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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나 홀로 가을 소풍"

by 나경sam 201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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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가을 소풍"


알바가 두 곳이니 한달에 8번 쉴 수 있었던 휴일이 반토막이 났다. 4번 쉴 수 있게 한달이 셋팅이 되어졌고

11월 들어 그 4번중에 오늘이 한번의 시작

화요일 5교시 수업을 하고 몸이 좀 지쳤지만

그리고 어제 밤에 "키타무라"랑 싸우는 꿈을 꿔서 기분이 좋지도 않았지만 (꿈속에서 우리말로 욕을 발사해줬다)

어제 일을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 받았던게 꿈에 그대로 나타난것

서서 하는 일이다보니 사람들 뒤로 지나다닐 일이 많이 있고 작업장이 좁다보니 주의하지 않으면 부딪칠수 있는 환경이라서

사람들 뒤로 지나다닐 떄는 "우시로 토오리마스" - 뒤로 지나갑니다.

그 소리를 꼭 하고 지나다니는데 키타무라는 그냥 퉁퉁퉁 지나다니고 게다가 내가 미니 빵을 자르고 있는데

친한 척을 하면서 자기 점심으로 먹게 빵을 주라고 말을 툭 던지는게 기분이 확 상했던 탓으로 꿈까지 꾼거다.


빵을 달라고 부탁을 할 때도 꼭 오네가이 시마스를 하면서 부탁을 하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얘는 뭘 보고 배웠는지 "빵 호시이데스" 말을 툭 던졌고 그게 보기 싫어서 나도 식빵 귀를 모아놓고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다.

말하자면 이렇게 된거다.


기타무라 -  "빵 호시이데스"

나 - "니가 알아서 가져 가세요"


빵집 아줌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쓰미마셍"과 "오네가이시마스"를 모르는 "키타무라"를

내 대신 학교에 다시 보내고 싶다.

어제는 카미쓰나 아줌마랑 나 키타무라 타카세상이랑 이치모토 이렇게 일을 했는데

나처럼 4시간 알바인 "카미쓰나" 아줌마가 일을 하면서 나한테만 조용히 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지금 도쿄에 있는 병원 집중치료실에 계시는데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혈관 질환으로 쓰러지셨는데 이제 여든 둘이라고 하면서 하루 당일치기로 신칸선을 타고 도쿄에 다녀와야 되고

느닷없이 전화가 올 까봐 무섭다고도 했다.

마음이 불편한 카미쓰나 아줌마가 나한테라도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거고 그럴 때는 누구라도 들어주면 마음이 좀 나아지니까

나는 가만히 들어줬다.


5시에 아줌마가 퇴근을 해야 하는데 이 놈의 빵집 일이라는게 5분 늦게 나가는게 미덕이 된 곳이라

카미쓰나 아줌마 5시가 되었는데도 쓰레기 봉투를 묶고 있길래

내가 그걸 뺏으면서 얼른 가라고 했다.

내가 쓰레기봉투 들고 나오면서 카미쓰나 아줌마를 5시에 퇴근을 시켰다.

그게 아주 작은 일이었는데도 카미쓰나 아줌마는 너무 고맙다고 했고 빵집앞에서

나는 나보다 한참 작은 카미쓰나 아줌마를 한 번 안아주었다.


이혼하고 아들 둘을 키우는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 내가 처음에 이름을 잘 몰라서 쓰나 아줌마라고 했던것같다)

전 남편이 경찰이었었는데 무서웠었다면서 나한테는 이런 저런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어쩜 같은 일본 아줌마들보다는 자기 말을 완벽히 알아듣는것은 아니지만 한다리 건넌 것 같은 느낌의 내가 더 편할 수 있을것이다.

때로는 가까운 사이보다 완벽한 타인이 주는 편안함이라는게 있으니까


학교는 봄과 가을로 학기만 바뀐게 아니라 교실의 아이들의 분위기도 어쩜 이렇게 달라졌는지

봄학기 때도 결석과 지각생이 있긴 있었지만 9시 전에 어느 정도 아이들이 교실에 속속 들어와 있었는데

가을 학기 301호 실 우리 반은 9시전에 와 있는 학생이 16명 중에서 5명도 안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9시 1분부터 아이들이 선생님이 부르는 출석과 함께 자기 이름에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 앉는 "봉숭아 학당"이 되고

언제나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셋트를 사오는 중국 "쵸"상은 8시 58분쯤 교실에 도착해서 열심히 햄버거를 먹는다.


선생님들이 나중에 먹으라고 하면 항상 하는 소리가 정해져있다.


선생님 "쵸상 나중에 먹어요 출석부릅니다"

쵸 "아직 9시 안됐어요. 아또 1분" 선생님을 이겨먹고 햄버거를 먹는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 오지 않아서 내가 다음날 왜 안왔었냐고 물었더니

"오고 싶지 않아서"라고 짧게 대답을 하면서 웃었다.


진정한 대륙의 딸네미다.


어제는 우리 반 중국 남자애 "엔상"이 교과서를 잃어버렸다고 분실물 보관함이랑 여기저기로 자기 교과서를 찾으러 다닌 일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고 교과서가 없으면 수업하기가 곤란하다보니 어제 집에 가면서 교과서를 서점에서 다시 사기로 한 걸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엔상"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갑자기 누군가가 "아 여기 교과서가 있어요"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가 없어서 애타게 찾고 다녔던 엔상을 보아온 터라 그 교과서의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엔상것이라는걸 알수 있었다.


그런데 엔상은 학교에 나오질 않았고 갑자기 선생님이 누구든 엔상 전화 번호 아는 사람은 지금 빨리 엔상에게 전화해서

새로 산 교과서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면 얼른 가서 환불하라고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교과서 대금은 무려 3200 엔이었으니 아깝기가 말해 뭐해

라인으로 "교과서를 찾았다"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이렇게 왔다고 했다.


"혼또오-.-"


중국 애지만 어이없는 일에는 일본어로 대답을 보내왔다.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다. "그러니까 자기 물건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고"


걸어서 난젠지까지 갔다.





산몬

三門



지온인(知恩院), 닌나지(仁和寺)와 함께 교토 3대문으로 꼽히는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628년 건립되었다.





테라스처럼 보이는 실제로 아래에서 보면 굉장히 위에 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올라가는 입장료가 500엔

난젠지 안에 작은 정원이 딸린 작은 절들이 세 곳 쯤있고 각각 입장료를 받는다.

오늘은 그냥 돈내고 들어가는 곳은 패쓰하고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수로각"



난젠지 안에 있는 수로각이다.

오래된 이 벽돌 수로각위로는 비와호에서 흘러온 물이 위로 지나서 흐른다고 한다.

교토스러운 풍경이다.


난젠지 바로 앞에 있는 "블루보틀"



은지니랑 함께 갔었던 "블루보틀" 추억은 그래서 좋은거다. 함께 했었다는 기억을 공유한다는것은

이렇게 혼자 일 때 다시 생각해보면서 혼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 수업 시간에 일본어 청해 문제가 안들려서 좌절 모드였었는데 때로는 좀 안들리면 어떠냐 싶다.

나만 헤맸던것도 아니고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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