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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서귀포일기

"오 나의 제주"

by 나경sam 202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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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다시 만난 연심 언니 엊그제 보고 다시 만난 것처럼 어쩜 그대로냐 이 언니 어쩔껴"

연심언니가 내 블로그를 안보니까 맘 놓고 얼굴을 저렇게 공개하고 - 알믄 난리날끄라 ㅋ

2003-2005년 제주 살이에 연심언니 학교 동기로 만나서 나에게 제주하면 떠오르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애들 키우면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전문대학 음악과에 다시 들어가서 말도 못하게 고생하면서 2년을 보냈다.

외워지지도 않는 나이에 악보보고 외워가면서 젊은 애들 앞에서 향상 곡  덜덜 떨면서 치고 중간 실기 기말 실기

덜덜 떨어가면서 보느라 퍽이나 애 써가면서 2년을 다녔었다.

누가 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했겠나! 뭐든지 자발적 의지라는게 가장 무섭다.

 

체르니 40번의 10번쯤 치다 어설프게 그만뒀던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서 우리 애들은 내가 가르쳐야겠다는

참으로 바람직한 마음으로 가볍게 들어 간 학교였으나 아직 어렸던 애들 키우면서 집안 일 하면서 다시 학교 다닌다는게 쉽지는 않았다.

게다기 실기도 만만치가 않아서 전문대학교였지만 음악대학이었으니 학교 들어가자마자 번호 뽑아 향상음악회

그것 끝나면 중간 실기고사 - 그거 끝나면 기말 실기시험- 후덜덜거리는 실기시험의 공포의 신세계를 저 언니와 함께

보냈다.

내가 하도 바빠서 그때까지 밥 한 번 하지 않고 손에 물 묻힌 일이라고는 애들 기저귀 갈아주고 씻길 때와 설겆이 가끔 할 때 말고는 곱게 살 던 남편이 처음으로 밥하는 걸 배워서 밥 솥에 밥 해놓고 나를 기다릴 줄 도 알게 된
때도 내가 제주도의 음악대학에 다닐 때였다.

관사와 걸어서 오분도 안되던 집으로 남편이 6시 땡하고 오면 나는 파란색 세피아를 몰고 클라리넷 협주곡을 들으면서

광령에 있는 학교 연습실로 연습을 하러 내려 갔다.

추웠던 지하의 학교 연습실

아줌마라고 어설프게 학교 다니는 건 싫어서 죽기살기로 연습해서 향상 곡으로 페이지 열쪽짜리 슈만 곡 외워서 치기도 했고 졸업 연주때는 웬수같았던 베토벤 월광 3악장을 치고 졸업을 했다.

그 시절에 함께 해주었던 연심언니

생긴건 저렇게 얌전하게 생겼어도 친구 중 한 명이 오픈카 타고 달려보는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여서

소원 들어준다고 얼마전에는 친구들이랑 머스탱 컨버터블 빌려서 오픈카로 해놓고

목에 스카프 두른 채 제주도 한바퀴를 돌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위미 초등학교 운동장에 십원짜리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다는 전설을 알려 준 언니도 연심언니다.

 

그렇게 열심히 쳤던 피아노도 나는 재능이 없는지 사실 잘 치지도 못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배우면서 스스로 자각했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 뭐든지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뭐든 시작하기만 하면 일단 죽기살기로 한다. 손톱밑이 까지게 쳐서 담당 교수가 연습 그만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했건만 지금 쳐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월광 3악장을 쳤었나 싶게 하여간 책만 내 책인걸로 남아있다.

그래도 악보 밑에 쳐 놓았던 교수님 메모나 연습을 아무리 해도 잘 안되던 쇼팽 에뛰드 실기고사 볼 때 마다

그날 아침이면 차라리 광령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살짝 나서 시험을 안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시험 볼 때마다 했었다.

시험날 아침이면 청심환 한 병을 원샷으로 마셔도 심장 두근거리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하도 덜덜 떨려서 남편이 실기 시험 보는 연주실 앞에 있으면 좀 나을까해서 내가 시험 볼 때 앞에 좀 지키고 있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 말이라면 한 번도 싫다고 한 적이 없던 남편은 진짜로 시험 보던 날 내 차례 되기 전 직장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내가 치던 곡을 들어준 적도 있었다.

 

어느날은 같은 날 향상이었던 과 동기 여자애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봤는데 그애가 청심환 마시는 나를 보면서

"저는 청심환도 안들어서요 차라리 담배 한 대가 더 나아요" 하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연주하는 시간은 2분에서 5분까지 짧기만 한 시간이지만 준비해서 연주하는 사람들은 사실 피가 마른다는 걸

2년 음악대학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연심 언니랑 나는 담배는 안피우고 듣지도 않던 청심환 나눠 마시는 걸로 서로 위안을 삼으면서 2년을 무사히 마치고 학교 친구로 남아 제주도 하면 저 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주책바가지 연심 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운다.

연심언니랑 도두봉에 올라갔다.

여기도 오름이다.

 

 

 

도두봉에서 바라 본 제주바다는 서귀포 바다와는 풍경이 다르다. 요트타는 사람들도 보이고 은진이는 유치원 다닐 때

이쪽 바다에서 돌고래를 본 적도 있었다.

그 때 은진이가 "엄마 나 돌고래 봤어"라고 했을 때 내가 니가 뭘 잘못 본거라고 아이 말을 믿지 않았었다.

은진이가 엄마가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고 두고두고 서운해했었다.

 

진짜 제주도 저 바다에는 가끔씩 돌고래가 지나간다.

 

세 놈이 똑같이 저 바다 앞을 지나다녔어도 우리 가족 중에 돌고래는 은진이만 보고 우리는 제주도를 떠나 춘천으로

이사를 갔다.

 

엄마인 나는 제주도에서 음악대학 2년 다녔어도 별 볼일 없었지만 우리 애들은 제주도에서 내가 음악대학 2년 다닌

덕분으로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르 불문 음악회에 끌고 다녔고 소길리 집에서 애월 납읍 길이 험했던 바이올린 선생님 댁으로

렛슨을 데리고 다니느라 세피아에 펑크도 난 적도 있었다.

 

연심이 언니 만나서 과 동기였던 제주도 아이들 소식도 듣고 제주도에서 하루가 또 갔다.

 

제주도도 참 넓다. 제주 시청앞에서 서귀포로 넘어오는데만 한 시간이 넘는다.

보목리 펜션으로 돌아오니 펜션 문 앞에 소피아 언니가 보낸 택배 상자

 

서귀포에 올 때 "일리커피" 들고 왔다고 맛없는 커피 들고 왔다며 극성스런 소피아 언니가 맛있는 커피 마시라고 보내준거다.

 

언니 덕에 맛있는 커피랑 토마토로 저녁을 먹고

일리 커피랑 비교 할 바가 못된다. 급이 다른 클라쓰였쓰

 

일주일 넘게 혼자 지낸 제주도 생활

혼자가 혼자가 아닌게 저 커피를 보면 알쥐

소피아 언니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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