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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서귀포일기

"오 나의 서귀포2"

by 나경sam 2020.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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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중섭도 아니고 "오 나의 서귀포"는 쫌 그렇기도 하지만 한달 살려고 마음먹었더니 서귀포가 좋아졌다.

호기심이 뇌 구조의 반 이상일게 틀림없는 나로서는 결정을 하고 나면 그게 갑자기 좋아져버리는 병이 있다.

그러다가 탁하고 놔버리는 것도 순간이긴 하지만

호기심 많은게 아주 나쁜지많은 않은 것 같다.

나를 움직이는 8할이 호기심 아닐 까 싶다.

교토에서 보낸 12개월

가끔씩 아주 그립게 생각이 났다. 골목에 떠 돌던 달달한 간장 냄새

쓰레기를 얌전히 치우시던 옆 건물의 관리인 아저씨

새로 생긴 채소가게의 싸고 신선했던 채소들

갓 구워낸 빵을 나르던 보로니아의 아줌마들

얼마전에는 NHK에서 "사라메시"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학교 가느라 늘 뛰어 다녔던 카와라마치 상점가가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그 골목의 풍경이 쓱하고 지나갔고 열심히 걸어 다녔던 내가 보이는 듯했다.

 

서귀포도 열심히 걸었다.

사려니 숲길을 잠깐 걷고 용눈이 오름을 정상 찍고 내려왔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서 힘들지 않았지만 오름을 올라갔을 때 힘들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으니

"노꼬메" 오름

토요일 오후였나 제주도 살 때 윗집 인애네 식구들이랑 우리집 식구들 함께 올라갔던 노꼬메

오름치고는 가팔라서 아이가 올라가기에는 힘들어서 수민이는 남편이 짊어지고 은진이는 인애 아빠가

짊어지고 올라갔다.

오름의 정상에서 당연히 너를 데리고 올라 오느라 아저씨 힘들었으니 인사를 해야 된다고 했더니

은진이가 단호박으로 나한테 말했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었는데 우쒸"

 

"나 혼자 올라갈수 있었다구,우 쒸,고맙긴 뭐가 고마워"

 

여섯살이었지만 싫고 좋고가 단호박같았던 은진이였기 때문에 은진이는 고맙지가 않고 아주 짜증이

났었던 상황이었다는 걸 집에 와서 알게 되었고 그게 우리 가족이 가지고 있던 "오름의 추억"이었다.

그래도 노꼬메 정상에 올라가서 한라산을 보고 쉬고 우리 애들이 다른 사람들이 먹었던

삶은 계란을 주책없이 쳐다보는 바람에 그쪽에서 건네 준 삶은 계란을 애들 덕분에 얻어 먹고 내려왔었다.

 

용눈이 오름을 걸으면서 숨이 차지 않아서 좋았다.

숨이 차면 쉬어가면 그만이고 힘들면 내려 오면 그뿐이다.

 

능선이 완만한 오름- 가을에 억새가 활짝 피면 다시 걷고 싶은 오름이다.

버스에서 잘못 내려서 친절한 제주도 할머니 할아버지 차를 얻어타고 용눈이 오름 입구까지 왔다.

할머니가 잠깐 사이에 자기 손녀딸이 미국 프린스턴 의대를 나와서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다고

깨알 자랑을 하셨다.

이야기의 전개가 왜 그렇게 되었을 까 생각을 해보니 마스크를 끼고 머리색은 금발처럼 탈색을 한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미쿡사람인줄 아셨다고 이야기를 꺼내서 기-승-전-손녀 자랑으로 끝난거다.

 

할머니치고는 아이비리그 대학 순위까지 꿰고 계셔서 굉장히 세련된 할머니다 싶었는데

나중에는 프린스턴 대학교를 자꾸만 프린스대학 프린스 대학 그러시는 걸 보고

"나이는 어쩔수 없구나" 타인을 보고 다시 느낌

 

나도 이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이 먼저 단어를 말하는 때가 종종 있으니

나이를 먹음은 뇌가 둔해지는 것 뇌가 둔해짐은 행동이 둔해진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걷고 싶었던 속도에 맞게 완주한 용눈이 오름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후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건 정말 많지 않다.

걷는 속도조차 얼마나 빨리 걷기를 강요받는지

출근 길 버스에서 내려 좀 느긋하게 걷고 싶어도 옆 사람이 빨리 걸으면 나도 빨리 걷게 되고 경쟁은 아침에 걸음에서

부터 시작되었던것같다.

 

남하고 걸어봐야 자기가 빠른 걸음을 걷는지 느린 걸음을 걷는 사람이지 알게 된다.

나는 느린 걸음을 걷는 편에 속했다.

걸음이 빠를거라는 건 착각이었고 빨리 걷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여기저기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헤찰하고 싶은 일 투성이인데 앞만 보고 똑바로 빨리 걸으라고 하는 건 나같은 사람에게는 무리다.

남편은 걷는 속도가 빠르다.

부부가 돈 때문에도 싸우지만 걷는 속도도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4년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늘 나보다 한참이나 앞서서 걷던 남편 때문에 화가 나서 싸운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빨리 걷느냐고 함께 다녀야지 화를 냈더니 남편 말인즉 앞서서 자기가 걸어야 가족이 따라오지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말이 이제는 알것 같다.

그게 바로 가장의 책임인거다.

우리에게 모성애라는게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책임감이라는 있어서 그게 그렇게 표출이 된거지 싶다.

느리게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빨리 걷는게 힘든 것처럼 남편도 나랑 속도를 맞춰서 느리게 걷는 일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서로 눈치껏 속도를 맞춘다.

 

용눈이 오름 완주후 비자림 국수가게

 

배고파서 눈앞에 보이길래 찾아갔지만 만족도 100이다.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쉬고 싶을 때는 쉬고

김녕 해수욕장에 들러 카페에서 엎드려서 낮잠을 이십분쯤 자고 동문 시장 거쳐서 281번 타고 성판악 넘어 서귀포로 넘어왔다.

제주시에 있다 서귀포로 넘어오니 마치 오사카에서 교토로 넘어 왔을 때의 느낌처럼 대도시에서 작은 소도시에 온 느낌

아주 늦은 저녁도 아니었는데 환승 버스는 오지 않아 40분 넘겨 타느라 환승도 안됨요

 

저녁은 집에 와서 누룽지 끓여 먹고 하루를 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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