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비가 오면 빗소리에 꺠고 바람이 불면 바람소리에 눈이 떠진다.
바람 불고 비오면 안팎으로 집을 살펴봐야 된다고 엄마한테 배웠지만 비 왔다고 옥상에 올라가서 배수구 주변 쓸어 내는 일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그것 뿐인가. 우리집 사는 다른 세대 구성원들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딱딱 하고 살아야 된다고 엄마한테 누누히 들었지만
처음에는 그걸 제대로 못해서 101호 할머니한테는 주인과 세입자 뒤 바뀐듯 오히려 내가 잔소리를 더 많이 들었었다.
한동안 101호 할머니라는 전화번호 알림창만 끄면 내가 경기를 할 정도였었지만
그것도 그럭저럭 3년이 지나니 이제는 101호 할머니 나만 보면 자기 자식인듯 당신 아픈거 알아달라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면
큰 딸은 미국에 둘째 딸은 일본에 아들 하나는 잠실에 집이 두 채 있다고 큰소리를 쳐도
그 할머니 허리 아파 꼼짝도 못할 때 파스라도 한 장 준 사람은 잘난 자식들이 아니고 301호 아줌마 바로 나였다.
말로는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도 나고 드는 걸 못봤으니 할머니 자식들은 그렇게 말로만 있는 것이고
한달에 몇 번이라도 싫든 좋든 얼굴을 봐가면서 이웃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어디 안프지는 않으시냐고
말을 건네는 걸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변화를 시킨 것이다.
엄마는 나한테 아랫집 사람들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할 말있으면 딱딱 하라고 했어도 정작 엄마도 오랫동안
군산 삼학동 816번지 우리집을 거쳐 간 수많은 세입자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고 살았을까 싶다.
내가 엄마의 삶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살았다면 엄마가 아직까지
주랑이네 아줌마하고 친 동기간 처럼 지낼수가 있었을까
내가 중학교 때 우리집 작은 방에 세들어 살 던 주랑이네는 주랑이가 네살일 때 이사를 왔었다.
주랑이 위로 후규와 융규라는 오빠도 있었는데 왜 우리들은 아줌마를 보고 주랑이 아줌마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주랑이네 아줌마는 영원히 주랑이네 아줌마다. 지금까지도 주랑이 아줌마라고 부른다.
후규와 융규는 내 동생들과 친구여서 그 집 애들 둘에 우리집 4번과 5번까지 함께 몰려 다니면서 골목에서 아방구다방구도 하고
융규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자기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울면서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서
우리 엄마한테 자기 집 전화번화를 알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당황해서 자기 집 전화 번호 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띨빵했던 꼬마가 지금은 애가 둘에 경찰관아저씨다.
사우디에 계셨던 주랑이네 아저씨는 한참 뒤에 귀국을 해서 우리들은 그 아저씨가 좀 낯설었었는데 아저씨 귀국과 함께 우리 집을
벗어나 집을 사서 이사를 했고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으로 이사를 했었다.
엄마와 주랑이 아줌마는 우리집을 떠나 걸어서 오분 쯤 되는 바로 아랫 블럭으로 이사를 할 떄도 서로 부둥켜 앉고 울었었고
인천으로 이사를 할 때도 트럭을 붙들어 두고 둘이 부둥켜 앉고 울었었다.
참으로 이해 못할 어른들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주랑이네 아빠가 사우디에서 귀국하실 때 엄마가 부탁했던 세이코 손목시계
엄마가 누구를 주려고 부탁해서 샀는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내가 차고 다니다가 손목에 찬 시간보다 잃어버린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십년도 더 지난 다음 집수리 한다고 안방의 자개 장롱을 움직였을 때 바닥에서 나왔었다.
학교 수돗가에 풀러놓고 씻다가 잃어버렸을 거라고 혼자 세워놓았던 가설이 한방에 훅갔다.
주랑이 아저씨는 지금은 몸이 불편하셔서 아줌마한테 잔소리만 늘어 놔 주랑이 아줌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엄마가 말했다.
주랑이 집 말고도 서울에서 제화 기술을 배워서 우리 동네에 제화점을 차렸었던 성일 제화 아저씨네도 우리집 작은 방에 살았었다.
작은 대문 들어와서 우리집은 앞에 현관이 있었고 셋방들은 뒷 쪽에 현관이 있었기 때문에 출입구가 달랐었는데
제화점 아저씨네가 살 때는 구두의 모형같은게 그 집 입구 쪽에 엄청나게 쌓여 있어서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그게 사람이 발같아서 무섭기도 했었다.
그래도 언제나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그걸 보면서 "구두는 저런 걸 이용해서 만드는 구나" 그때 알게 되었다.
성일제화는 야심차게 차렸지만 기성 제화에 밀려 아저씨 가게는 곧 문을 닫았고 이사가던 날이 생각도 나지 않게 이사를 나갔다.
엄마가 울고 불고 한 건 주랑이 아줌마 뿐이었나 싶다.
2박 3일 공주에서 공주가 아니라 하녀처럼 지내고 올라와서 집에서도 하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소갈비를 굽고 돼지고기 김치 찜을 해서 구걸하듯 밥을 멕이고 아들이랑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면서 둘이 낄낄댔다.
아까는 비가 오더니 지금은 비가 그쳤다
옥상에서 만들어지는 태양광으로 여름철만큼은 호캉스 부럽지 않은 우리집의 펑펑 전기 덕분에
강남의 부잣집 사모님이 부럽지 않은 여름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잠시 후에 돈 페페에서 매니저로 돌아가면 끝이지만 그래도 아직 남은 시간
여전히 공부중인 일본어와 듣기
시간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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