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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우리집 3번"

by 나경sam 201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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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인듯 내 딸같지 않은 우리집 3번"


익산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우리집 3번이 경북 대표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경기는 항상 예선과 결승으로 진행이 되다보니 얘가 예선을 뛸 시간이면 수업을 하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다행히 예선을 통과해서 결승 뛸 시간이면 그때는 또 그때대로 마음이 긴장이 되어서 편하지가 않았다.


우리집 식구중에 전국체전 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데

오늘은 경북 지역 여자 대학부 계주 팀원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땄다.




내가 못 간 대신에 외할머니 외숙모 다 가서 보고 할머니가 보는데서 1등을 해서 더 기쁘다는 우리 딸이다.

남편도 연가내고 하루 갔다더니 익산까지 간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허벅지에 길게 테이핑해서 붙인 걸 보니 그거 보는 것도 마음이 아리다.


재작년에 인천에서 여자 고등부 시합이 있을 때도 우리 엄마랑 가서 보고 그때도 우리 딸 팀 경기체고가 1등을 했었는데

우리 엄마 황경예 여사는 1등 요정 할맨가보다.


언제나 3번으로서 알게 모르게 서러움도 많았던 우리 3번

차를 탈 때도 뒷좌석 가장 불편한 가운뎃 자리가 3번의 지정석이었고

 (언니 오빠가 너는 막내니까 거기 앉아 그러면 얘는 그냥 앉았다. 그냥 당연히 언니 오빠 말이니까 듣는 애가 우리집 3번)

둘째 셋째가 어렸을 때 항상 하던 놀이가 "눈높이 선생님" 놀이였었다.

가방 싸길 좋아하는 우리 둘째가 선생님 가방처럼 학습지를 몽땅 넣어서 가방을 꾸려 자기 앞에 셋째를 앉혀놓고

공부를 시키는 놀이를 많이 했었다.

그게 얘들이 다섯살 여섯살 일곱살 그 무렵까지 늘 하던 놀이였었는데 내가 봐도 언제나 셋째는 역할이 학생이었었다.

셋째는 방에서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고 둘째가 학습지 가방을 들고 방문하는 역할을 주구장창 하고 놀았었다.

언제나 역할이 학생이었던 우리 셋째

자기도 언니처럼 선생님 역할이 하고 싶었는데 언니한테 선생님하고 싶다고 한 번 말했었는데 셋째가 선생님이 하고 싶다고 하자

우리집에서 눈높이 선생님 놀이는 싹 사라지고 말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반항이라고는 없었던 순하디 순한 우리 3번이 밖에서는 근성이 있는 선수로 성장한거다.


선생님의 자리를 넘겨주느니 그 놀이 자체를 아예 없애버린 우리집 둘째다.

역시 무서운 데가 있는 우리집 둘째


언젠가 전주 살 때 옆집 동갑내기 진수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놓아서 진수가 며칠을 병원 다니면서 상처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내가 그 때 생전 처음 치료비 봉투를 들고 가서 사죄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개 바로 우리집 역사 중의 하나

"우리집 둘째가 저지른 옆집 꼬마 진수 폭행 사건"


셋째 이야기하다 멀리까지 갔다.


몸도 약하고 어린냥이 아직도 질질 넘치는 어쩔수없는 막내둥이라

울기도 잘 울고 보고 싶다고 혀짧은 소리도 잘하는 귀염둥이가 트랙에서 확확 뛸 때는전혀 다른 모습이다.

내딸이지만 얘가 참 멋지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힘들게 훈련하고 아파하는 과정들을 봐 왔기 때문에 오늘 금메달이

엄마로서 진짜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국체전이라니

내 딸이

그것도 금메달이라니


우리 3번 때문에 엄마도 금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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