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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교토에서 1월 1일"

by 나경sam 2019.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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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1월 1일"


지난주부터 연이어 빵집은 연말 준비와 정월 준비로 여간 바쁜게 아니어서 겨울방학중이라 아침부터

빵집 연말 특공대로 다시 투입이 되서 바쁜 하루 하루다.

빵을 포장하고 택배 발송하는 작업을 하는 곳(내가 일하는 곳)과 빵을 굽는 곳이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븐실에서

구워진 빵을 가지러 가는 것도 지금처럼 바쁠 때는 그것도 여간 큰 일이 아니다.

그걸 주로 키타무라가 했는데 키타무라의 야스미 날에 내가 가서 갓 구워진 "시나몬 롤"을 가져오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나몬 롤"을 가져오는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오븐실의 뒷정리까지 빵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해야 된다는것이었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한 번 보기만 했을 뿐 기억이 나질 않아 - 그리고 오븐실의 도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쨌든 모르면 물어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나몬 롤"을 가질러 갔는데


오븐실에는 전설의 "스즈끼상"이 있었다.


그 분으로 말할것같으면

1.언제나 화를 내고 있다.

2.화를 내는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3.우리쪽 대표 선수 하마다 조차도 스즈끼 앞에서는 껙소리도 못한다.

오죽하면 빵이 얼만큼 구워졌는지 물어보는 전화를 가끔 "보로니아 빵가게"에서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데

그걸 오븐실에 직접 하질 못하고 우리쪽에 해서 물어본다.

스즈끼상이 그만큼 껄끄러운 사람이라서 웬만해서는 안거드리고 넘어가는 것


그런데 "시나몬 롤"을 가질러 갔더니 전설의 "스즈끼상"이 인상을 팍 쓰고 빵을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마스크를 하고 있어도 눈매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치만 내가 누군가

"아따시 - 고상데쓰


역시 빵을 꺼내기만 하고 뒷정리를 싹 잊어버렸다.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스즈끼"에게 물었다.

나 - 이거 정리 어떻게 해야되나요

스즈끼 - "나는 지금 바쁘니까 그거 못가르쳐 줘 그니까 너 말고 그거 할 줄 아는 사람 불러와"


초면에 진짜 너무 인정머리없는 일본 아저씨를 봤나

그래서 다시 한 번

나 - "아자씨 그러지말고 알려주심 안될까요^^" 했더니

스즈끼 - "이치모토 불러와"

니 - "그러지마시고-.-"

스즈끼 - "내 말 안들려 이치모토 불러와" *3

정말 황당하게도 빵을 꺼낸 판을 닦아서 어디에 놓으면 되냐고 물었을 뿐인데 이치모토를 불러오라고 그것도 세번씩이나

승질이 드럽다 못해 풍년이 난 아저씨였다.

어쩔수없이 이치모토를 불러왔다. 이미 빵집 아줌마들은 난리가 났다. 스즈끼가 원체 승질 더럽고 거시기 하잖아

침묵의 이치모토를 따라서 스즈끼앞으로 갔다. 스즈끼의 잔소리와 함께 이치모토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뒷정리를 해주고 이치모토는 갔다.

나도 가야 되는데 기분이 좀 나빠서 - 하지만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일처리를 못 한 내 잘못도 있으니 그냥 가기가 그래서 사과를 했다.


나 - "저기요. 죄송했습니다"

스즈끼 아자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건 니 잘못이 아니야 . 이치모토가 너를 잘못 가르쳐서 그런거지"

뭔가 한풀 꺾인 것처럼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닙니다. 이치모토는 잘못이 없어요.사실은 이치모토에게서 한 번 배우긴 했는데 제가 그걸 완전히 잊어버린거니까요"

그렇게 말했더니 "스즈끼" 아저씨가 진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보면 어쩔건데-.-

하지만 내가 누구야 "아따시 고상데쓰"


기죽을것도 없고 무서울것도 없지


문닫고 나오면서

"다음부턴 잘할게요 화이팅"


아자! 아자! 화이팅!


빵집에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들에게 이치모토의 잘못이 아니고 그건 내 잘못이고

다음부터는 잘하겠다고 했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치모토가 "스즈끼가 졌다"고 했고

"오노상은 고상이 이겼다 라고 했다.


아무도 "스즈끼"상앞에서는 말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

빵집의 역사를 새로 쓴 여자되시겠다.

(스즈끼 의문의 1패)

그렇게 저렇게 빵집 12월 31일을 보내고 집옆에 있는 "치온인"에 가서 타종을 보기 위해 줄을 섰다.

원룸도 아닌 반룸의 대 청소도 말끔히 하고 나름 한 해가 가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치온인으로 갔으나

오메나 세상에 줄이 줄이




이 정도는 앞부분일 뿐이다. 나는 이 줄을 돌고 돌아 경찰 아저씨가 여기가 끝입니다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곳에 가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 두 명과 한 셋트가 되어서 줄을 섰다.

심지어 지금 서 계시는 분들은 안에 못들어갈수도 있습니다 라는 친절한 멘트까지 들어야 했다.줄이 3킬로는 구불구불 있었던것같다.

그래도 참자 참고 기다려서 안에 들어가자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버텼지만 현실의 줄은 너무 길었다.

한시간쯤 줄을 섰다 포기하고 그냥 내려 왔는데 경찰들이 내가 내려 오는 길에 가이드라인을 쳐놓아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줄 알고 내려왔을 뿐인데 그게 사실은 안에 들어가기 위헤서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이었던 것이다.

전혀 의도치않게 나는 줄의 앞에 붙어버린꼴이 되었다.

새치기 하고 싶어서 한게 아니고 집으로 가는 길인줄 알았는데 경찰들이 바리케이트를 쳐놔서 나는 쭉 따라 내려온길이

줄의 선두가 되버린것

아마 일부러 새치기를 하려고 했으면 못했을텐데 하여간 엉뚱하게 앞으로 오게 되버렸다.


게다가 세사람씩 줄을 서라고 자꾸만 경찰 아저씨들이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혼자왔기 때문에 눈치볼것 없이 앞으로 쭉쭉 나가서

줄의 선두에 섰다. 예상밖의 수확 "소확행"도 아니고


저녁 8시부터 간격을 두고 세 차례에 걸쳐서 종을 총 108번을 친다는데 치온인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치온인의 승려들이 구호와 함께 종을 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축하했다.




1시 다되서 집에 왔는데도 밖은 따뜻했고 집은 추웠다.


제야의 종을 들은 게 처음이었다. 항상 티비에서만 봤지 그것도 일본에서 이렇게 줄서가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종이 쾅하고 울릴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시원해졌다.


잘 살아낸 1년이었다.


오늘 빵집은 바빴고 여전히 키타무라는 꼴보기 싫었고 세상은 달라진게 없었지만

새해는 밝았고 내 마음은 편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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