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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교토에 무지개 떴다"

by 나경sam 2018.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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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무지개 떴다"




저녁 6시쯤 본 "무지개"

피아노 처음 배우던 때 빨간 색 동요곡집안에 "무지개"노래가 있었다.

8/6박자 "알쏭달쏭 무지개 고운 무지개 선녀들이 건너간 오색 다린가"

"엄마하고 나하고 둥실 떠올라 고운 다리 그 다리 건너 봤으면"

아직도 누가 부르라면 음 하나도 안틀리고 부를 수 있는 동요다.


교토에 무지개가 떠서 사람들이 길을 건너다가 사진을 찍느라고 뭠춰있었다.

6시 정도에 본 무지개니까 원래대로 하면 나는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알바가 4시에 끝나버렸다.


빵집에도 "무지개"가 뜬 거다.

"오봉"에 봉을 뽑고 일을 시키더니만 오봉이 지나자 바람빠진 풍선처럼 빵집 일이 일이 확 줄어서

급기야 오늘은 내일 물량을 포장한게 아니라 내일 모레의 주문을 미리 포장했다.


혹시나 내가 실수라도 할 까봐 "후지모토"아줌마가

"고상 아시타가 아니라 아삿떼" - 내일 모레 일이다고 몇 번이나 강조-

이게 중요한 이유는 내일 물건인지 모레 물건인지에 따라 스티커의 날짜가 달라지기 때문에 내일 빵인지 모레 빵인지 잘 확인해야 한다.



물론 말을 아직도 시원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뜩이나 억양이 쎈 후지모토 아줌마의 말은 잠시 생각하고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와카라나이" - 모른다- 는 뜻이다. 이게 물론 표준말이고 간사이 사투리는 "와카랑" 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와카랑"

후지모토 아줌마는 간사이 사투리의 여왕님이시다.

한 번에 듣고 바로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동안 일한 짬밥으로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숙달이 되었지만 "후지모토"아줌마가 뭘 시키면 우선 더 긴장을 하게 된다.


처음에 일 할 때 나한테 숫자 세보라고 한 사람도 "후지모토"아줌마였다.

그때는 좀 미워했었는데 이 아줌마가 가면 갈 수록 나를 위해 주는게 느껴진다.


오늘은 4시에 일이 다 끝났을 때 후지모토 아줌마가 나를 확 챙겨서 데리고 나와주었다.

그동안 오봉 기간동안 빵집에 충성을 한 나를 후지모토 아줌마가 어여삐 보시어 4시 조기 퇴근을 집행해주신것이다.

물론 우리의 중간 관리자는 "이치모토"상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이치모토"의 눈치를 봐야 되는게 맞지만

짬밥은 "이치모토"보다는 "후치모토"아줌마가 훠얼씬 급이 높기 때문에

"이치모토상 오늘은 전원 일찍 퇴근합니다" 한마디에 "이치모토는 한마디도 못하고 "하이"했다.


나는 그동안 후지모토 아줌마가 꼭 누굴 닮았는데 그게 누구지 누구지 했더니 바로 만화 캐릭터로 말하면 "아따맘마"

목소리도 크고 후지모토 아줌마는 나의 아따맘마아줌마다.





오늘은 둘째가 교토에 네 번 째 온 날

학교 끝나고 내가 오는 시간이랑 얘가 교토역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시간이 늘 맞지 않아서

오늘도 일하다가 전화를 받고 밖으로 좀 나간다고 말을 했다.


"죄송한데 딸이 와서 열쇠 좀 주고 바로 들어 올게요" 그랬더니

"한카이" 아줌마가 "막내가 온 거야" 물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을 하려고 했더니 나보다 더 빠르게 "후지모토" 아줌마가 "아니 우에노 무스메" 그런다.

아니 이 아줌마가 점쟁이 빤스를 입었나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지

오늘 온 것 까지 우리 집 큰 딸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왔으니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후지모토 아줌마는 알았던거다.

