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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가을학기 개강"

by 나경sam 201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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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학기 개강"


가을 방학 3주는 빵집과 함께 흘러갔다. 좀 한가해진 빵집이었나 싶었더니 역시 "보로니아는 보로니아였다"

매출이 전년 대비 260프로가 올랐다고 빵집에서 포상으로 쵸코렛 비스켓 셋트를 줬다.

후치모토 아줌마가 고상이 열심히 일해줘서 그런것같다고 풍선껌 멘트를 날리긴 했지만 가끔은 공부하러 왔나 빵집에 일하러 왔나 싶을 정도로

빵집 일도 열심히 하긴 했다.

막내 여동생이 나더러 "조선족 아줌마" 같다고 한마디하긴 했지만


그래 조선족 아줌마면 어떻고 그냥 한국 아줌마면 어떠냐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빵집에서 일할 때 아줌마들이랑 깔깔대고 얘기하고 웃는것도 학교하고는 다른 분위기가 있어서 스트레스해소가 될 떄도 있고

물론 스트레스를 따따따블블블로 받고 오는 날도 많지만

(키타무라+이치모토 = 내 스트레스의 원인)

하지만 무시 무시 무시 - 안 그러면 내가 견딜수가 없다.

아마 얘네도 나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게 있을 거니까 서로 안됐다 생각하고 지내야지

일본 체육의 날이 10월 8일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가을 학기 개강은 10월 9일 화요일

쳬육의 날이라는게 일본에서 최초로 열렸던 도쿄 올림픽이 10월 10일이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10월 10일이 해마다 요일이 수요일도 되고 목요일도 되고 그러다 보니 일요일과 붙은 연휴가 되질 않아

10월 둘 쨰주 월요일로 체육의 날을 옮겨서 연휴로 한다는 것.

어제 개강하고 알았다. 수요일 담당 선생님인 "하마다"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다.


빵집에도 하마다가 있고 학교에도 하마다가 있지만 둘의 성격은 정 반대같다.

빵집 하마다는 목소리가 아래로 팍 깔려 있고 하마다 선생님은 목소리가 위로 둥둥 떠있고 혼자 말하고 혼자 많이 웃었다.

화이트 보드에 글씨를 쓰면서 한 글자 쓸 때마다 얼마나 보드가 흔들리든지 지진난것처럼-.-

글자를 쓸 때마다 선생님 머리도 흔들리고 마카펜도 따따따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고 보드도 흔들리고 선생님 몸은 더 흔들려 진도 5

하지만 유쾌하고 재밌는 분 같다.

어제 수업 시간에는 몸에 좋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은 몸에 좋은 음식 - 예를 들면 낫또우라든가 우메보시 그런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면서"

너무나 크게 혼자 웃으셨다.


봄학기 때 우리반이 "봉숭아 학당"이었다면 가을 학기반은 "영재반"아이들같다.

토상과 타이완 동막골 찐상과 같은 반이 되었고 가을 학기 첫날도 봄학기 첫 날처럼 토상 옆에 앉게 되었다.

사람이 참 이상한게 4월 6일 토상 옆에 앉았을 때는 토상이 너무 못생겨 보였었는데 10월 9일에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는 거다.

토상 자체가 한 학기를 겪어보니 너무나 성실한 사람이었고 = 다시 시작 되는 학기 첫 날 짝꿍이 되어서 이번에는 기분이 좋았다.


동막골 찐상과 이제는 같은 반이 안된 난까 여사와 개강 첫날 우리끼리 개강 모임을 했다.


새우 덮밥과 소면 - 690엔인데 양도 적당하고 맛도 있고 은근히 학교 근처에 이런 집이 많이 있다는데

얘네랑 처음 가봤다.



동막골 찐상은 가을 방학중 타이완 시골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 - "그래 맛있는거 많이 먹고 왔어" 물었더니

찐상 - "그게유 목위까지 먹고 다시 누웠다가 배가 안고픈데 또 목 위까지 먹고 저녁때 또 목위까지 차게 먹고 그랬슈"


어쩐지 얘가 원래도 후덕하신 분인데 더 후더덕 후더덕 해져서 왔더라.


