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랭카드 내돈으로 열 개 쯤 골목마다 달아놓고
싶었던 때가 열흘 전 같은데
졸업 연주회라니.
재수할 때는 오공본드로 시계바늘을 딱
붙여놓은것처럼 가질 않더니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시계바늘에 누가 참기름칠을
해뒀는지, 쭉쭉 잘도 가서 한학기 휴학을 했음에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018년 입학식에 갈 때 온 가족이 가서
기념사진 찍고 나 혼자만 서울대 입학생 딸을 둔 것처럼
가슴이 벅찼는데
현실은 위 사진과 같다.
입학식이 명절 전 날 마트처럼 꽉 차서 걷기가 힘들었고
서울대에 붙은 애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가서 보고 알았다.
서울대 가서 보면 발에 치이는게 서울대생이지만
남편이나 나나 지방대 나와서 서울대 입학식과 졸업연주회까지
갔으니 이번 생은 이만하면 잘살았지 싶다.
졸업연주 프로그램이 입으로는 악기를 불지만
속으로는 욕이 나올만큼 힘든 곡들이라서
입시때처럼 새벽까지 연습하고 너무 힘들었다는 딸에게
우리 부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연주회 당일 로드 매니저밖에 없었다.
아침에 봉천동 원룸에서 8시반에 태우고 압구정으로 넘어가서
드레스 가봉과 메이크업, 헤어까지 하는 동안
기다리는 부부 매니저는 스타벅스만 두 번을 갔다.
압구정을 화서동처럼 걸어다니면서
점심도 먹고 커피 두 번 마시고 골목 구경을 하면서
여유를 부렸지만
한시간 주차비 9,000원인 동네를 얼른 빠져나가야지
동네가 주차비부터 싸가지가 없어-.-
일년전부터 적금을 들었단다.
졸업연주회 준비하려고
연주봐주러 오는 애들 뒷풀이 비용부터 드레스,헤어 메이크업
모두 자기 돈으로 낸 딸은 졸업연주회 준비하면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학교에서 연습하면서 5시 반 연주회 준비하는 딸을
음대앞에 내려 놓고
봉천동 원룸에서 남편이랑 나랑
딸 방을 쓸고, 고장난 전구 사다 끼우고
욕실을 닦아놓고,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놓고
분리수거까지 한 다음 연주회보러 다시 학교로 가서
우리는 청소같은거는 안했다는 말짱한 얼굴로
슈만을 듣고, 현대곡을 들으면서 졸업연주회를 봤다.
유치원 때 학사모 사진이 졸업 학사모로
바뀔 날도 몇 달 안남았다.
은진이가 우리집 마지막 대학생
남편이나 나나 참 애썼고
연주회 잘 해 낸 유은진도 멋졌던 졸업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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