혼자서 울었다고 했다.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해서는 할머니도 울고 자기도 울었다면서
엄마 근데 나는 떨어진 애들 마음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서 철든 소리를 했다.
그게 이 아이가 일년 재수 한 결과물이구나 싶었다.
자기가 붙었으니 누군가는 떨어진 현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이젠 좀 보이는 거다.
모처럼 저녁 늦게 딸이랑 둘이 동네 목욕탕에 가서 심야 목욕을 했다.
작년에는 둘이 심야목욕을 자주 다녔었는데 올 해는 심야 목욕이 처음이었다.
마음이 편했다.
작년에 목욕 다닐 때는 목욕 후에 다시 동네 피아노 학원으로 연습을 갔고 나는 기다렸다가 데려오곤 했었는데
어제 만큼은 그냥 목욕하고 집에 와서 편하게 잤다.
아직 다른 학교 입시가 끝난게 아니라서 사실 입시가 다 끝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이 이렇게 편할수가 없었다.
어차피 11월 넷째주가 되면 다 끝난다.
하루 종일 묵주기도를 하다가 "환희의 신비" 삼단에서 합격을 확인했고
이후 남은 두단은 떨어져서 마음 아파 할 아이들과 엄마들을 위해서 기도를 바쳤다.
우리 아이가 합격했다고 전했을 때 자기 일처럼 좋아하면서 울던 친구 엄마
재수를 했던 아들의 합격을 확인도 못했다던 어리버리 선생님
자기만의 마음의 온도로 충분히 표현해주던 사람들의 따뜻함이
월요일 오후 내 마음의 풍경화다.
화요일이 되었다.
일찍 렛슨을 받으러 서울 간 딸 - 여전하다 무거운 악기방 매고 검정 추리닝을 입고
늘 같은 인삿말을 하면서 현관을 나서는 남편 ("우리 가족 오늘도 화이팅" ) - 참으로 식상하다. 멘트의 다양성이 부족
자고 있는 아들 - 도대체 이 자의 수업은 늘 오후란 말인가 -.-
막내는 하루를 미리 예측하면서 입을 좀 뚜하게 내밀고 "엄마 가자" 한다. (항상 내가 데려다 주기 때문에)
목욕후의 개운함과 짐을 내려놓은 마음의 가벼움만 있을 뿐
달라진건 별로 없다.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이 그냥 그렇게 이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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