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답서스가 아사 직전으로 늘어져 있고 칫솔걸이에 물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는 게
내가 없었던 집이 틀림없었다.
스킨답서스가 비록 사막을 건넌 것처럼 잎이 늘어져 있었지만 아예 죽은 건 아니라 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줬더니 다음 날 아침 다시 쌩쌩해졌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승범이한테 물 잘 주라고 일러놓고 갔는데 걔가 원래 그래"
칫솔걸이 물 때를 박박 닦고 청소를 하고 난 다음 제주도에서 사 온 전복을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집 밥 시작
전복죽 전복 미역국 전복 버터구이 오이무침 진미채 김치
모양 있게 차리지는 못했지만 저게 집밥 고선생 한 달만에 차린 집밥이다.
내가 밥 하나는 저엉말 열심히 차려주는 엄마 쥐
"새벽 한 시에 엄마 배고 파"
"그래 알았어 잔소리 한마디 없이 금방 삼겹살 굽고 오이도 무쳐서 한 상 차려주는 엄마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우리가 몇 시에 밥을 달라고 하든 밥 하나는 잘 차려주는 엄마였다.
"엄마 밥" 까지만 하면 벌써 서서 뭘 만들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엄마 집에 가 있으면 "뭐 먹고 싶어 말만 해라" 그런다.
내가 밥에 관해서 우리 엄마한테 지금까지 고마운 게 내가 고3이었을 때 토요일 자습에 점심 도시락을 싸서
동생한테 들려 보내 준거다.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우리 엄마는 토요일 점심은 집에서 따뜻하게 만들어서 바로 아래 여동생한테 들려서 보냈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고 살았었나 싶게 그때만큼은 대접받고 살았다.
아마 우리 집 첫 고 3이어서 그랬었나
여동생이 가져오기도 했고 딱 한 번 우리 엄마가 직접 가지고 왔던 도시락은 밥이 아닌 쫄면이었다.
1986년도에만 해도 집에서 쫄면을 해서 먹는 집은 드물었지 싶지만 뭐든지 만들기 좋아하는 엄마는 집에서
쫄면도 만들어 주셨다.
그때는 대형슈퍼가 많지도 않고 식재료가 잘 갖춰진 슈퍼는 더군다나 드물었을 때라 엄마가 쫄면을 사려면 시장의
제면소에 가서 쫄면을 몽땅 사다 놓고 우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해주셨다.
엄마가 쫄면을 만들어서 뚜껑 있는 찬합에 담아서 우리 반으로 가져왔고 앞 문에서 용감하게 나를 부르고
"쫄면 가져왔다"라고 하자 우리 반 애들이 우리 엄마 찬합을 받아와서 뚜껑을 열고 모두 달려들어 먹어버렸다.
학교 앞 소녀의 집에서 500원 하던 쫄면도 용돈이 없어서 잘 못 사 먹던 때였다.
내 도시락을 애들이 다 먹어 버렸다고 엄마가 한 번 놀랐고
엄마 눈에는 반 애들이 전부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을 3학년 6반 우리 반 애들이 모두 개처럼 보여서 놀랐을 거다.
아직도 가끔 그때 얘기를 하신다.
"느네반 애들이 몽땅 달려들어서 찬합 뚜껑 열고 쫄면을 먹어버려서 너는 먹지도 못했지, 나 진짜 깜짝 놀랐었다"
나는 몇 젓가락 먹지도 못하고 끝난 쫄면 한 찬합
딱 내 것만 해오지도 않아서 찬합 한가득이긴 했지만 그때 우리 반 애들이 전부 달려들어서 먹은 것처럼 내 기억에도
우리반 애들이 모두 달려들어 먹은 것 같았던 쫄면 도시락
우리 엄마 닮아서 나도 애들 밥 하나는 잘 차려주는 食母다.
뭐 해달라고 말만 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차려준다.
연습실 갔다가 새벽에 오는 아이들이라 애들이 배고픈 시간은 주로 새벽 한 두시라서 새벽에도 삼겹살 굽고
오이 무치고 찌개도 끓이고 새 밥해서 준다.
食母맞다.
내가 애들의 食母인 게 나는 좋다.
승범이가 밥을 먹고 나서 피자를 사러 나갔다.
"엄마가 온 게 맞네 엄마 밥 먹으면 뭔가 허전한 게 피자가 당겨"
비싼 밥 먹고 싼 피자를 사러 나가긴 했지만 피자 먹고 싶음 먹어야지
내가 "삼시 세 끼"를 좋아하는 것도 남이 밥 먹는 것 해 먹는 과정을 보다 보면 그게 나도 모르게 힐링이 되어서다.
밥 한 끼 해 먹자고 장작불에 불 피우고 아궁이에 솥 거는 모습을 보면 먹고사는 일이 참 대단하다 싶고
그 소소한 일상이 행복감을 준다.
어제부터 시작된 삼시세끼 죽굴도 편을 보면서 콩나물 밥도 해먹고 싶어졌고 수제비도 해먹고 싶어졌다.
피가 끓는 食母 본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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