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작은 트렁크에 짐을 꾸려서 구미로 갔던 셋째가 마지막으로 집에 올라왔다.
여름, 가을에는 하계 동계 전지 훈련이 있어서 못 오고, 정기적인 시합에도 참가해야 돼서 못올라올 때도 많았지만
멀미를 참고서라도, 아빠, 엄마, 생일에는 어떻게든 올라왔던 귀여운 우리집 소녀
졸업 전에 숙소를 나와서 다른 팀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실제로 구미에서 수원집으로 올라오는 마지막 주말이
지난 주였다.
이제는 우리가 내려가서 수민이 짐을 다 꾸려서 데리고 올라와 다른 팀으로 다시 데려다 줘야 되는 일이 남았지만
기쁘게 할 수 있는 일들만 남았기 때문에 2017년 수민이를 놓고 올라오던 차 안에서처럼 울일은 없을 것이다.
수민이 짐을 내려줬던 구미 선수단 숙소는 참으로 삭막했었다.
실내 체육관 윗 쪽에 선수단 숙소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집도 아니고, 숙소가 아닌 것 같은 애매한 포지션의 숙소가 마음에 걸려서
상당히 어질러진 숙소안의 방이 마음에 걸려서
그날따라 추웠던 날씨가 마음에 걸려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아이를 두고 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울면서 올라왔었다.
성모님께서 모르셨던게 수민이가 육상선수가 되는 것 뿐이셨을까
은진이가 지금처럼 예뻐질것도 모르셨을테고
승범이가 성당의 지휘자가 될 것도 모르셨을거다.
우리 모두 저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다.
우리 모두의 성장에 대해서
토요일 아침, 수민이랑 함께 성북동 길상사로 단풍 구경을 하러 갔다.
성북동 집들은 담들이 어찌나 높던지, 회장님 집들은 성북동에 있다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던
집들과 대사관들이 모여 있어 대사관길로 쓰여진 주소들이 수원 화서동에서 간 우리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나, 낯설었던 성북동 풍경과 길상사의 단풍은 행복한 토요일의 선물이었다.
성북면옥에서 회냉면과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오색만두를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성북동 빵공장에서
마늘 바게트를 사고 잠시나마 법정스님의 낡은 옷을 보고 넘치게 살고 있는 나를 반성하고
"절대로 간소하게 살 것, 날마다 버릴 것"이라는 법정스님 말씀에 감동도 받고
수민이를 끼고 다닌 토요일 오후는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선물같은 하루였다.
일요일 저녁엔 남편의 생일 파티를 아주 시끄럽게 해주고
새우도 부치고, 정봉이네 집에서 먹을 것 같은 옛날식 샐러드도 한 접시해놓고
찜닭에 미역국에 옹심이 넣고 끓이고, 조기굽고, 생일 상 차리느라 두 시간 넘게 서서 청주 도련님 생일 상을 차렸다.
남편 - "생일이 일 년에 두 번 있으면 좋겠다. 너무 좋아"
![](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ace/large/042.png)
힘들었어도 도련님이 좋다고 하면 그걸로 됐다.
동생 생일이 바로 앞 날이라서 자라면서는 새 미역국은 못 먹었을게 분명하니, 미역국도 해마다 팍팍 한 솥 끓여주고
케잌속에 돈도 더 많이 찔러넣어서 생일때마다 더 웃게 만들어야겠다.
돈은 애들이 넣었으니까, 미역국만 내가 잘 끓여주는 걸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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