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갔다.
작년에는 혼자서 쓸쓸하다고 - 잘 먹지도 않던 송편이 먹고 싶다고 - 엄마가 싸준다고 하면 귀찮다고 버려두고 오던 엄마표 각종 전들이
무턱대고 먹고 싶던 교토에서의 추석을 보냈었는데
막상 그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추석을 맞이하고 보니
그때 혼자 보냈던 추석도 나쁘지는 않았었구나 싶어졌다.
혼자서 전 부쳤던 동서가 보면 나야 뭐 할 말 없는 며느리지만
추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설날 이라는 날짜를 달고 있는 달력만 봐도 아 증맬증맬 -.- 이다.
아버지 산소에는 우리보다 먼저 다녀 간 동생이 심어 놓은 노란 국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고
산소 앞 포강은 물이 말라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말라 있는 포강에 물이 가득 차고 낚시하는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에 아버지가 덜 심심하면 좋겠는데
산소 앞에 있는 큰 집 고추밭의 고추만 탐스럽게 여물어 있었다.
한근에 만 삼천원에 벌써 팔았다면 큰 엄마가 좋아할 만도 하게 고추가 피망만하게 열려 있었다.
큰아버지가 당신 친손주들도 아닌데 우리 애들한테 오만원씩 승범이 은진이 따로 따로 십만원을 쓰셨다.
큰아버지 낡은 지갑에서 십만원을 받고 보니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다음에는 용돈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큰엄마 허리가 너무 굽어서 키가 점점 작아지시는 것 같다.
큰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시고
큰집에는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늙어가고 대문 옆 화단에 꽃잔디만 사람보다 기세등등하게 옆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성격이 급하시다.
작은 집인 우리 시댁은 명절 아침이면 큰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데 보통 여덟시쯤 집을 나서 차로 십분 거리인 큰 댁으로 가는데
성격이 급하다못해 불이 한 드럼쯤은 차 있는 것 같은 우리 시아버지는 여섯시부터 우리가 자고 있는 작은 방으 벌컥 열고
"안 일어나냐" 라고 버럭하셨다. 1차 경고인셈이다.
그리고 정확히 삼십분 후 2차 폭격이 이어졌다.
"안 일어나냐" - 물론 노크는 중간생략
시아버지의 2차 폭격 후에는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우리 시댁에서 시아버지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맞서는 자는 큰며느리인 나 밖에 없다.
"노크를 하시라고요 아 + 버 + 니 임"
시아버지 목소리보다 더 큰 며느리 말대답에 우리 시아버지 일보 후퇴
기선 제압후 다시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애들 깨우고 아 진짜 명절은 피곤하다.
친정으로 가서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과 엄마랑 옥상으로 곧바로 직행
옥상 좌담회를 삼십분 쯤 하고
잠깐의 옥상 좌담회에서 모든 스트레스가 풀린다.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옥상에서 우리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 집 마당처럼 어슬렁거리길래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옥상에서 산 지 한참 되었다고 했다.
그늘막을 쳐놓은 한 쪽 귀퉁이에 앉아 적당히 뎁혀진 옥상 바닥에서 엄마 나 여동생 셋이서
얼마 전 산골 전교생 이십명쯤 되는 초등학교에서 한 학년에 여덟반이나 있다는 도시 학교로 전학 간 남동생네 애들 얘기부터
괌에 갈 때 엄마가 공항 2터미널까지 혼자 리무진 타고 갈 때 젊은 애들이 엄마더러 어디 가시냐고 묻길래
괌에 간다고 했더니 할머니 좋은데 가신다고 했다는 얘기
제주도 여행가서 남동생네 애들한테 고기국수를 만들어 줬더니 초등학교 일학년인 남동생네 막내가 엄마를 보고
할아버지 따라서 일찍 돌아가시지 말고 우리랑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했다는 얘기
물론 그 말 끝에 쿨하기로 군산 대표 급인 우리 황여사는
"그런 소리 니 에미 애비 들었다가는 큰일날 소리다"라고 했다며 웃었다지만 - 듣고보니 다 본인 자랑이었다.
자랑으로 시작 해서 끝에 가서는 옥상 방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엄마의 걱정으로 끝이 난 옥상 간담회는
배가 고프다며 옥상으로 올라 온 제부의 등장으로 파토가 났다.
그리워 질 지도 모르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엄마의 자랑
무사히 모든 것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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