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플 썬데이"
일요일을 아니 나는 천주교 신자니까 주일이라고 표현해야 되지만 오늘은 그냥 "뷰티플 썬데이"라고 하고 싶다.
"썬데이 서울"을 아는 나로서는 - 정말 너무 오래 전의 사람같아지는 "썬데이 서울"
87학번인 나로서는 "썬데이 서울"이라는 잡지책이 낯설지가 않다.
대학교 1학년때만해도 누군가 아니 그 누군가는 예비역이었던 우리과 아저씨 한 명이 87학번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야한 농담을 하거나 하면 우리 중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듣고 그랬었다.
"썬데이 서울"에 나올만한 얘기네요.
"그 때를 아십니까" 라는 엠비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에나 나갈 법한 오래 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썬데이 라는 단어보다도 "니찌요우비" 가 더 친근해졌다.
일요일은 삼분 카레가 아니라 니찌요우비
바른두레 생협 안양점에 4시간 일하는 활동가로 입사를 해서 두달만에 점장이 되는 초초초 단기 승진의 새 역사를 쓰시고
앞치마 앞에 자랑스런 점장의 이름표는 아직 못붙였지만 새롭게 점장의 자리에서 일을 다시 배워가고 있는 일주일
시속 30으로 국도변 달리다가 갑자기 차선 잘못 타서 경부 고속도로에 들어가버린것 같은 느낌
갑자기 밤중에 상무님이
상무 - "점장을 맡아서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나 -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상무뉘임 혹시 제 정신이십니껴"
상무 - "제 정신이니까 당신을 점장으로 발령내고 싶어"
"둑흔둑흔 데쓰네"
그리하여 나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바른두레 안양점의 점장이 되었다.
그리고 점장 일주일차
활동가일 때도 나는 구멍이었다. 활동가 넷 중에 가장 신입이니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매뉴얼을 새로 익히는게
어려웠고 겨우 익힐만하면 또다른 경우의 수가 발생
내가 하는 일만 어려운 게 아니라 남이 잘못해 놓은 일을 내가 옴팡 뒤집어 쓰는 것도 있었으니
예를들면
배송-.-
배송기사님이 하루에 평균 열건이상의 배송을 하는데 요즘처럼 김장재료가 많은 날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가끔은 조합원 댁이 ** 아파트 101동 1204호의 경우 102동 1204호로 갖다 놓으시는 바람에
정작 물건을 받아야 될 조합원 댁에는
배송시킨 물건이 도착하지 않고 앞 동에 그 물건이 가 있다가 그 집 주인이 보고서 본인이 시킨 물건이 아니라고 생협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사이 물건을 받지 못한 조합원은 전화를 해서 계속 배송이 안오고 있다고 전화를 했고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살짝
불만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분노게이지도 동반 상승
하필이면 배송 아저씨가 배송을 잘못 했을 때에 내가 저녁 근무 조여서 분노섞인 조합원의 불만을 고막으로 막아냈다.
생협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서 일어났던 "오징어채 배송 미스 사건"에 버금 갈 사건이었지만
입장바꿔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앞동으로 찾으러 가시라고 간신히 달래고 달래서 사건 무마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날
아 진짜-.- 배송 아저씨 나한테 유감이 있는지
연달아 이틀이나 이번에는 다른 조합원의 배송 물건을 호수만 같고 동호수는 다르게 배송을 시켜놓고 퇴근을 하신거다.
그러니 또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
잘못 배송 받은 집에서 우리 생협에 전화를 해서 앞동으로 갈게 우리집으로 왔으니 와서 찾아가시라고 하세요-.-
증맬증맬 내가 미친다. 진짜
아저씨 저한테 왜 그러시는거예요 진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물건이 지금 다른 집에 있으니 찾아가시면 안되겠냐고 전화를 했더니
조합원이 화를 버럭 냈다.
그래 화 낼만도 하다 싶었다. 무거워서 배송시켰더니 결국 자기가 찾으로 가게 생겼으니 화가 폭발했고
파편은 나의 몫 - 배송 아저씨를 지켜줬다.
그리고 배송 미스 사건은 생협 입사 두 달동안 나를 힘들게 한 3대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몇 번이나 영혼이 탈출했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송가인은
"송가인이여라"
송가인은
저는 "점장이여라"
하지만 점장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은 유승범 군 졸업 연주회
제주도로 이사 갔을 때 애월 납읍에 사시던 제주 시향 선생님에게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던 8살짜리가 졸업 연주회를 했다.
많은 지인들이 축하해주러 오셨고 연습하느라 집에는 항상 새벽에 들어왔던 아들의 얼굴을 나도 며칠만에 제대로 봤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졸연을 마치고 나면 운다고 한다.
음악 이라는 게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고 그동안 많은 시련이 있는 자기만의 외로운 길이다.
공부도 그렇고 세상이 일이라는게 다 그런 면이 있지만 음악도 그렇게 양날의 검이다.
연주를 마치고 난 아들이랑 사진을 찍으면서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더니 심장이 튀어나올것처럼 뛰고 있었다.
우리 수민이는 트랙 뛰느라 심장이 터질것 같고 승범이는 연주 끝내고 심박수가 올라간다.
각자 자신만의 트랙에서 전력질주하고 살고 있다.
대구에서 살 때 찍었던 수민이 백일 사진이다. 세상에서 우리 애들이 가장 예쁘다고 착각하고 살 때
그 착각이 조금씩 깨졌던 사진이지 싶다. 어머나 우리 애들이 다 예쁜에 이 사진 이거 뭐지 깜짝 놀랐었던 사진되시겠다.
저들 중에 한 명은 바이올린은 하고 한 명은 클라리넷을 하고 있고 한 명은 육상 선수가 되었고 빨간 옷을 입은 아줌마는 점장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이 애들은 저 때보다는 훠얼씬 인물이 나아졌다는 거
"다행이지 뭡니까"
지난 주까지는 활동가였으니 주말 근무를 했지만 점장이 된 첫 주일
"뷰티플 썬데이"를 보냈다.
내일은 내일대로 무슨일이 있을 까 두렵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생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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