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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추운게 당연한데도 더 춥다"

by 나경sam 2018.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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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게 당연한건데도 더 춥다"


한여름 최고점을 찍던 온도가 40도였었다.오늘 아침 날씨를 확인하고 학교에 갈 때는 오늘 낮 최고 기온이 17도

한여름일때와 비교해보니 13도쯤 차이가 난다.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우리 막내가 챙겨다 준 후리스를 코트 안에 입으면서 혼잣말을 한다.

"후리스 없었음 어쩔뻔 했냐"


그래도 학교까지 걸어가는 30분이 지나면 처음에 껴입고 집을 나갈 때의 비장했던 기분은 어디론가 날라가버리고

옷을 한 개 두개 벗고 싶어질 정도로 걷는 동안 저절로 운동이 된다.

두 발이 아니라 차에 의지해서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죄값을 치르는것처럼 걷는 양이 많아졌다.

좀 늦게 나간 날은 8시 15분

그래도 학교에 가면 애들이 없다.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여전히 "토상"과 나밖에 없는 교실이다.

비염이 심한 토상은 끅끅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수업 시작전까지 자신의 기관지를 다스리고 있고

선생님이 부르는 출석에 맞춰서 대답하면서 자기 자리에 앉는 신기한 꼴을 매일 보게 되는 우리반이다.


통큰 대륙의 딸네미 "쵸"상은 어제도 결석을 했다.

자기는 이 학교는 대학원을 가기 위헤 잠깐 다니는 의미없는 학교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적당히 적당히 공부하다가 졸업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더니

정말로 쉬고 싶을 땐 쉬고 자고 싶을 때는 자면서

아침마다 맥도날드는 적당히가 아니라 꼬박꼬박 꾸역꾸역 잘도 먹는다.

모든 중국애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쵸상"은 어쩐지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가장 중국사람다운 중국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대륙의 여자 왕서방같은 쵸상이다.


1학기에 총 6번의 시험을 보고 학기를 마친 것처럼 2학기에도 총 6번의 시험이 있다.

작문이 2번 테스트가 4번이다.

오늘은 1차 작문 테스트를 봤고 그것도 시험인지라 몸이 참 피곤하지만 금요일에 있을 1차 테스트를 생각하면

집에서 마냥 쉴 수도 없는 딱한 오십하나 아줌마가 바로 나다.

오늘 하루 야스미가 있다는 게 공부할 절호의 기회다.

어제는 빵집 일이 정말 얄밉게 바빴다.

바쁜 와중에 일하는 사람 수도 적어져서 세사람이서 6명의 일을 하려니까 나도 한카이 아줌마도 키타무라도 이치모토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카이 아줌마가 키타무라랑 택배 발송 빵 송장을 보면서 빵 종류와 갯수를 맞춰보는 일을 하면서


"이치코 - 상 (딸기빵 3)"그랬는데 갑자기 이치모토가 자기 이름 부른줄 알고 대답을 했다.

이치까지만 듣고 자기 부르는 줄 알고 대답한거다. 이치고는 딸기인데 자기가 딸기라고 대답을 한거지


그래서 내가 그 다음에 이치모토를 부를 때 "이치모토상" 그렇게 안부르고 "이치고상" 그랬더니 아주 웃겨 죽을려고 했다.


"그래 너는 나를 고달프게 해서 내 눈에서 눈물뺏지만 나는 너를 웃겨서 눈물나게 하니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다"

유머감각이라고는 1도 없는 이치모토가 가끔씩 내가 하는 농담을 아주 좋아하는 걸 보면 얘도 참 재미없게 빵집 일만 하다가 나이먹은게 틀림없다.


이치모토가 5시에 오더를 준게 한 시간에는 도저히 끝낼수 없는 -.-;;;

지금 생각해보니 팥쥐 엄마가 팥쥐랑 잔칫집가면서 밑빠진 독에 물길러서 채워놓으라고 했던 것처럼 일이 끝날것 같지 않게 줬지만

(무려 빵을 200개를 포장해서 택배를 꾸려야 되는 일이었다-이치모토 이 딸기 아줌마가 옴팡지게 일을 준 거다)

그래도 내가 누구냐. 태극마크달고 보로니아에서 뛰는 용병아줌마 아니겠냐고

손이 미친듯 저절로 플랜 빵을 포장했다. 이 백개를 슉슉슉 바람소리나게 포장을 해서 결국 6시안에 일을 다 마치고

재고의 빵 숫자까지 완벽하게 정리해서 이치모토에게 보고 끄 읕  대한민국 만세 방탄 소년단 만세다.


