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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빵집 오봉 특공대"

by 나경sam 201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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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오봉 특공대"


"오봉"기간 동안 친정집에 갔던 주부가 2살짜리 남자아이를 잃어버려서 뉴스에도 나와고 난리가 났었다.

정말 안좋은 얘기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그 아이가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을것이다.(슬프지만 아마도 그러기가-.-)

일본 나이 2살이면 우리나라로는 3살 그래도 아직 나이보다는 개월수로 세어도 좋을 아기아닌가.

아기를 찾는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아직 아기는 못찾았고 마음이 아팠는데

어제 뉴스에 아기를 찾았다고 나왔다.


산속에 있던 아기를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찾은 것이다.

아기를 찾은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하면서 우셨다.

할아버지 말씀이 동일본 지진때도 본인은 자원봉사 활동을 하셨었는데

이번에 미아 발생 뉴스를 보고 저 아이는 내가 꼭 찾아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찾으셨다는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갔을 때 본 아기엄마의 얼굴은 아마도 자기 평생에 잊을 수가 없을것 같다면서 우셨다.


어쩌면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아기였는데 다시 찾았으니 그 아기엄마의 얼굴이 어땠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짐작이 간다.


재난재해가 많은 나라가 그런지 민간인들의 자원봉사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그런 점에서는 시민의식도 높다는점이 일본의 장점인것같다.


아기를 찾아서 내 마음도 좋았고

하지만 오봉 기간동안

빵집에서 점심 시간도 제대로 못 챙기고

연휴기간동안 빵을 천개도 넘게 자르고 포장하고 스티커붙이고 아주 빵이라면 징글징글하게 내 손을 거쳐갔다.


너무 바쁜 일과 함께 방학을 다 보냈고 이제 내일이면 개학을 한다.

마음이 한계에 부딪쳤던 날

쌩뚱맞게 김치를 담갔다.


수원에서는 엄마가 보내주는 걸로 일년을 살았었기 떄문에 내 손으로 김치 담글 일이 없어서

제대로 할 줄도 몰랐었는데

일본에 오고나서 비로서 한국사람이 된 기분이다.


비가 안와서 일본도 배추값이 금추였었고 무도 금무쯤 되게 비쌌다.

그런데 신기하게 오봉 연휴 기간 좀 벗어나니까 가격이 100엔 아래로 떨어져서 반포기를 사다가 김치도 담그고

깍두기도 만들어서 먹었다.





밀가루 풀까지 만들어 야무지게 담근 저 김치

혼자 먹고 있지만 아주 내 입맛에 딱인 저 김치와 깍두기


살다 살다 내가 저렇게 김치를 잘 담그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빵집 일은 정말 식빵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바빴는데

둘둘이 짝꿍으로 일을 하는데 이번에는 주로 키타무라상과 짝을 해서 일했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빵집 일도 손발이 맞아야 편하지

나는 손이 빠른 편인데 키타무라상은 손이 느린것은 두번째고 일일이 짚고 넘어가는 아주 꼼꼼한 스타일이어서

일하다가 키타무라 아줌마한테 식빵 던질 뻔했다.


둘이서 한 조가 되어서 빵 포장 기계에 빵을 한사람은 넣고 한사람은 받는 일을 하는데

내가 포장 기계에 한 개를 넣으면 한 개를 받아서 아주 작은 빵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나더러 다시 뜯고 기계에 넣으라고 하는 통에

(사실 그 정도 빵 부스러기는 다른 아줌마들은 그냥 다 통과했고 나도 그 정도는 빵이 모형이 아닌 이상 어쩔수없다고 생각했지만)

키타무라 아줌마는 철벽-.-


무조건 다시 재 포장

그 덕분에 키타무라 아줌마랑 빵 포장 작업 하는 오봉 기간 동안

분노게이지 상승 - 점심 시간은 3시 낙찰


진짜 한국말로

"작작 좀 하시라고요" 라고 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


예전에 이치모토 상이 끝내는 시간 훨씬 넘겨서 마구마구 일을 시키던 호랑이 담배먹던 두달 전에도

 6시룰 훨씬 넘어서 끝나는 상황이 항상 기분이 나쁘던 그 때 (6시 10분 20분이면 내가 말을 안한다)

그때도 이미 30분을 넘긴 상황이었는데 키타무라 아줌마가 빵안에 들어 있는 이물질 체크를 하고 내한테 넘겨주면

내가 빵 봉지 겉면에 스티커를 붙일수 있는데 - 그래야 집에를 갈 수 있는데

키타무라 아줌마가 빵봉지 하나 하나를 두드려보고 흔들어보고 아주 복장터지게 굴어서

나는 그때도 키타무라 아줌마한테 식빵 던질뻔 했었는데

이번 이 두번째


그떄는 너무 화가 나서 키타무라아줌마가 집에 가면서 "오쯔까레사마" 하고 인사를 해도 내가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자기만 먼저 하고 가면 다가 아니고 그 다음에 내가 자기가 준 빵을 받아서 일을 완성해야 하니까

눈치껏 좀 빨리 빨리 하면 좋았으련만 그냥 자기 일에 충실할 뿐

글로 적고 보니 그렇게 열 올리면서 욕할 일도 아니긴 하네 - 일을 열심히 했다는 거니까


그래도 함께 하는 오봉 기간 동안 좀 힘들었다.

내가 키타무라 아줌마한테 "너무 힘들지 않았나요.저는 아주 피곤했었어요" 하고 진심으로 안부를 물었더니

"아니요 하나도 안피곤했어요.저는 괜찮은데 고상이 피곤했나보죠" 그런다.


진짜 이 아줌마 "보로니아"를 위해서 태어났나보다.


쓰다보니 빵집 오봉 특공대는 내가 아니라 "키타무라"아줌마 였어


지금쯤 퇴근해서 밥 먹고 있을 키타무라아줌마 귀 좀 간지럽겠다.


오봉도 끝나고 방학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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