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를 제주도 살 때 처음 꺽어봤다.
고사리를 직접 꺽어보기 전 내가 알 던 고사리는 삶아서 새까맣게 말려진 고사리였을 뿐
고사리가 저렇게 파랗고 통통한 줄기를 가진 식물인줄 몰랐었다.
들판에 나가면 천지가 고사리밭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산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평평한 평지 풀숱에 땅에서 뿅하고 올라와 있다.
여름에 이사를 하고 한 해 넘겨 봄에 관사 보도블럭위에 고사리를 삶아서 널어 놓은 것을 보고서야 고사리를 끊어볼까 생각했었고 혼자가기는 좀 무서워서 은진이를 데리고 갔었다.
그때 수민이는 어디에 있었나 -아마 누구네 집에라도 놀러가 있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붙임성이 좋았던 아이라 때가 되어도 굶지도 않고 남의 집에서 밥도 잘 얻어 먹고 다녔었다.
승범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동네 애들이랑 벌레 잡는다고 쏘다녔을지 축구에 빠져 어디서 공을 차고 있었든지 어느 집에 몰려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을 거다.
여섯살 무슨 의지가 될거라고 은진이를 데리고 고사리를 끊으러 갔는지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아이가 은진이었다.
붙임성이 좋았던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라 남의 집에 가서도 오래는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은진이가 굉장히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만 아는 아이의 성품이다.
둘이서 고사리를 그때 처음 꺾어봤다.여섯살짜리가 고사릴 끊어보더니 다음 날도 또 가자고 해서 나는 별 재미도 없던
고사리를 끊으러 몇 번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사리 끊던 평지에 아주 큰 개가 있어서 무서워서 둘이서 덜덜 떨면서 빠져 나온 뒤로 다시는고사리 밭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봄에 한차례 내리는 비를 "고사리장마"라고 부른다.
봄비가 한차례 내리고 나면 산에 고사리가 쑥쑥 자란다고 해서 "고사리장마"라고 한다는 거다.
시댁은 작은 집이라서 명절이면 시댁 큰 집으로 제사를 지내로 다니는데 제사를 지내고 와서 시아버지는 명절 음식 품평을 하시는데 그때 꼭 등장하는 메뉴가 "고사리나물"
어쩌면 그렇게 맛도 없게 고사리 나물을 했냐면서 누가 들으면 명절 대표 음식이 고사리 나물인것처럼 흉을 봤고
우리 남편은 시아버지가 남의 흉보는 걸 아주 질색하게 싫어해서 그런 말 하지 마시라고 하는게 늘 있던 명절후기였다.
어머니가 해주는 고사리 나물을 먹어보면 남의 집 고사리 나물은 맛없다고 할 만도 하나 입 짧기가 8살만도 못한 시아버지로서는 큰 집의 고사리 나물은 용서하지 못할 맛이기는 했다.
그래도 큰 며느리도 아니면서 그렇게 착실히 제사 준비를 해오는 막내 며느리가 어디 있냐고 남편이 한 소리 하고 나면 주책없이 시아버지 음식 품평회에 한숟갈 거들던 막내동생도 이야기를 그만 두고는 했었다.
"고사리 나물"은 하여간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음식이다.
실제로 나는 좋아하지도 않지만 내가 끊어 온 새파란 고사리를 데쳐서 간장에 참기름만 넣고 볶았더니 말린 고사리 나물보다는 훨씬 맛이 좋았다.
올레 6길을 완주하려는 큰 꿈을 가지고 올레6길 시작점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3.4킬로 걸은 후에 힘들어서 버스를 탔다.
"돈내코" 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돈내코 주변을 산책하고 오려고 했으나 코로나때문인지 돈내코주변에도 사람이 없고 다시 내려가는 버스를 타려고 해도 배차 간격이 한시간이라 주변을 헤찰하다 보니 고사리가 여기저기 많이도 피어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 끊은게 작은 봉투 하나 가득 채우고 하루 종일 8킬로쯤 걸었다.
말린 고사리로 나물을 한거는 내 입맛에는 맛이 없으나 새파란 고사리를 데쳐서 찌개에 넣어 먹거나 특히 조기 조림에 넣어 먹는 건 맛이 좋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조기 조림에 고사리를 넣어서 해주셨을 때 조기보다 고사리가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었다.
제주도 오기 전 어머니한테 들려서 우리 엄마가 해준 소고기 불고기를 내가 해온것처럼 저녁을 차려드리고 왔었다.
고기 하나는 틀림없는 집이라는 엄마말처럼 소고기는 맛도 좋았고 니네 시어머니 좋아서 내가 양념해주는 거 아니고
가서 어차피 니가 할 거 생각해서 내가 해주는 거라는 엄마의 인정머리 없는 말도 무색하게 소불고기는 양념이 알맞게 되서 입맛 까다로운 시아버지도 아무 말씀 안하시고 드셨고(시아버지가 말씀을 안하시는건 맛이 있었다는 이야기)
수술후 잘 못드시던 어머니도 잘 드셨다.
고기 집에서 소고기를 두근해서 나올 때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지 에미한테는 고기 한 근 안사왔지"라고 말씀하셨다.
친정은 언제나 빈손으로 가서 두손 가득 나오는 곳이었지 내가 뭘 해서 가지고 간 적은 드물기가 인정머리 없을만큼이었다. 아차 싶을 만큼 미안했지만 어차피 뭘 바라고 그런 말한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엄마한테 요구르트 세 묶음 사드리는 걸로 퉁치고 말았지만 미안함이 내 마음속에 오래 갈 일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잠깐 사이에 퍽이나 많이 꺽은 고사리로 저녁 한 끼 잘 해서 먹었다.
올레 6길 완주라는 계획으로 출발했으나 완전히 어긋난 하루를 보냈다.
올레 6길 - 어쩌다 고사리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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