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까지 달고 있는 걸 보니 엄마도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하긴 다섯을 건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고, 나하고
바로 아래 여동생을 빼놓고는 나머지는 전부 엄마 손을 타는 어린것들이었으니
엄마가 이름표 달려 있는 걸 못보고 안떼준것도 이해가 된다.
사진속의 나도 이름표 달려 있는 걸 스스로 뗄 나이로도 보이지만, 이름표는 그냥 옷처럼 달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늘 달고 다녔던 이름표 덕을 본 적도 있었으니
학교 운동장 옆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놓고 고무줄을 한 다음, 윗 옷을 나무에 걸어놓고 집으로 왔는데
어떤 애가 윗옷에 붙어있던 이름표를 보고 우리 집으로 가져다 준적도 있었다.
저녁 먹다가 이름표 달린 내 윗옷을 받고서야 옷을 나무에 걸어두고 온 줄 알았으니, 덤벙대기가
아마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 1등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첫째라고 나는 언제나 새 옷을 입었다.
우리 엄마가 옷 하나는 동네에서 안빠질만큼 입혔는데, 엄마는 촌 아줌마였음에도 내 옷은 때로는 과감하게
입혀서 어린 마음에도 부담스러웠던 때도 있었으니, 1학년때 입었던 망토가 그랬다.
옷위에 걸쳐서 입는 망토는 뜨개질로 된 소재였는데 방울이 두개 달려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책에서 성냥팔이 소녀가 길거리에서 "성냥 사세요"를 외칠 때 입고 있던 옷 모양 같기도 하다.
엄마가 옷위에 입혀주면서 망또라고 해서 한글도 완전히 모르던 나는 망또를 알게 됐고
망또처럼 생긴 옷은 내 눈에 한 명도 입은 애가 없어서 망또를 입은 날은 뭔가 부끄러워서
벗어서 어딘가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엄마는 망또를 입혔을까
엄마가 멋쟁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엄마는 늘 월남치마만 입고 있었으면서
(월남이 무슨 말인줄도 모르고, 엄마가 입는 고무줄 긴 치마를 월남치마라고 불렀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어린이였다.
큰 아이가 받는 혜택이라면 혜택이었을것이다.
늘 새옷을 입었고, 내가 입었던 옷은 셋째까지 입고 끝났다.
그걸 사진이 증명해주고 있다.
어린이날이면 항상 똑같은 장소였던 군산 월명공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고, 공원 아래에 있던
태극당 빵집에서 빵을 먹었고, 바나나 우유를 먹었었다.
처음 먹었던 바나나 우유의 비릿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셋째부터 다섯째가 아직 어린이였을 때는 어린이날 유원지는 월명공원에서 은파 유원지로 바꿔졌고
동생들의 어린이날 사진은 은파호수공원 사진이 해마다 같은 포즈로 찍혔다.
어린이날이라 집에 온 남편에게 어린이날 기억이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어린이날이라고 덕진공원에 시어머니랑 딱 한 번 갔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자기는 축구공이 갖고 싶어서 사달라고 했었는데 시아버님은 돈은 있었어도 아이들한테 그런 걸
사줄줄 모르셨던 분이셨다.
축구공이 진짜 갖고 싶었다는 남편에게 지금이라도 축구공 사주고 싶지만
뭐든 다 때가 있는거라며 우리 둘이 나눈 말이다.
남편한테 십만원을 줬다.
어린이날이지만 어른이인 남편에게 주고 싶어서 내마음이 그러고 싶으니까^^
둘이 칠보산 등산하고, 점심으로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승범이 옷 맡긴 거 세탁소에서 찾아오면서
아이스크림 한 개씩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우리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었고 지금은 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이이지만 언젠가는 노인이 되겠지
그때는 또 오늘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아버지가 안 사준 축구공처럼 되고 싶지 않으니 큰게 아니라면 자식이든 남편에게든
다 해주고 싶다.
살아보니 뭐든 때가 있어서 그 때를 지나치면 아무리 원했던 물건도, 마음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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