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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노 부부 이야기"

by 나경sam 2019.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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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부부 이야기"      

   

                                                   


밖에서 지치게 말을 많이 하고 왔지만 오늘은 블로그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공개된 일기 - 블로그는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남편이 열심히 볼 뿐이다.

같이 사는 주제에-.- 아니 공주애서 혼자 살고 있으니 궁금한게 너무 많은 우리집 양반


블로그의 업데이트가 늦어지면

"블로그는 안쓰냐고,얼른 쓰라고" 가당치도 않은 요구를 대놓고 한다.


더 이상 무얼 알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25년 살았지만 나에 대해서 늘 궁금해하는 1인중 하나다.


두부와 콩나물과 계란의 무서움이란 생협에서 일하면서 알아가는 삶의 공포중 하나다.

다음 날 생협에 입고되는 모든 물건은 11시 반까지 발주를 넣어야 다음 날 입고가 된다.

차분히 앉아서 입고 물건을 정리해서 주문을 넣는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오전에 들어온 물건 정리하고

중간 중간 어린이집이나 지역 아동센터 급식 배송 물건 챙기고 계속 걸려오는 조합원들의 주문 전화에 응대하다보면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두부 주문을 놓치고야 말았다.

생협에 두부가 없으면 그건 앙꼬없는 찐빵이다.

국산 콩으로 만든 우리콩 두부의 열라 팬들이신 우리 조합원님들은 두부가 떨어지면 마구 마구 승질을 낸다.


"아니 왜 두부도 안 갖다 놓고 그래 증말"

이러신다.

지난 주에는 채소 주문을 놓쳐서 여러 명의 조합원들이 화를 내셨다.

"토마토랑 브로콜리가 왜 없어 증말"


그래서 아주 착한 우리 활동가들이 나를 보호해줄려고 사기 뻥을 쳤다.

"오전 중에 다 팔렸어요 조합원님"


"어머 그래 여기 웬일이야 깜딱이야"


내가 놓친 주문을 활동가들이 품절로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다음부터는 좀 빨리 와야겠네"


이러고 돌아가셨다.


진땀이 삐질삐질나는 오전을 매일 매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김치와 전쟁 중이다.

김장철이 다가오니 김장 재료 일괄 주문부터 완성된 김치를 주문하는 일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제대로 발주가 들어갔는지 내가 쓴 주문서를 확인하는 걸로도 모자라 휴일에 쉬고 있는 김치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입고 날짜를 확인하고 귀찮게 하는 진상 짓을 하고 있다.

혹시나 내가 빼먹고 조합원의 김치 주문을 넣지 않았나 스스로 의심을 하면서 내가 나를 볶고 김치 담당자를 볶고 있는 중이다.


"믿어 제발 너를"


김장김치철이 끝나면 김치 담당자가 나를 수신거부로 설정해 놓을지도 모른다.


정신없는 내가 되지 않을려고 요즘은 "총공액"이라는 총명탕처럼 생긴 약도 먹고 있는 중이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낸 사람의 기억력과 행동에는 한계가 있는 법

고군분투라는 말이 딱 맞게 살고 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낀다.


두달 넘게 일하면서 세 번 본 노 부부가 있다.


할머니는 자꾸만 뭘 살려고 하고 할아버지는 집에 있는데 또 사냐고 그만 담으라고 아이를 혼내듯이 큰소리를 내면서 할머니가 담은

물건을 바구니 밖으로 빼고 그럼 할머니는 또 웃으면서 자꾸 바구니 안에 물건을 집어넣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셨던 분들이라

기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분들이셨다.


매장안을 돌면서 물건을 담을 때마다 두 분이서 넣었다 뺐다 하셨고 할머니는 아기처럼 이것도 사자 저것도 사자 조르셨다.

그럴때 마다 "집에 있는데 왜 또 사냐고" 할아버지는 화를 냈고

계산할 때도 할머니는 앞에 있는 밀크캬라멜을 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해서 당뇨도 있는데 왜 자꾸 이런걸 사달라고 하느냐고

할아버지가 화를 내셨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웃으면서

"무서운 아저씨네" 그러시길래 할머니가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씀인줄 알았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혼자 오셨다.

네 번 째 보는 동안 혼자 오신게 처음이라 여쭤봤더니 할머니가 다리를 수술하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생협에서 파는 과자를 드시고 싶어해서 사러 오신 김에 할아버지도 집에서 식사를 하셔야 되니 즉석식품같은걸 사러 오신거였다.

할머니가 사오라는 한과를 박스로 세박스나 사서 계산대에 서 계시는 할아버지한테

내가 "밀크캬라멜"을 한 개 드렸다.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조합원님이 이 거 좋아하신다고 그러셨잖아요 병원에 계시니까 얼른 나으시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드리는 선물이예요"


할아버지가 내가 준 밀크캬라멜을 한개 받으시더니 주섬주섬 세 개를 더 사셨다.

내가 사 드린 밀크캬라멜과 본인이 사 신 세개의 밀크캬라멜 그리고 할머니가 부탁하신 한과 세박스까지 들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돌아 가고 난 다음에 오랫동안 생협에서 일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를 본 활동가가 나한테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가 치매예요"


띵하고 머리에서 종이 울리고 가슴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야단치듯이 뭐라 하고 할머니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보고 무서운 아저씨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 나이에 남편을 보고 "이 아저씨 무서운 아저씨네 "그러면 부부 사이에 할 수 있는 농담이지만

할머니가 하셨던 그 말은 농담이 아니라 할머니만의 정신세계에서 느끼는 감정이었던것-.-


모리나가의 노란색 박스 안에 담긴 밀크캬라멜을 나도 좋아한다.

중학교때 아버지가 그걸 박스채로 사와서 다섯명이서 골고루 나눴었다.

누군가의 생일 날 아버지가 그걸 사들고 와서 생일 선물이라고 했었고 나는 그후로 모리나가의 밀크캬라멜 = 생일선물 이라는

내 나름의 방정식같은게 수립되어져 있었다.


교토에서 지내는 일년동안 가끔 아니 자주 오리지널 모리나가 밀크캬라멜을 사서 먹었다.

한개씩 입에 넣고 그걸 깨물면 입안에 짝짝 달라붙어 집에 오는 길이 덜 심심했다.

수업을 마치고 빵집까지 알바시간에 맞춰서 바쁘게 뛰어가는 날은 밀크캬라멜이고 나발이고 여유가 없었지만

알바가 쉬는 날이나 혼자서 어디로 놀러가는 날이면 많이 사서 먹었다.


모리나가의 밀크 캬라멜은 내 유년의 단 맛이다.


생협 밀크캬라멜은 비싸기도 하지

1400원 -.-


어느날은 병맛이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단맛이기도 한

나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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