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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손 시려운 계절"

by 나경sam 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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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시려운 계절"


손은 작년에도 시렸고 어김없이 올 해도 손이 시린 계절이 돌아왔다.

그래도 다행인건 작년에는 방이 추워서 히터를 켜면 잠시 괜찮았다가 작은 방에 히터의 더운 바람이 가득차면

다시 답답해져서 껐다가 또 켜면 답답해지는 악순환이었었는데 역시 난방은 보일러다.

바닥 난방의 보일러야말로 겨울 난방의 최고라는걸 일본에서 있었던 일년동안 알게 되었다.

보일러를 아침 저녁으로 켜야 되는 계절이 돌아왔고 자전거를 타는 동안 손이 시렵다.


두 달이 되어 가면서 제법 얼굴을 익힌 단골아닌 단골 조합원들도 생겨났고

이름을 비교적 잘 외우는 내가 조합원들의 이름을 불러드리면 나이가 드신 조합원님들은

그걸 또 좋아해주신다.

어떻게 내 이름을 금방 외웠냐면서 좋아해주시는데 금방 외우게 되는 조합원님들은 두가지 부류다.


아주아주 힘들게 했거나 너무너무 친절했거나

둘중의 하나면 싫어도 외워지는게 상대의 이름이라는 걸 여기서 일하면서 배웠다.


참으로 많은 조합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얼마전에는 돌아가신 부인의 조합원 출자금을 찾으로 남편분이 오셨다.

돌아가신 부인의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 증명서를 가지고 오셔서 돌아가신 부인의 탈회신청을 하고

출자금을 찾아가셨다.


탈회신청서를 쓰시는 그 분께서 부인의 이름을 적으시면서

"살아있을 때의 마지막 서류 정리정리를 하는거라고" 혼잣말씀으로 하셨다.


큰 서류들은 이미 정리를 하신거고 생협의 출자금에 관한 거는 어찌보면 작은 거에 해당되니 신경쓰고 있지 않다가

신변정리가 좀 된 시점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정리를 하러 오신거였다.


쓸쓸함이란 그런 거다.


연세드신 부부가 생협에 오셔서 쇼핑을 하면서 물건을 한 개 바구니에 넣을 때마다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게 집에 있는데 왜 또 넣느냐고 - 아니다 금방 떨어진다 - 시끄럽다 말도 되게 안듣는다

본인들 집 안방에서나 벌어질 싸움 구경을 할 때도 있었다.

저럴게 싸울 거면 왜 함께 다니는지 이해가 안되는 노부부였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와서 쇼핑을 두 분이서 할 때는 꿀이 뚝 뚝 떨어졌다.


집에 있지만 또 사가면 편하지 않느냐면서 지난 주에 내가 들었던 대사의 완전 반대로 두 분이 대화를 하시면서

쇼핑을 하셨다.

지난 주에는 할아버지가 화를 너무 내서 나까지 쫄았었는데 (그리고 실제로 아무 잘못없는 나한테까지 화를 내셨었다)

이번에는 신혼도 그런 신혼이 없게 끔 행복하게 쇼핑을 하시고

현금결제를 하고 가시면서 거스름 20원을 나에게 용돈으로 주시는 후덕함까지


그치만 20원에 좋아할 나이가 아니다.

국민학교 들어 가기 전 10원이면 우리 동네 또새 아저씨 집에서 마미과자를 사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 10원은 조합원들이 그냥 두라고 하신다.

여기서 또새는 "또 오세요"의 빠른 발음이 축약된 "또새"가 된다.

우리 엄마 황여사한테 어느날 궁금해서 물어봤었었다.

"엄마 우리 어렸을 때 또새 아저씨 집 있었잖아 근 데 또새가 무슨 뜻이야"

"뭐긴 뭐여 항상 뒤에다 대고 또오세요 또오세요 해서 또새 지 "


부지런했던 또새 아저씨는 부자가 되었을 까

또새 아저씨네 점빵 앞에 있던 둥근 하드통에서 소다맛을 꺼내서 혀끝으로 아래에서 위로 쭉 핥아먹던

하드의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캔디바가 처음 나왔을 때 이게 어디서 많이 먹어 본 맛이다 했더니 그게 또새 아저씨네 하드 통에 들어 있던 맛이었었다.


어찌되었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두 분이 쇼핑을 잔뜩하고 마지막으로 부인이 드시고 싶다는 미니 양갱까지

사서 나가는 뒷 모습을 보시고 뒷 차례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조합원이 나에게

"저 분들 정말 사이가좋으시네요" 라고 해서

내 대답은 이랬다.

"지난 주에는 매장에서 불꽃튀게 싸우셨어요"


그 분들의 모습을 나는 잠시 연속 드라마로 본 거고 또 한 분의 조합원은 단막극으로 봤으니 평가가 다를 수 밖에

하지만 단막극이든 연속극이든 나중에는 어느 분이든 혼자 되어서 남겨 진 분의 출자금을 쓸쓸히 찾으러 오실 거라는 거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모든것들이 나에게는 교훈이 된다.

흔히 쓰는 근거없는 말 "진상"이라는 말도 이젠 쓰지 않기로 했다.


600원에 목숨걸듯이 erp를 뒤져서 내역을 찾아내라는 조합원님이 계셨다.

미칠것같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erp 내게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는데 그 분이 자기 돈 600원이 할인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꼭 봐야 되겠다며 버티고 계셨다.

심지어 뒤에는 계산이 밀린 조합원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짜증이 얼굴에 보였고 그럴 때는

영혼 탈출은 시간문제다.


침착해 침착해-.-

계산을 먼저 마친 후 천천히 그 분 계산 내역을 들여다보니 600원 할인이 되긴 되었다.

증맬증맬 6만원도 아닌 6천원도 아닌 600원에 이렇게 사람 피를 말리냐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그분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내가 살짝 물어봤더니

아드님이 몸이 좋지 않아서 좋은 걸 사먹여서 체력 보강을 해야 되서 생협에 와서 물건을 사는데

지난 달에도 치료비만 이천만원이 넘게 나와서 아주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 조합원 입장에서는 돈 600원이 의미가 남다른 거다.

내 돈 600원과 그 분의 600원은 다른 거다.

한가해진 계산대 앞에서 얼마나 힘드시냐고 하지만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위로를 해드렸다.


나는 그 조합원님의 사정을 들은 후 이제는 진상이라는 말은 쓰지 않을려고 한다.

그냥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사정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돈 20원 주고 가신 그 나이드신 부부는 기분이 정말로 좋아져서 주고 가신 거다.

마감을 하다보면 돈 10원이 맞지 않아 마감을 못 하기도 한다.

내 뒷사람에게 0원으로 딱 떨어지는 마감보고서를 넘겨주고 가야 뒷 사람이 일하는 거니까

돈 10원도 하찮은게 아니다.

여분으로 남겨놓은 20원은 그렇게 돈이 맞지 않을 때 꺼내서 잔고를 맞추기도 하고 쓰임새있는 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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