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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상추에도 꽃이 피더라"

by 나경sam 201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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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에도 꽃이 피더라"


마음이 바쁠 때는 바로 위 옥상에 올라가는 일도 지하철 몇 정거장 떨어진 곳 처럼 멀게 느껴진다.

정말 바빠서 바쁜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바쁜지 내 생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때 옥상에 올라가서 혼자 아침을 먹었다.

종이로 된 커피 여과지를 더 이상 쓰기 싫어서 다이소에서 2천원에 사 온 삼베를 여과지 삼아 커피를 내려 마시지 한 달 쯤 되었다.

종이 여과지 보다 걸러지는 상태가 훨씬 더 곱다.

진한 커피와 함께 달걀 버터 토스트 - 설탕 대신 생협에서 받은 마스코바도를 넣고 만들었다.


면접에 갔을 때 면접에 오느라 수고했다고 준 마스코바도 - 설탕 대신 쓰고 있는 중이다.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 잘 어울렸던 우리집 옥상에서 아이유의 가을 아침대신 "고향의 노래"를 틀어놓고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고추도 가지도 방울 토마토도 부추도 상추도 계절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상추는 잎을 다 내주고 줄기가 굵어진 채 씨주머니와 꽃을 달고 있었다.


 밭작물 무식자였던 나로서는 상추에 꽃이 피어있는 저 모습이 잠시 입을 벌리고 쳐다봤을 만큼 경이로웠다.



꽃이 얼마나 더 필려고 그러는지 봉오리가 많이도 달려있다.

햇빛을 등지고 앉아 혼자 아침을 먹는 소중한 시간 - 이런 시간이 아니면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을 만큼 일상이 산만했다.


하루에 네시간 일하는 데도 마치 여덟시간 일하는 것처럼 몸은 피곤했고

물론 이유는 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서 1부터 10까지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한사람이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구조라면 배우기가 훨씬 쉬울텐데 일하면서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배워나갔으니

배우는 나도 힘들고 물론 가르치는 그들도(세 명이나 된다 - 시어머니 한 명도 힘든데 세 명이라니 결혼 25년차에 새로운 시집살이중이다)

점장이 있으면 점장 한사람한테만 배우면 되는데 점장이 공석인 안양 매장에는 활동가 세 명이 나 한사람을 가르치는 형태이다 보니

가르치는 스타일도 다르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들이 있어서 이 사람한테 배운게 다르고 저 사람한테 배운게 모두 다르다.

물론 결론은 같지만 어쩜 세 명다 그렇게 다른지 - 어쨌거나 문제풀이는 세 명 모두 다르고 결론은 답만 같다.


그래도 이제는 반품처리도 하고 재고이동도 시키고 반품전표 뽑아서 붙여놓고 재고 이동 전표 뽑아서 붙여놓고 나름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듯이 산넘어 산이다.

조즘 할 줄 알게 되었나 싶으면 또다른 경우의 수가 발생하고 이미 할 줄 아는 일에도 속도를 요구받게 된다.

한가지 일을 부탁받아 열심히 하고 있는가하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다 했죠-.-"

부탁받은지 일 분도 안된것 같은데 다 했냐니


김연아가 무슨잘못을 했죠? 찍혔다 혹은 미운털

그래서 아직 이제 시작이라고 말해놓고 일을 마무리 지을려고 하면

"가르쳐줬잖아요" 가 날라온다.


웃긴짤/무한도전 짤/페북 짤/병맛짤/카톡짤/짤모음/어이없는짤/댓글짤/슬픈짤/짤방모음/인피니트 병맛 짤/에비츄 짤


그렇게 한 달이 슬슬 되었고 이제는 아침에 바쁜 사무실 직원을 대신해서 근처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배송까지 나갔다.

생협의 연두색 앞치마를 입고 생협의 스파크를 끌고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간식과 급식이 되어 줄 질좋은 식품군을 실고서

생협과 1.5킬로 떨어져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배송을 마치고 골목을 돌아나오다가

나는 딱 보고 말았다.


21년 전에 잃어버린 승범이의 리틀타익스 지붕차



물론 같은 자동차는 아니지만 운전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보게 된 저 파란 지붕차를 보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주유구 반대 편에 검정색 구두약이 잔뜩 칠해져 있는 지 보려고 말이다.

확실히 승범이가 잃어버렸던 파란 자동차에는 구두약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자동차에 앉아서 자기 발을 굴러서 앞으로 나가다가 바퀴에 자기 발을 깔고는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나는 또 그게 웃겨서 애는 울고 나는 웃던 자동차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잃어버리고 들어 온 날 저 자동차를 찻겠다고 남편이랑 대전 쓰레기 집하장까지 찾아가서 확인해보고

결국에는 못찾고 승범이도 실망하고 우리 부부도 코 빠뜨리고 돌아왔던 자동차다.

증거가 있다면 유일하게 한가지

승범이가 구두약을 실컷 발라놨다는 증거가 우리에게는 있었기 때문에 흔치 않았던 저 자동차를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구두약이 발라져 있는 지 확인을 했었지만 승범이가 잃어 버렸던 자동차는 똑같은 모양을 보는 것도 다섯번도 안될 만큼 드물었었고

대전 관사에서 잃어버렸던 우리 가족의 추억의 장남감 차가 되었다.


선화동에 살 때는 저 자동차에 승범이를 태우고 선화동 언덕배기를 남편이 밀고 다녔던 게 승범이의 즐거움이었다.

주말이면 승범이를 태우고 뒤에서 밀어 주면서 선화동 산동네를 돌아다녔다.

세 살 네 살 때 혼자서 자동차를 탈 때면 언제나 자기 발을 바퀴로 한 번은 깔고 울었던 승범이가 아빠가 밀어 줄때는

발을 뒤로 짝 올리고 너무 좋아했었다.


바보같이 차에서 내려서 구두약이 칠해져 있는지 확인하고 장남감 차의 기능을 상실하고 어느 집 주차금지 역할을 하느라

줄이 매어 진 자동차를 보고는 골목을 빠져 나왔다.


우리 만 기억하고 있는 아이의 표정과 행복해하던 아이의 모습이 있다.

파란 자동차 안에서 발을 올려놓고 아빠에게 오로지 자신을 맡기고 즐기던서 승범이의 행복해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일요일에 그렇게 놀아주고 나면 월요일에 아빠가 출근할 때 출근하지 말라고 목을 놓아 울더니

이제는 말 수도 별로없는 아들이 되어 버렸다.


거리는 1.5킬로 떨어진 지역 아동센터지만 자동차 한 대로 시간은 이십년 전으로 돌아갔다 나왔다.


수민이는 전국체전으로 서울에 와있고 중간에 애매한 휴일이 끼어 있어서 남편은 나한테 아주 미안해하면서휴가를 내고 집에 와있다.

힘들었던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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