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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버지 제사-이젠 눈물이 안나 그게 더 눈물이 난다"

by 나경sam 201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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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5주기 - 이제는 눈물이 안나 그래서 더 눈물나는"


불꽃같은 점장 생활 3주차에 일박이일 휴가를 내고 군산으로 내려갔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5년이다.

월요일에 수업가는 학교에 아버지 돌아가셔서 학교 수업을 갈 수 없다고 행정실에 문자를 보냈을 때

친절한 행정실 직원이 곧바로 보낸 답문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자에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 아버지더러 고인이라니

문자를 보낸 사람으로서는 마음씀씀이였을 그 문자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충격이었으므로

이후 누군가의 부의 문자를 보게 되면 고인의 명복을 빈다거나 그런 류의 답글은 스스로 사절이며 차단한다.


기억도 나지않는 할아버지 어렴풋이 기억에만 남아있는 할머니의 산소아래 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큰집 고추밭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아버지의 산소가 있고 아버지를 모시는 날

눈이 펑펑 내려 아버지를 싣고 우리 가족을 실은 운구차가 아슬아슬하게 산길을 달려서 도착했었다.

고씨들의 집성촌인 내 어릴적 시골마을에서 아직도 살고 계신 오촌 아저씨들이 산일을 도와주셨고

아버지를 묻고 내려와서 스무명도 넘었던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은 뜨끈한 찌개에 밥을 먹었었다.

아버지를 묻고도 밥이 넘어갔었다.


첫 제사에 갈 때는 친정집 대문을 넘는게 무서울 정도로 제사상 위에 있던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기가 무서웠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었다.

딸이 넷에 아들이 하나 인 우리집

아버지 제사에 부산에 사는 셋째는 언제나 올 수가 없다.

셋째만 빼놓고 나머지 형제들이 모두 모여 치른 아버지 제사가 다섯번째

첫 번째 제사에는 우리 모두 울었었다.

막내 남동생이 언제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낭독하는 시간이 있는데

올 해는 부산 윤경이네 아들 현민이가 수능을 본 이야기하며

큰 누나 일본에서 돌아와서 생협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이야기

자기 집이 홍성으로 이사를 해서 그전에 살던 시골집으로는 치킨 배달이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치킨 배달이 되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까지

아버지에게 알려드리는 우리 형제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겹다.


아버지는 생전에 탈렌트 원미경을 좋아했다.

원미경이 텔레비젼에 나올 때마다 아버지가 감탄을 하면서 "예쁘다"라고 했을 때

원미경을 하나도 아니 1도 닮지 않은 우리 엄마 황여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리공고 전기과 19기 출신이지만 전구다마 하나도 엄마가 갈아 끼웠던 우리집

어렸을 때 문 위에 유리 액자에 끼워져 있던 아버지의 공고 졸업장을 읽으면서 한글을 뗐다.


두번째 제사에도 우리 모두는 울었었고 작년 제사에는 일본에서 마음이 쓸쓸했었다.


올 해가 다섯번째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내 동생을 봐도 얘도 안울고 언제나 울었던 막내 여동생도 울지 않았다.

둘째네 아들 정진이만 우느라 밖에 잠깐 나갔다 왔고 자식들은 이제 모두 괜찮은것같다.


아버지 좋아하신다고 둘째네 정진이가 노란색 커피 믹스를 200개들이로 사왔다.

엄마는 그걸  세봉지나 뜯어서 제사상에 올려놓고

막내 남동생네 아들 삼형제도 쵸코렛을 사와서 그것도 올려놓고

엄마의 40년 절친 신태양슈퍼 아줌마가 아버지 제사 첫 해부터 빠지지 않고 가져오는 치킨까지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홍동백선지 뭔지는 안드로메다로 날라가버렸다.


공주에서 친정으로 제사를 지내러 온 남편은혼자 재우고 엄마랑 딸 셋은 한 방에서 자는 아버지의 제삿날


5년이 지나니 쥐어짜도 눈물이 안난다.


그렇지만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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