보로니아는 갑자기 "후치모토" 아줌마가 손가락 부상을 당해서 일손이 급급급 부족 사태 - 비상 사태가 되어버렸다.

성격이 급한 후치모토 아줌마가 빵을 자르다가 다치신 거다.

후치모토 아줌마 빵 자르는 걸 많이 봤는데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저렇게 자를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속도가 후덜덜이었었는데

아줌마가 다친 거다. 아줌마가 다치고 나서 빵집 환경을 보니까 아닌게 아니라 빵집은 사방이 다 위험한 물건들이긴 했다.

일할 때는 몰랐는데 누군가 다치고 보니까 정신이 바짝들면서 나도 조심해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고

아파서 10월은 못나오는 아줌마한테 전화를 해서 위로를 해드렸다.


나 - "후치모토상 .저 고 상인데요 아픈거 다 낫고 건강해져서 다시 오세요.걱정 많이 했어요"

후치모토 - "아니 이렇게 일부러 전화까지 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서 어쪄. 참맬로 고마워라잉"


억센 간사이 벤으로 아줌마가 나한테 날리는 멘트들을 듣고 마지막에는 아줌마가 다시 나오면 내가 김밥을 싸서 주기로 약속하고 안녕했다.


내가 일 배울 때는 후치모토 아줌마가 이것 저것 가르치면서 서럽게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줌마가 없으니까

빵집이 조요------용 하고 뭐랄까 분위기가 다운이다.


웃는 목소리가 크고 목소리 자체가 아주 크기 때문에 아줌마 한 명이 빠졌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진것이다.

아줌마 아파서 병원에 가신 날은 나랑 한카이 아줌마랑 빵집을 위해서 태어난 여자들처럼 몸바쳐 일한 하루였었다.

원래 4명이 한 조가 되어서 일하기로 한 날 한 명은 병원에 한 명은 집에 일이 생겨서 갑자기 출근을 못하게 되어서

나랑 한카이 아줌마랑 보로니아가 전생에 나랑 아줌마를 구한것처럼 열심히 일해줬다.

식빵 - 이젠 징글징글하다.


알바 시작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빵집에서 어쩌다 빵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다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아니 아니 안가져 간다고 고개까지 흔들면서 싫다고 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그때는 저 아줌마들 참 이상하다 .이렇게 좋은 빵을 왜 안가져 가겠다고 하는거지 그랬었는데 이제 알게 된것.


비가 계속 와서 에어컨 제습 기능을 밤새 틀고 방바닥은 추워서 전기 담요를 켜고 자는 아이러니한 짓을 일주일 째 하고 있다.

쌀도 떨어져서 프레스코에서 다시 사다 놓고 - 처음에는 단 돈 몇 백엔이 너무 아까워서 먼 곳에 있는 스파에 가서 물건을 샀었는데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처음에 내가 돈도 되게 아껴쓰고 그런다고 했더니 임대표(딸 친구 엄마 - 대표님이시다)가 언니 나중에는 똑같아질거예요 그러면서 깔깔 웃었었는데

진짜 그렇게 된거다. 한국에서 살 때랑 정신이 똑같아졌다. 공부하는 것만 뺴고는 다시 돌아갔다.

얼마전에는 거꾸로 한국돈 단위를 보고 혼자서 깜짝 놀랐다. 너무 큰 돈같아서-.-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일본 돈의 가치가 적어 보이는 착각을 하는 것처럼(뒤에 0이 하나 없으니까)

이제는 한국돈을 보고 놀랐다. 뒤에 0이 하나 더 있으니까 엄청나게 큰 돈 단위같게 느껴진거다.


학교가 개강을 하니까 갑자기 공부도 확 늘어났고 다시 시험 6번을 봐야 가을 학기 졸업이고 할 일이 팍팍 늘어났다.

그렇지만 지난 학기의 흔적은 교토의 햇빛에 샌달 자국대로 탄 내 발등에만 남은게 아니라


바로 이거다.


물론 성적 증명서도 있지만 그건 나이쇼^^;;; - 비밀^^



이건 과제 제출율 100프로 학생에게만 준다는 전설의 특별상 - 토쿠베쯔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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