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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나를 위로하기위해 나를 선택했다"

by 나경sam 2020.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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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사표를 냈고 마무리로 다니고 있는 지금

짧지만 불꽃처럼 튀었던 용광로 같았던 생협에서의 직장 생활은 짧은 몇 마디의
형식적인 사직서의 단어들로 끝맺음이 되었다,

시작하려는 자는 말이 길고 끝내는 자는 말이 짧을 수밖에 없다.
입사를 지원하는 자의 자기 소개서는 길지만 사직서의 말은 한 줄이면 되듯이

금요일 파란을 겪고 내린 월요일 사직서
사직서 한 장 제출
했더니 어깨에 짊어진 가방 내려놓듯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전 같았으면 조합원 입장에서 들어줬을 일도 월요일부터는 안되는건 안된다고 NO
특히 배송 문제
사직서 한 장 냈다고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조합원들의 요구에 거리낌없이 NO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사직서의 힘!!

조합원 “이거 배송되죠.사과 여섯박스”
나 - (사표 낸 여자 )“아저씨 차가 승용차라서 여섯박스눈 무리예요. 한 박스라도 들고 가세요”
아니면 한 박스는 사지 마시든지
조합원 “아니 사과가 너무 좋아서 안살수가 읎어. 알겠어요 한박스는 내가 들고 가지 뭐”

월요일
“이런 사과 또 없습니다” 로 시작 한 장문 문자로 사과 20개 sold out
사과 5Kg 20개 입고 월 화 이틀에 걸쳐 20개 완판
물론 문자때문이 아니라 사과의 품질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월요일 바른두레 생협의 베스트 생활재로 등극했지만 그래도 주문한 물건이 잘 팔려나가면 그 또한 판매의 깨알 재미

하지만 스트레스는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급기야 이것이 바로 연예인들이 걸린다는
“공황장애”가 아닌가 싶은 증상을 두 번 정도 자각증상으로 겪고 사직서를 냈다.
나 알고 보니 “연예인였나봐”

사직서는 곧 힘
똑같은 조합원에 똑같은 사람이 점장을 하고 있는데 태도가 바뀌었다.
하루에 열건 이상도 받았던 배송을 딱 열건으로 잘라서 받으려고 기준을 잡고 났더니
오전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그전같았으면 매출 욕심이 열다섯건도 받았었는데 그렇게 되면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서 배송 아저씨나 우리나 배송사고를 일으키기가 쉽다.
하지만 그걸 딱 잘라서 몇 건이라고 하기가 애매한게 줄서서 물건을 사는 조합원들이
배송을 해줘야 이걸 산다 라고 말할 때는 마음이 흔들릴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누구야 사표 낸 여자라규“

조합원 “사과 여섯박스 배송해줘요”
나 “안되요 여섯박스는 너무 많아요 한 박스라도 들고 가시던가 아니면 담에 더 사세요”
조합원“ 그럼 한박스는 내가 들고 갈게 배송해줘요”
사과 다섯박스나 여섯박스나 그게 그거지 하겠지만 그전 같았으면 당연히 여섯 박스 다 배송을 원했던 조합원도 내가 안된다고 하니 본인이 한박스는 들고 가겠다고 양보를 했다는게 POINT !!
한박스를 두고 붙었던 타이틀매치에서 판정승으로 내가 이겼다.

조합원 “이거 배송해줘야지 안그럼 나 이거 다 못들고 가서 못사 배송해줘”
나 “안됩니다. 배송건수가 다 찼고 기준이 없으면 서로 힘들어져서 이제 더 못받아요”
조합원 “그럼 나 이거 안살거야”
나 “네 그러세요.들고 갈 수 있을만큼만 사세요”
이 건도 그전 같았으면 매출 더 올리고 싶은 마음에 해드린다고 사시라고 했을텐데
내 편에서 거절했다.
그 분이 더 사려고 했던 물건 5만원 이상 타이틀매치에서 또 이겼다.
졌다 이겼다는 내 식의 표현이고 양보해준 조합원들도 배송 안해줬다고 해서 삐지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내가 너무 나를 조합원에게만 맞췄기 때문에 결국 사직서를 빨리 낸거다.
그런 식의 스트레스가 쌓여서 힘들어졌을 수도 있었다.
물론 밀려드는 물량의 부담이나 판매의 책임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어쨌든 사직서는 제출했고 나는 마무리만 잘 하면 되지만 금요일까지는 미친듯이 열심히 매출을 올리고 장렬히 퇴사하고 싶어졌다.

어제는 애증의 에브리봇 엣지를 지인찬스로 네 대나 팔았다.
생협 역사에 남을 점장이 되었다.
아마 나만큼 많이 판 점장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명품 장대굴비가 들어왔다.
20미에 10만원이 넘었으니 비싸기도 비싸서 매장에 주문 넣기가 두려워지는 물건이었다.
한 개는 예약이었고 한 개가 숙제
문자로 보냈더니 한 분이 관심있게 전화를 하셨다.
언제나 꼬장꼬장한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다.

조합원 “그거 좋아?.굴비”
나 “그럼요 물건은 확실합니다”
조합원 “그럼 빼놔 이따 갈거야?”
나 “네 뒤로 빼놓겠습니다”

우리 둘의 대화는 딱 이랬다.
그리고 위풍당당 우리 카리스마 조합원 등장
조합원 “가져와 봐”
나 “명품은 장갑끼고 가져오는 거 아시죠”
명품백 들고 오는 백화점 직원처럼 장갑을 끼고 굴비를 들고와서 조합원과 명품놀이
나 “보세요 물건은 확실합니다.색깔 보십쇼 뒷쪽도 확실합니다”
조합원 “알았어. 줘”

이제야 나의 개그코드가 통하기 시작했는데 사직서를 내다니-.-
카리스마 조합원과 개그를 치면서 굴비를 보여드린 덕에 옆에 계시던 조합원이 본인도 사시겠다고 순식간에 굴비를 또 팔았네

월요일 입고 된 비타민 대용량도 오늘 열 개나 팔아치웠다.
어제 사간 조합원이 대량 구매를 원하신다고 전화를 하셨다.

조합원 “제가 몇 개나 살 수 있을까요”
나 “숫자를 말씀해보세요”
조합원 “아니 점장님이 먼저 말해주세요”
나 “그럼 둘이 숫자 한 번 맞춰볼까요 열 개 어떠세요”
조합원 “네 좋아요 콜”

이렇게 말을 잘 들어주는 조합원들이 이제 생겨났는데 사직서를 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선을 확실히 긋고 일을 했더라면 피로도가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알고 봤더니 간장그릇이었는데 내가 대접인줄 알고 물을 퍼부어댔던거다.
내가 나에게
누구 탓도 아니다.

늘 늦었던 퇴근
일주일 남겨놓은 지금은 될 수 있으면 여섯시에 나서서 퇴근을 한다.
퇴근길 브런치에서 본 제목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
이렇게 멋진 제목이라니. 한 줄의 명언이다.
사직서의 짧은 사퇴의 변이 비타민이 되주듯이 퇴근 길에 만난 한 줄이 깨달음이다.

어제는 제주도 행 티켓 구입
편도로 하하하
편도로 티켓을 끊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지 싶다.
서귀포로 한 달 살러 갈 예정
뒹굴거리다가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고 책을 열권 쯤 가져가서 읽고 올 예정이다.
내가 없어도 특별한 일없이 세상은 굴러 간다는 걸 일본에 가 있을 때 알았다.





제주도 한 달 살이
4월
새로운 나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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