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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첫번째 고비가 왔나보다"

by 나경sam 2018.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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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비가 왔나보다"


"오봉" 명절 주간이 시작된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분위기의 명절 분위기는 아니지만

동네 커피숍도 "오봉 야스미" 오시라세가 붙어있고 늘 문을 여는 교토 오반자이 식당도 오봉 야스미라고 쉬는 걸 보면 명절은 명절이다.


이온 슈퍼에 가서 오봉 선물 셋트를 보고나서는 더욱 실감을 했다.

고구마한개,가지 한개,호박 한개,정말 소박한 농산물들로 한 팩을 꾸려서 오봉 선물셋트로 팔고 있었다.


아니 저게 진짜 선물셋트냐

이게 실화냐 싶을만큼 너무나 소박한 - 아니 소박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 저걸 선물로 줬다간

안에 들어 있는 한개의 고구마로 머리통을 맞을 일이다.


이온 슈퍼의 선물 셋트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동네 신선야채-가격 혁명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

"야오야"상 아저씨도 오봉 선물 셋트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

포도 한송이,다른 과일 서너개 넣고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서 팔고 있다.


내가 그걸 보고 있자 동네 할마씨 한 분이 이 선물 셋트 얼마나 좋으냐면서 사고 싶다고 하셨다.

그동안 명절을 맞아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선물하고 받았던 것들은

일본 오봉 선물셋트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호화품들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빵집도 미치게 바빴다.

오봉 특공대로 투입된 나는 빵집 알바 이래 처음으로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종일 일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해보기도 오랜만이었다.

아마 오봉에 빵 선물을 하느라 일단 물량이 많이 늘어서 바쁜거고 택배 회사가 쉬기 때문에 미리 보내야 되는 물량이

확 확 확 늘어서였다.


게다가 오봉이라고 평소에는 5명이 팀으로 일하는데 숫자가 줄어서 네명이 일을 했으니

안그래도 잠시도 못쉬는 빵집 일 - 입에서 단내가 나게
빵을 포장하고 - 스티커를 붙이고 ( 어린애 취향이 아직 많이 있는 나로서는 스티커 붙이는 작업이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질렸다)

처음에 빵집 일하고 집에 와서 뻗었던 것처럼 피곤했던 하루였다.


한가지 일이 끝나기도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일 끝나면 다음에 저걸 해주세요" 그 소리를 제일 많이 들었던 하루이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일했던 아줌마들중에 "코노상"과 "이치모토" "타카하시"상이어서 일하는데 수월해서 좋았다.

단순한 빵집 일이래도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지 안하는지 조금의 차이로 인해

하루 일이 수월하고 수월하지 않고 극명하게 갈린다.


"타카하시"상은 나랑 함께 일하는 조가 되면 항상 눈으로 살피면서 내가 뭘 찾는지 뭘 힘들어하는지 확인하고

말없이 가져다 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아주 젊은 아줌마인데

언제나 타카하시 상이랑 함께 일할 때면 마음이 편하다.


코노 상도 처음부터 재일교포라고 마음을 트고 지낸 후로 급하면 우리말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어제는 두시가 넘어서까지 점심도 못먹어서 배가 고팠는데

코노 상이 갑자기 빵을 썰다가 자기 한쪽 나 한쪽 먹자며 주길래 몰래 빵을 먹으면서 막 웃었다.


빵집에는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완전범죄

물론 마스크도 한 몫했고


쵸코빵 중간에 구멍이 좀 나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따로 주면서 먹으라고 마스크 위의 눈으로 이야기하면서

건네줄 때 뭐랄까 일본에서 꼭 외롭지만은 않구나 싶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욕나오게 바쁜 빵집 일도 견뎌지지 싶다.


이치모토 아줌마도 처음에 일 가르쳐 줄때는 좀 사납게 굴었지만

요즘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발음이 훌륭하다느니,공손어를 잘쓴다느니,한자 글씨체가 깨끗하다느니 하면서

칭찬 msg를 듬뿍 듬뿍 치고

고상이 사장이 되면 좋갰다느니 어쨌든 좋은 말만 해주니까 기분도 좋고 덕분에 오봉 특공대 이틀을 무사히 견뎠다.


하지만 오늘 쉬고 내일과 모레 또 이틀을 투입되어야만 오봉 명절이 끝난다.


잘지낸다싶었는데 어제는 새벽 두시넘어서까지 잠도 안오고 (굉장히 피곤했는데도)

수원 집 식구들 뭐 먹고 사는지 걱정이 되서 지마켓에서 과일이랑 반찬 가공식품 이것저것 결제해서 집으로 보냈다.


아들더러 잘받으라고 품목 보내주고 나는 아침에 찬밥 남을걸로 누룽지 끓여먹고 집을 나왔다.


문득 집으로 확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들면서

하루라도 갔다 올까 그런 미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이게 첫 번째 고비인가 싶다.


집으로 올라가는 단차가 높은 우리집 계단을 오르고 싶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서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도 마시고 우쿨렐레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싶다.


늦게 들어오는 아들을 거실에서 기다리면서 욕도 해주고 싶고

도둑이 왔다 간 것 같은 딸내미 방도 치워주고 싶고

아무데서나 방구를 뿡뿡대는 남편의 엉덩이도 팍 때려주고 싶고

화장실 바닥도 철수세미로 박박 닦고 싶다.


냉장고도 안을 다 들어내고 깨끗하게 락스로 닦고 싶고 무엇보다도

옥상에다 빨래를 널고 싶다.


승범이 초등학교 2학년때 둘이서만 도쿄에 한 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한테 애들 맡겨놓고 둘이서만 갔었는데 갈 때는 한달이라고 야심차게 떠났으나

결국 둘이서 보름밖에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승범이는 동생들 보고 싶다고 징징댔었고 나도 아직 어렸던 은진이가 밤마다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엄마말에

보름만에 짐을 쌋었다.


뭐 그래도 그때 나가노가서 스키도 타고 눈이 쌓인 산을 보면서 노천탕도 했고 디즈니랜드도 갔었으니까 구경갈 곳은 다 간것 같았는데도

돌아와서 승범이한테 엄마랑 어디어디 갔었지 하고 물었더니

"마모나꾸" 갔었어.

그렇게 대답해서 얼마나 웃었던가.


"마모나꾸" - 금방,곧 이라는 뜻

얘랑 얼마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녔는지 "마모나꾸 덴샤가 하이리마스" 곧 전차가 들어옵니다.


2학년짜리 귀에 마모나꾸가 콕 들어온것이다.


박물관도 갔었고 스모선수도 직접 봤건만 어쨌든 "일본을 갔다 온게 아니라 마모나꾸를 갔다 온 아들이랑

15일만에 돌아 왔을 때 다섯살이었던 은진이가 나를 제일 반겨주었었다.

우리 엄마 말이 은진이가 낮에는 잘 노는데 밤만 되면 혼자 구석에서 울더라면서 너무 안쓰러워서 못보겠더라고 했었다.


지금은 엄마 없이도 밤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잘 놀고 지내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아아아아


마음이 구멍이 뻥뚤려서 앞으로 바람이 훅 들어와서 등 뒤로 나가는것만 같다.


이번주에 개학하면 좀 나아지려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오늘 교토 37도


내 마음에는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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