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아르바이트 생활"
여름방학이 아르바이트와 함께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3월 학기이지만 일본은 4월에 입학식이기 때문에 여름방학도 우리보다 한 달정도 늦다.
여름방학을 맞아 고려대 어학원에 단기코스 등록을 하고 "에츠코"선생님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5월에 시간이 널널하다못해 어디에라도 팔고 싶었던 나의 시간도 "돈 페페" 알바와 함께 타이트해졌다.
에츠코 선생님이 돈페페로 찾아왔다.
손님으로 함께 갔었던 돈 페페가 임시 직장이 된 상황이지만 알바도 빽이 있어야 된다.
영경씨 빽으로 수제 맥주 두 잔 써비스받고 피자와 파스타 값만 냈다.
에츠코 선생님 5월에 만났을 때보다 얼굴 살이 쪽 빠져서 물어봤더니 함께 근무하는 교사중에 진상 아주 개진상이 있어서
마음 고생을 좀 했더니 살이 빠졌다고 한다.
그나마 자기는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지만 사츠키 선생님은 이야기도 못하고 시달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불쌍한 사츠키 선생님
여름방학에 독일에 여행 갈려고 계획을 다 세워놓고도 개 진상 동료 선생 때문에 일을 맡게 되어 여름방학인데도 일만 하고 있다고 한다.
에츠코 선생님은 미리 등록해 둔 고려대 어학원 수업을 들으러 한국에 가야 되니 자기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서 빠졌다고 했다.
한일 관계가 안좋아지는 했지만 입국할 때 한국의 입국 심사관이 다정한 한국말로 "어디에 계실건가요"라고 물어봐서 자기가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왜 이런 관계가 되었나고 물어보길래
뭐 정확한 것은 아닐수도 있지만 일제시대에 강제징용당했던 할아버지들이 일본의 회사를 상대로 임금 지불 소송을 냈던 것이
우리나라의 승소로 끝났는데 일본의 회사에서 지불하기를 거절하고 정부가 기분나빠하면서 결국 이런 사태가 벌어진것같다고 알려줬다.
교토에 있을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여전히 일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3주동안 서울에 있을 예정인 에츠코 선생님에게 8월 15일은 무슨 날인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자기는 그날 아마 한국에 없는 편이 나을 것도 같다고 했다.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웃자고 한 말에 진심으로 대답해주고
마셨다하면 기본이 일곱잔 이상인 에츠코 선생님이지만 8월 15일에 수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맥주집에서 일을 해보니까 다시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말을 할 줄 아는 개가 된다.
한잔 갖다 줄 때 다르고 두 잔째 갖다 줄 때 달라지는 사람들의 혀가 접혀지는 말투와 버릇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써비스에 목숨 건 사람
술마시고 화장실을 못찾겠다고 징징대는 사람
주문한 메뉴 빨리 갖다달라고 재촉하는 사람
바빠죽겠는데 가장 끝방에서 벨을 열심히 눌러서 뛰다시피 갔더니 땅콩 달라는 사람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게 땅콩타령을 하는데 비행기 회황사건에 견줄만한 열받음 사건이었지만 그래 너는 손님 나는 매니저
땅콩 많이 쳐드셔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손님 네-.-
돈주고 사먹는 메뉴였음 그렇게 달라고 했겠나 공짜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재촉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막상 갖다주면 나중에 갈 때보면 다 남겨놓고 뭐 하는 짓인지 노 재팬이 아니라 노 답인 인간들 참 많았다.
일은 힘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맛있다고 말하고 나가는 사람들 덕분에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주급으로 받는 알바비가 월급만큼 소중하고 쏠쏠하기도 한 알바 생활이다.
물론 이것도 이제 이번 달 안에 끝이 나는 상황이긴 하지만 시작했더니 한 달가기는 금방이고
알바 끝내고 수원으로 와서 동네 치킨 집에서 부지런히 알바중인 조카를 찾아가서
저녁 내내 남의 잔에만 맥주를 채워주다 내 잔에도 맥주를 채워받았다.
연기 전공인 조카가 내 옆이다.
얼굴이 반쪽만 나와서 나머지 커다란 반쪽은 사진 건너편에 있지만 저 녀석이 "김삼봉 산부인과"에서 2001년 9월 20일 태어났을 때부터
나하고는 뗄래야 뗄 수없는 조카와 이모사이이다.
우리 엄마가 여섯살때까지 키워준 조카는 지금에야 저렇게 철이 꽉 든 연기 지망생이지만 크는 동안에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었다.
애가 없어져서 엄마가 찾아보면 옆 집가서 그집 안방에서 주인처럼 애가 텔레비젼 보고 있고
어느날은 옆 집 아저씨 낚시 바늘 만지다가 낚시 찌가 코에 걸려서 코 안쪽에 걸린 찌가 반짝거리기만 하고 빠지지가 않아서
119불러야 되나 했더니 마지막에 코 한 번 팽 풀었더니 낚시 찌가 빠져서 다행이었다는 이야기는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때 어린이집 다닐 때는 어린이집 다녀와서 우리 엄마한테
할머니 할머니 오렌지가 영어로 뭔지 알아 하고 묻길래 오렌지가 오렌지지 그랬더니
아냐 할머니 오렌지는 영어로 "오우륀~~~~지"
우리 엄마가 그동안 들었던 개그중에 가장 많이 웃었다는 정진이 개그중의 하나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면 큰이모 집이라고 우리집에 와서는 방학 끝날 때까지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여름이면 춘천 호반 수영장을 누나들따라서 다니고 겨울이면 화천 산천어 축제에 데리고 가면서 나도
정진이 육아에 한 몫을 했다.
정진이 연기자되면 내가 매니저해서 전참시에 나가는게 내 꿈이라고 말하면 내 동생은 버럭하지만 -.-
어쨌든 아르바이트해서 연기 렛슨비 벌어서 렛슨 받고
아르바이트해서 사카모토 선생님 수업료 내는 나는
슬기로운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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