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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그럭저럭 일요일"

by 나경sam 201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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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생일이라니

헐이다 진짜

십년만 있으면 환갑이다.


들어도 믿기지 않는 내 나이

오십 아줌마의 생일이 별거있겠는가


평상시처럼 성가대 연습후에 주일미사 보고

집에 와서 가족이랑 자장면 먹고

서울에 둘째 데려다 주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서 신나게 잤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서는 잠을 자줘야 한다.안그럼 아직도 운전스타일을 가지고 싸우기때문에)


스물 일곱 결혼 전 면허를 이미 땄던 나는 아버지의 프레스토로 동네 운전정도는 몰래 했던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후 차를 산 후로 면허가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운전을 하고 다녔다.


물론 남편은 내 옆에서 조신하게 타고 다녔고

큰애 태어난 후 까지 면허가 없던 남편은

 뒷자리에서 아이 안고 다니느라 참 고생이 많았었다.


특히 큰 애는 분유먹고 잘 토하는 아이여서 차타고 가다보면

남편 옷에 웩하고 넘기기 일쑤였고

그런 채 시댁으로 들어가면 나는 괜히 잘못한것도 없이 잘못한 사람이 되어

불편한 상황이 되었고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면허를 꼬옥 따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십 삼년 전 남편의 시골 동네에서 며느리가 운전하고 다니는 집이 우리 시댁의 나밖에 없던 때라

어머니는 아들이 운전하지 않고 며느리 차를 타고 다니는 걸 참 못마땅해하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우리차

파란색 세피아는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차"라고 했고

그건 아마도 아이들이 뭔가를 인지할수있을 만큼

자랐을때 엄마가 운전하는걸 많이 봐서 그렇게 말을 한 것 같다.


애들이 셋 되었을 때 드디어 남편은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로 운전대를 좀처럼 내주지 않았다.

뒷자리에서 아이셋 수발드는것보다 운전이 훨씬 나은 일이었으니까

운전이 육아보다 쉬운 일이라는 것을 이미 큰 아이때 몸으로 체험했으니

남편은 절대로 다시는 뒷자리로 내려 오질 않고 앞자리를 지켰다.


(누구든 자리란 그렇게 한 번 앉으면 끌어내리기 전까지는 버티려고 한다. 촛불을 들어야만 내려오는 법 )


그래도 살면서 운전으로 할 수 있는 큰 건은 다 내가 다하고 다녔으니

대구에서 살다가 남편이 발령이 나서 전주로 이사를 갈 때도

남편이 먼저 전주에 가있어서 혼자서 세아이 데리고

밤중에 팔팔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대구에서 전주까지

운전도 하고 왔고

( 급히 이사를 하느라 풀무원 녹즙을 끊지 않고 온 일이 생각나서 다음날 전화해서 끊었던게 생각난다)

우리가 살았던 곳

전주 대전 대구 제주 춘천 지금 수원까지

차의 주행거리를 올린건 다 내가 한 일이다.


입시를 치른 피곤함과 긴장이 풀린 일요일 오후는

생각없이 낮잠을 자게 했고

나는 그게 나에게 주는 선물같았다.


 침대 아래 깔아둔 얇은 전기장판 한장이 주는 선물같은 따스함은

전업주부로 세아이를 키울 때 아이 셋이 한꺼번에 낮잠을 자던 기가막힌 타이밍이

찾아오면 그 옆에서 몰래 누워 아이들 침냄새를 맡으며

고양이잠을 자던 때처럼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떨치고 한숨의 잠을 자게 해주었다.


남편이 준 얼마의 생일 축하금은

다 나갈 자리보고 들어온 돈이라

딱딱 자리찾아 제 갈 길 가고

가방안에는 반의 반도 안남아있지만

어딘가에 다 알맞게 쓴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썼고


낮잠뒤에는 또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결 나아진 마음


꽃을 사들고 온 자식이

꽃보다 더 예쁘게 웃어주니

이만하면 오십 생일도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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