다 끝냈다 이치모토야 그랬더니 자기가 준 일의 양을 알고 있는지라 허걱 놀라면서 이치모토가 살짝 부르르 떠는 걸 보고야 말았으니

앞으로는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삼백개 포장하라고 하면 그때는 식빵으로 이치모토의 머리를 가격하고 치료비 물어주고 그만 둬야지


그래도 어제는 키타무라랑 모처럼 화해의 해빙무드를 탔다.


휴게실에 혼자서 점심 휴식을 하고 있는 키타무라에게 내가 쵸코렛 한개를 줬더니 얘가 너무 좋아하는거다.

"그래 너도 애들이랑 살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내가 너를 미워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지"

지난주 토요일 성당에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토요일 성당 저녁 미사중에 심각하게 졸았지만 그래도 성령의 힘으로 키타무라에게 건넨 쵸코렛 한개에

그녀가 너무나 환하게 웃었다.

빵집 일 끝나고 나올 때는 내일 작문 시험 잘 보라고 말 수없는 키타무라한테서 응원의 말까지 들었으니

빵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좀처럼 말하는 법이 없는 키타무라로서는 방언터진거다.


나도 이번주에 시험이지만 한국도 이번주에는 수능이고 딸 친구중에는 아직도 3수 고군분투중인 몇명이 있어서 마음이 여간 쓰이는게 아니었다.

특히 월요일 2차 발표를 앞둔 친구가 있어서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 빵집 일을 하면서 핸드폰은 금단의 영역이었건만

중간에 살짝 열어봤더니 "합격했다"는 전달이 있었다.


빵집 일도 힘든 줄 모르고 내 마음이 들떠서 일을 했다.

집에 와서 축하 전화를 하고 나도 겪었던 작년의 모든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월요일이 합격자 발표의 날이면 생애 몇 되지 않을 만큼 긴 주말을 보내게 된다.

작년 이 맘때 한시간이 일년같은 주말을 보냈었고 월요일 수업을 간 학교에서 선생님의 양해를 구하고

합격자 발표를 열어보고 "합격"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너무나 홀가분하고 기뻤던 그 마음 - 나에게는 그게 일년 전의 일이 되었고 어제 합격한 그 친구와 친구의 엄마에게는 현실이 된거다.


우리 딸은 자기 일처럼 너무 기뻐서 그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고 했다.

그 친구도 안쓰러웠지만 자기는 어쩐지 친구의 엄마가 너무 애달픈 마음이 들었었다고 했다.

이제 친구 엄마도 고생이 끝났을거라고 생각하니 좋았다고 하면서

원래도 철이 든 애였었지만 재수를 하면서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 대해서도 마음이 더 깊어진 딸이다.

아직 소식이 없는 삼수 친구들도 있어서 다 끝난게 아니라 기다려 봐야 되지만 입시가 지옥 오죽하면 사람들이 지옥이라고 하겠나 그말이 맞다 싶다.


2017년도 1월 신촌에 있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실수했다면서 기가 팍 죽어서 차 뒤에 타고 아무말도 없던 딸을 태우고 오던

수원까지 길고 길었던 내 마음의 시간도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가겠다고해서 김포공항에 내려주고 혼자서 돌아오던 새벽 운전길의 그 시간도

그때는 너무 쓰려서 쓴 물이 넘어 올 것같던 시간들도 지금은 이렇게 차분히 생각해볼수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시간은 가고 그 길의 끝이 당장은 안보여도 묵묵히 가다보면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또 길이 있다.

작년에 수능을 치고 나오던 우리 집 마지막 수험생이었던 막내를 기다리던 그 시간도 참 길었었지만

학교 담벼락에 붙어서 아이를 기다리던 그 절절하던 시간의 뒤에는 저녁을 먹으러 고등반점에 갈 것인지

갈비를 먹으러 화서동 돼지꿈꾼날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가족 모두가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 있는게 인생이다.

힘들고 지치는 시간들만 계속해서 연장되는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걸 아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직 남아있는 시험을 준비하는 나의 모든 지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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