"척보면 앱니다" 후지모토 아줌마는 역쉬 내공이 대단하다.


항상 이 소녀는 나를 위해 먹을 거를 한보따리씩 챙겨서 온다.

이번에도 대단했다.




진미채,멸치볶음,깻잎,마른 멸치,김,멸치액젓,오징어 젓갈,부침가루,염색 약, 가을 옷들, 운동화

하루에 한 장씩 붙여도 석달도 넘게 붙일 수 있는 마스크 팩

지난달에는 자기 용돈으로 비싼 영양제도 사다 주고 기미 생겼다는 말에 갈색병 화장품도 사다 주고

엄마가 딸 챙기듯이 나를 위해서 물품을 조달하는 "비행소녀"다.


물론 반찬은 남편이 야무지게도 잘 싸서 보내서 무탈하게 잘 건너왔고

남자 친구 엄마가 나에게 주는 가방까지 가지고 왔다.


가방 핸들이 나무로 된 직접 손 뜨개로 뜬 가방 (벌써 두 번 째 손뜨개 가방 선물)

사서 선물하기는 쉽지만 직접 만든 것을 받다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명품 가방이다.

이번에는 남자 친구도 함께 와서 저녁도 셋이서 먹고

벌써 알고 지낸 지가 몇년인가

딸이 고 2때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4년째인가보다.

딸이 수원 청소년 카톨릭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있을 때 파트선생님으로 잠깐 나오셨을 때부터 만났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예고 다니는 애들의 특징이 고등학교때부터 이성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는데 우리 딸은 흑역사였다.

그저 자기 친구들이 누구 사귀고 헤어지고 그런것만 나한테 전해주다가 본인이 연애를 시작하다니

나도 물론 놀랐지만

시작할 때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사귀고 싶다고 아주 정중하게 말을 해서 나는 얼떨결에 그러라고 했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었다.


"우리집 땡땡이 좋아하는데 걱정 안시키게 잘할테니까 사귀고 싶다고 하면서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선생님이 너무 귀여웠었고 항상 심술 난 강아지처럼 톡톡 쏘는 사이다 같던 우리집 땡땡이가 누구룰 사귀게 된다는게

나는 좀 신기했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었다.


어차피 내가 말린다고 둘이 안만나겠나.밖에서 얼마든지 만날텐데 차라리 그럴바에는 그러라고 말하고 둘이서 잘 만나는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도 너무 웃겼던건 남편의 반응이었었다.

나는 그후로 선생님과 많이 가까워져서 잘 지냈는데 남편은 늘 경계하고 거리를 확 두면서

뭐랄까 딸 가진 아빠 마음이 저런건가 싶은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남편이 귀엽기도 했다.


하기는 우리 아버지도 내가 결혼하고 신혼여행가서 저녁에 전화를 했더니

막 우셨었다. 엄마는 쿨쿨 잘 주무셨는데 아버지는 막 우셨다.


그때는 아빠가 그러는게 너무 싫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 마음 알 것 같다"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쳐주고 방향도 제시해주고 우리 딸이 재수하느라 힘들었을 때도 늘 함께 고생을 했다.

아마 선생님이 재수를 하는 기분이었을거다.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이 졸업한 학교에 딸은 신입생이 되었고 여전히 둘은 잘 만나고 있다.

4년을 봐왔어도 한결같고 반듯하다.

오늘 둘이서 교토에 놀러 와서 빵집 앞에서 봤을 때 너무 반가웠었다.

네덜란드 유학중이기 때문에 나도 오랫만에 본거라 아들볼때처럼 반가웠었다.


선생님이 잡은 숙소는 산죠다리 건너라서 선생님이 체크인하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무지개를 봤다 하길래 하늘을 봤더니 무지개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서 우리반 대만 동막골 찐상한테 라인으로 전송을 했더니 "언니 저도 봤시유"하고 답이 바로 왔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빵집이 오늘 4시에 끝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8월 21일의 교토 무지개를 못봤을텐데


내 마음에도 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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