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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시간이 좀 지나자 보이는 것들"

by 나경sam 2018.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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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자 보이는 것들"



태풍 13호가 관동 지방을 지나가는 바람에 nhk뉴스는 태풍 경로부터 대피요령 집안에서 숙지해야 될 것들에 대한

뉴스를 열심히 내보냈다.


뭐 대충 이랬다.


1.집에서 잘 때도 파자마를 입고 자지 말고 츄리닝을 입고 자라

(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 급하면 빤쓰바람으로도 뛰쳐 나갈 수 있는게 사람이다.걱정이 많은 나라다)

2.창문에는 커텐을 쳐라.

(여유가 있으면 커텐 아랫자락에 길게 테이프를 둘러서 혹시 유리가 깨져도 그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대비를 하라는 그림 설명과 함께)

하지만 내 방은 커텐이 없고 대신 유리 창 앞에는 옷들이 대롱대롱 걸려 있다.

혹시 태풍에 유리가 깨지면 저 옷들이 바람막이가 되겠구나 - 그런 생각 한 번 하고 옷들을 보자 심난-.-

3.피난 장소를 확인해놓고 언제든지 거기로 가라.

(나도 우리 동네 피난 장소를 이제는 어디로 가야 되는지 정도는 알아 둔걸 보면 넉달만에 어지간한 적응은 끝난 셈이다)

하지만 나는 피난 장소까지는 너무 멀어 여차하면 빵집으로 갈테다.


지진 대피 요령과 도찐개찐이다.

"피난" 이라는 단어는 육이오밖에는 연상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일본에 온 넉달 동안 피난 이라는 단어를 진짜 많이 들었다.

태풍 13호는 관동 지방을 지나서 북쪽으로 빠지는 경로여서 다행이 관서 지방은 피해가 없다.

오히려 태풍으로 인해 날씨가 착해졌다.

구름이 끼면서 32도를 유지하는 이런 선선한 가을 날씨라니

어제 카톡에서 한국에서는 35도 아래로 내려가면 추워져서 롱패딩 꺼내야 된다고 하는 말에 막 웃었는데

나도 미쳤는지 어제는 살짝 추웠다. 날씨에 대해서 얼마나 지쳐있었으면 교토 32도가 춥다고 느껴졌을까

가을 날씨같은 느낌적인 느낌 - 게다가 교토 하늘은 새파랬고 후루카와 상점가 어느 가게 앞에는

 교토의 단풍에 대해서 뭔가 알리는 "오시라세" 마저 붙여 있었으니 가을을 미리 꾸어온 하루 같았다.


그래도 태풍보다는 도쿄 의대 사태에 대해서 좀 더 보도를 해야 하지 않았냐 싶었다.

도쿄 의대에서 의도적으로 여학생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점수 조작을 하고 재수 이상의 남학생들도 일부러 떨어뜨린 사건은 분명히 큰 사건인데도

학교 관계자가 하루 사과 기자 회견을 하고 학교 앞에서 여성 시위자들이 일부 모여서 시위를 하는 정도의 컷만 보내주고

마치 없었던 문제처럼 뉴스에서는 빠이빠이다.


사과 기자 회견을 하러 나왔던 두 명의 대학 관계자들도 그다지 잘못한게 없는데 내가 여기서 고개 숙이고 있다는 표정이어서

좀 놀랐기는 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구체적인 대책이 없고 피해를 본 학생들도 대학 측이 어떻게 해주겠다라는 언급이 없었다.

그냥 사과만 - 그래서 나는 그 아저씨 정수리 빈 거 구체적으로 다 봤지만,내가 보고 싶었던건 당신 정수리가 아니었어


대학 입시를 세 명 치룬 나로서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너무나 조용한 사회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일본 엄마들도 딸을 키운다고 해서 니가 딸이니까 사회적으로 좀 어려운 일은 남자애들에게 양보해야 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겪어서는 안 될 첫 차별을 대학 입시에서 겪는 것이다.

그것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여성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의사직을 계속 이어 나가기가 어렵다는 경력 단절의 의유로 아예 입시에서 선발조차 하지 않는 방침을 세우다니


뉴스를 자세히 보니 남학생들도 재수 이상의 학생들은 일부러 감점을 줬다고 한다.

