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삼남매"
여름 하계 훈련 마치고 3번이 집으로 왔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것같다. 승범이 군대 있을 때도 3번보다는 집에 더 자주 왔었는데 수민이의 생활은 군대보다 더 혹독하다.
전국체전 앞두고 빡빡한 스케쥴을 해내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운동에 시달리는 수민이가 아주 가끔
너무 힘들다고 전화를 하면 자식은 새벽부터 힘들게 운동장을 뛰었을텐데 아이가 운동했을 시간에
나는 잠을 잤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다.
운동하느라 여기저기 아픈 것도 참 미안하고
셋이나 거뜬히 자연분만한 나도 관절은 튼튼한데 운동에 시달린 수민이는 비가 올려고 하면 관절이 쑤신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운동이 진짜 힘들긴 힘든 거다.
그래도 그만 둔다는 소리하지 않고 하는 걸 보면 대견하다 못해 자식이라도 존경스럽다.
집으로 오자마자 구미에서 확 펴졌던 수민이의 혀는 반으로 접혀져서
엄마는 엄망
아빠는 아빵
누가 보면 둘째와 상당히 떨어진 셋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둘째와 불과 15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어쨌든 태어난 서열은 무시할 수 없어서
우리집에서는 언제나 차를 타도 셋째는 가운뎃 자리 ( 가장 불편한 )
뭘 가져오라고 시키는 것도 언제나 "수미나" 라고 부르는 우리 식구들이다.
그래서 자기 친구들중에 형제가 셋있는 막내들에게 "너희들도 차 타면 가운뎃 자리에 앉냐"고 물어본적도 있다고 한다.
운동신경이 어렸을 때부터 좋았기 때문에 달리기도 잘했고 배드민턴도 잘해서 어쩌다보니 운동을 하게 되긴 했지만
큰애와 둘째가 악기를 배울 때 우리집 3번이라고 배우지 않았겠나
첼로를 3년쯤 배웠나
하지만 그만뒀다.
첼로에서 톱소리가 났다.
음악은 수민이의 길이 아니구나 라고 판단하고 그만뒀고 공부하라는 소리는 거의 하지 않고 키운 방목식 육아의 최대 수혜자다.
삼일에 한 번씩 문을 여는 승범포차&은진 쌀롱이 수민이를 위해서 열렸다.
이제는 술도 자기들이 알아서 사고 안주도 자기들끼리 정해서 사니 우리는 장소만 제공해주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셋이 저 자리에 평화롭게 앉기 전까지
치킨은 승범이가 시키고 술은 은진이가 사기로 했는데 오빠가 산 치킨은 만 칠천원인데
오빠가 자기 카드 들고 나가서 사온 술은 이만원이 넘었다며
오빠가 자기 보다 삼천원을 덜 썼다며 남의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유승범이라며 분기탱천한 둘째의 항의가 잠시 있었다.
오빠랑 함께 먹었었던 닭발값의 계산도 오빠가 흐지부지 넘겨서 자기한테 주질 않았다는 해묵은 닭발값 논쟁도 잠시 벌어졌고
모든게 정리 된 다음 셋이 벌인 술판은 새벽 두시쯤 끝났나.
역시 계산은 정확해야지
둘쨰들은 대부분 저러나
승질이 국가대표급이다.
공주의 숲속에서 잠자는 숲속의 남자가 된 남편은 애들이 시끄러워서 자다가 깼고
나도 애들을 소음으로 신고하고 싶은 걸 참고 잤다.
춘천에 살 때 셋 다 초등학생이었었다.
내가 남편없이 어딜 갔다 오면서 셋을 태우고 오는데 뒷자리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셋이 떠드는지
몇 번이나 좀 조용히 하라고 했어도 애들이 시끄럽게 해서 화가 폭발해서 길에서 셋을 내려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애들을 내려놓고 돌아오긴 했지만 걱정이 되서 밖에 나와 있었는데
우리 애들 셋은 보이질 않았는데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셋이서 떠들면서 오는 소리가 사람보다 먼저 들려왔었다.
차에서 강제 하차를 당했어도 기죽지 않고 줄기차게 떠들면서 오던 셋이 너무 웃겼었다.
제주도 살 때도 차에서 하도 떠들어서 떠들면 차에서 그렇게 떠들면 카메라에 짝힌다고 속도위반 카메라를 가르키면서
말했었는데 은진이는 유치원 때 그걸 진짜로 믿어서 제법 컸을 때까지 그런 줄 알았었다고 했었다.
알고보니 하루 이틀 시끄러웠던 애들이 아니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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