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일기"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그것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생전 처음 하고 있으니
일인 일색의 사람들 속에서 감정의 소모만 있는 게 아니라 배워가는 것도 있다.
사람은 평생 배운다더니 요즘 내가 그런다.
얼마전에는 반품 처리나 재고 이동 폐기 처리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더니만 어제 있었던 아이스박스 반품건은
반품 처리해서 전표까지 출력해서 호기롭게 붙여놓고 왔는데 새벽에 생협에 배송 온 배송 기사님이 내가 붙여 놓은 반품 전표 위에
이렇게 써놓고 가셨다.
"내용이 맞지 않아 반품이 불가합니다"
생협 배송은 새벽 4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아저씨 물건을 2백만원어치 내려놓고 반품 아이스박스 차에 올릴려다가 내가 붙여놓은
반품 전표와 반품 내용이 맞지 않아 수거가 어렵다고 친절하게 코멘트를 적어놓고 가신거다.
아이스박스가 입고에 2개면 반품하는 내가 작성하는 서류에 나도 2개라고 적어야 되는게 1개라고 적었던지
무슨 이유에서 반품 불가인지는 모르지만 아저씨가 그 바쁜 아침 배송 시간에 자필로 친절하게 코멘트를 달아놨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침에 일하던 활동가들이 나 때문에 웃었다고 (하나도 웃긴 일이 아닌데 말이지 -.-)
오후에 출근했더니 반품이 되었어야 할 아이스박스 초록색과 남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반품 작업을 해서 박스에 붙여두고 저녁에 나오면서 나도 손글씨로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써두고 오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것도 서류인데 낙서하면 안되니까- 사탕이라도 하나 올려놓을까도 했지만 그러다가 새벽 4시의 배송기사와 썸이라도 타면
안될일이고 공무원 연금 수혜자가 될 남편의 연금을 함께 축내면서 살려면 절대로 아니될 말씀 - 그래서 서류만 붙여두고 집으로
오늘 가서 다시 박스가 있으면 서류 작성에 하자 있어서 그만 둘 지도 모른다.
하지만 판매에 소질이 있는지 - 이것도 나에 대한 재발견이다.
생협에 빵이 입고 되는 날이면 그 빵을 사러 오시는 건물주 조합원님에게는 빵이 입고 되었으니 사러 오시라고 전화드렸다가
물건을 왕창 주문받았다.
단팥빵 1500원짜리 사러 오시라는 전화는 그분에 대한 나의 관심이었다.
할아버지가 당뇨가 있으셔서 다른 곳의 빵은 드시지 못하고 생협의 빵만 드신다는데 워낙 입고양이 적으니 들어오면 바로 나간다.
그래서 그 조합원님이 빵사러 오실 때 허탕치는 걸 봤기 때문에 빵이 들어 온 날 내가 전화를 드린 것이다.
그랬더니 기억하고 전화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물건을 주문하시고는 배송 오시는 분더러 제발 조용히 올라와달라고 부탁하셨다.
건물주 조합원님이 슈퍼 건물 꼭대기층에 사시는데 생협에서 배송나가신분이 조합원님이 시킨 물건을 들고
그 슈퍼에 가서 슈퍼 사장님한테 자기 집을 물어봤으니 자기가 얼마나 미안하냐면서 "올라오실 때 제발 조용히 올라와달라고 부탁하셨다"
배송 전표에 메모를 해뒀다.
"1층 슈퍼 몰래 조용히 올라가주세요"
할머니 건물주 조합원님 보시면 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기가 세 받아서 먹고 사는 1층 슈퍼 놔두고 생협 물건
팔아주는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하시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로 그 마음을 알려면 나도 1층에 슈퍼가 딸린 건물을 사서 꼭대기 층에 살아보기 전에는 헤아리지 못할 일
좋았어 생협에서 4시간 활동가로 일해서 건물을 사자
그래서 1층에 생협 건물 들이고 나는 한살림에서 물건 사다 먹으면서 1층 생협 직원들 몰래 조용히 올라와주세요 할 날이
내 인생에 올 때까지 앞치마 두르고 오늘도 나경 아줌마는 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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