아이들이 합격하고 불합격하고는 큰 점수 차이가 아니다.

소숫점으로 인생의 희비가 엇갈리는게 입시 현장인데

점수 조작표를 보니 노골적으로 원래 점수를 까맣게 지우고 위에다 25점 이렇게 새로 쓰는 방식 조작질을 해댔다.


그리고 더 가관인건 대학 관계자의 아들은 75명 뽑는데 74등으로 합격시켜준거-.-


그런데도 사회가 조용하다.

일본 여의사 협회에서조차 "도쿄 의대"의 그런 처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변의 협조를 얻지 못해 중간에 경력이 단절되는 여자 의사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이해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여자 의사 협회

그러면 안되지 - 가장 분개해야 할 협회에서 이해한다고 해버렸다.


우리나라도 그런 식의 비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 인권에 대해서는 일본보다 낫지 싶을 만큼

도쿄 의대 사태는 실망스럽다.

여성 인권은 똑같이 낮더라치더라도 대응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좀 낫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여자들 목소리가 일본 여자들 목소리보다 더 크다는 거!!!!


태풍 13호와 함께 묻혀 소멸될 것 같다.


빵집도 어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출근을 하면 출근 기록 카드를 카드에 집어 넣고 시간을 기록하는데 그 기계가 우리가 일하는 곳과 좀 떨어진 (1분거리 3층 건물의 3층)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출근을 그 건물 3층으로 올라가서 출근 시간 기록하고 거기서 옷 갈아 입고 일하러 오는 방식이었다.


물론 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왜냐면 나는 따로 작업복을 갈아 입지 않고 입고 간 옷 그대로 일하러 갔기 때문에 타임 기록 카드만 아니면

일부러 3층까지 올라 갈 필요가 없으니까 타임 기록 카드가 3층에 있지말고 빵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제 그게 우리가 일하는 빵집으로 이전 설치가 되었다.

물론 그냥 일방적으로 이전설치 된 거다.

나는 이 씨스템이 편하지만 아줌마들에게는 두 번 일이 되는 셈이다.


멀리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빵집에서 일하는 옷으로 갈아 입고 일을 하는 아줌마들에게는 이게 하나도 편한 시스템이 아닌것이다.

옷 갈아입으러 3층으로 여전히 올라가야 되고 다시 일하는 곳으로 와서 카드를 찍어야 되니

오히려 시간이 더 급해지는 것이다.


전의 시스템같으면 3층에 올라가자 마자 출근 카드를 찍고 옷을 갈아 입고 내려 오니 이미 출근을 한 상태가 되는 것이지만

이제부터는 옷 갈아입으러 올라갔던 3층에서의 시간은 소비가 되는 시간이고 출근 시간은 아니었던 셈이니

마음이 급해질수 밖에 없다.


그러니 아줌마들은 입이 좀 나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물론 관리자 없는 상황에서 우리들끼리 있을 때


"나는 이게 편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꿀거면 미리 이야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식으로 바꿀건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느냐고 미리 물어는 보고 바꿔서 달던지 해야지 너무 일방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후지모토 아줌마가 갑자기 나한데 "고상이 사장이 되면 좋겠어" 라고 했다.

"고상이 사장이 되면 직원들 점심도 잘 줄것같다면서"

전에 아줌마들이 점심 시간에 빵 먹는 걸 보고 내가 점심에 밥을 먹어 야지 이러면 안된다고 이야기 했던 것과

이번 일을 합쳐서 생각한 후지모토 아줌마

그리고 다들 나를 쳐다보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이 아줌마들은 일본어가 모국어이면서도 일본어를 나보다도 못하고 사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잠깐 일하고 갈 사람이니까 이럴 수도 있겠지만 가만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을 참 아끼고 산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딴 데로 흘러서 - 아줌마들의 특기 되시겠다.

빵집 사장의 아들이 "전무"라는 이야기로 마무리


일본이 선진국이기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먼 나라구나

뭐 우리나라도 남 걱정 할 짬은 아니지만 적어도 빵집 아줌마들 보다는 내가 좀 트인 여자인가 싶기도 하고


처음에는 열심히 쿄토의 경치만 보고 다녔는데 이제는 좀 생각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라서 이게 일본 사회를 전부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일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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