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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나의 일학기 종강"

by 나경sam 2019.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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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학기 종강"


금요일 남양 중학교 학부모 평생교육  일본어수업이 방학 전 종강을 했다.

종강하는 날이라고 담당선생님께서 그동안 수고하셨다면서

개학 하고 마지막 남은 수업도잘 부탁한다고 하셔서 선생님과 마지막 남은 수업을 세어 본 결과

개학 후 네 번 만 더 수업을 하면 수업은 영원히 종강 - 나는 그럼 또 실업자되신다.

그래도 뭐 수업을 종강 한 기념으로 학부모 중 한 분이 모카케잌도 사오시고 아+아도 사오셔서

훈훈한 수업 분위기 - 도쿄 여행 다녀오신 어머니의 일본 여행기도 듣고

수업 후에는 점심까지 함께 먹고 일학기 종강을 했다.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알바하러 가기로 한 사당동 "돈 페페"의 알바가 있어서 금요일 수업 후 집에와서 잠시 쉬다가

"돈 페페" - 돈을 패대기치듯이 많이 벌라는 "돈 페페"

목요일 알바는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할 만 했었으나 문제는 금요일이었다.

술을 마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금요일에 마시는지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이 쓰나미급

그날 올린 매출이 남의 집 영업 비밀이라 밝힐 순 없지만 기본적인 월급받는 사람들의 조금 윗 선이었으니

영경씨와 알바 초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 지는 그 날 잘 때 내 발바닥이 계속 이야기해주었다.

손님이 계산하고 나가면 그 자리에 바로 다른 손님이 앉아 있어서 처음에는 헛 것을 봤나 했더니

바로 나간 다음 대기 손님이 들어와서 자리를 채운 것

교토에서도 식당 알바 안 한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본 손님들은 메뉴를 재촉하지도 않았고 알바하는 종업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도 않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 짝짝짝 짝짝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성격이 급하긴 하더라

일단 메뉴를 집어 넣으면 언제 나오냐고 한 번씩은 묻고

금요일에 왔던 꼰대 손님 네 명은 계산서가 잘못 되었다고 구청에 신고해버린다는 둥

너무 바빠서 다른 팀 추가가 잘못 입력이 된 걸 사과하고 시정해주었지만 - 그래봐야 큰 금액도 아니었지만

아주 상 꼰대 짓을 하는 바람에 내가 해줄수 있는 욕은 그날 다 했다.

뒤돌아서서

삼일 알바 하는 동안 정말로 사람은 가지가지 오만가지라는 걸 알았다.


삼일 알바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를 불렀던 호칭은 "사장님" "이모"가 대부분이었다.

"이모"도 별로 없었고 뭔가 주문이 하고 싶으면 그냥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손을 들면 가서 주문 받는 식이었는데

그래도 젊은 손님들은 "이모"라고 하면 "그래 내 조카가 여기 피자 먹으러 왔나 보다" 그런 마음으로 주문을 받고

또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주면 "그래 앞으로 내가 사장님 되라는 덕담인가보다" 그런 마음으로 주문을 또 받았다.

특이하게도 어떤 사람은 나보고 "선생님" 이라고 하면서 "선생님 - 여기 골든 에일 한 잔 부탁하겠습니다" 했다.

아니 이 양반아 너는 선생님한테 맥주 달라고 하냐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럴 때는 또 학생한테 맥주 주는 기분으로

기분좋게 골든 에일 한 잔 갖다 줬지만

아줌마들 단체 손님이 와서 "아줌마"하고 부를 떄는 진짜 빈정이 확 상했다.

그것도 내지르는 소리로 "아줌마" 여기 물 좀 갖다줘요

"물은 니 손으로 떠다 처 마셔 여기 물은 셀프야 이 아줌마야" 라고 속으로만 말하고 "셀프예요 손님" 해줬지만

그래도 그 아줌마 끝까지 간장 가져와라 그래서 간장 갖다주면 내가 언제 간장 갖다 달라고 했냐 마요네즈라고 했지

그리고 마요네즈 안에 청양고추 좀 팍팍 썰어넣어라 그래야 맛있다.

그렇게 요리를 잘하면 니가 해서 드시든가 이 아줌니야 뭐하러 여기 와서 마시면서 잔소리를 하는지


목 금 알바 이틀 후 어머니 생신이라서 시댁에 내려가서 시댁 식구들이랑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그동안에도 수술을 두 차례 정도 하셨는데 다시 또 안 좋아지셔서 내 년에 또 한 번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머님이 그것때문에 살짝 우울하신것 같았다.

생전 안보이던 눈물도 보이시고 "내가 이렇게 아프다가 먼저 죽으면 니 아부지 불쌍해서 어쩐다냐고"

갑자기 써얼렁해진 분위기

하지만 우리에겐 불 났을 떄 끄는 긴급 소화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둘쨰 며느리

"허리 아프신 걸로는 안 죽어요" 둘쨰 며느리가 훅 하고 한 방 날렸다.


아들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역시 며느리 피 한방울 안 섞인 며느리들은 달라

그래도 허리 아프시다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계시는 어머니가 아기처럼 안쓰러워 보이는 건 그동안 함께 한 세월이 있어서일것이다.

어머니 우리가 간다고 먼저 나오니까 나더러 "어디 일하러 다니냐"고 물으시는걸 보면

궁금한게 아직 많으신 우리 어머니 오래 사실게 틀림없다.


"어머니 중학교 수업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데 그것도 이제 방학해서 실업자에요"

말했지만 알아들으셨을지-.-


철이 좀 났는지 삼십대 사십대 였을 때는 생신에 내려 오는 것도 정말 싫었었는데

이제는 몇 번이나 이런 생신 지내실 수 있을 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오십 둘에 철이 들긴 들었네


실업자가 되었지만 화요일에 가는 후쿠오카 여행이 있으니

전쟁같은 시국 상황에서 일본 간다고 하는 건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당분간 실업자 되는 건 좀 잊어버리고 싶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 근성이 있긴 있다는 걸 알바하면서 알았다.

아사히가 그 많은 손님들한테서 주문이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무서운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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