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할머니 문자가 왔다.
하수구가 역류합니다. 물 쓰지 말아주세요.
우리집 처럼 다세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원리가 이렇다.
할머니는 우리집에 만 2년 채우고 삼년 들어가는 세입자인데 할머니 세대인
102호가 공동배관과 가장 가까운 라인이다보니
배관이 막히면 할머니집으로 화산 폭발하듯 뽀글뽀글 역류현상이 일어나고
7년 전에 처음 그런 걸 봤을 때는 무조건 고치는 아저씨를 불러
5만원 주고 뚫어를 했지만
이제는 우리집 도련님이 장비를 가지고 내려가서 하수구를 뚫는다.
5만원씩 주고 뚫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막히는게
반복되는 일상이라 집주인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에 대해서
이제 남편도 나도 개념이 생겼고 궁리를 찾았기때문에
세입자들이 민원을 제기해도 그전같으면 가슴이 철렁, 새가슴이었으나
이제는 장비들고 내려가서 뚫는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은 주중에 집에 없는
운좋은 사람
나는 집에 있는 상시 거주자
하수가 남편을 너무 사랑하여 주중에 넘쳤다.
아들이 뚫었고 내가 두 번을 뚫었고
남편보다 기술이 딸리는 아들과 나는 완벽하게 뚫지 못했고
비가 퍼붓던 밤 10시
할머니가 신경질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잠시 괜찮더니 또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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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라고, 저쩌라고 어쩔티비다 돌봄 애들 말로
할머니집 가서 확인해도 그 빗속에 뚫지는 못합니다.
아침에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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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하수구 한 번 뚫고 출근한 나는
일주일에 세 번 하수구를 뚫고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고성으로 시합을 나간 셋째도 몸이 힘들고 시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며 전화가 왔다.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 별로 없었다.
늘 해가 나는 것만은 아닌게 인생이니
잘 안될때는 버리는 카드로 생각하라고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으니 이번 건 버리라고
엄마는 늘 잘 뛰는 수민이만 자랑스러운게 아니라
성적이 안나올 때의 수민이도 자랑스럽다고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은 다 해줬지만
위로가 됐을까싶다.
주말이 오고 진짜로 시원하게 하수구를 뚫을 수 있는
남편이 오는 날이다.
힘든 경기였지만 끝내고 수민이도 김포로 돌아가고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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