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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by 나경sam 201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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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에 대한 주제가 이번주 금요일 발표 주제였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좋았던 기억을 찾아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다.

우선 세 명 네명 그룹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한 후에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대표로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거였는데

우리 그룹은 내가 뽑혔다.


나의 이야기는 "제주도" 이야기였다.


2002년 7월 17일 제주도로 이사를 들어갔다.

남편이 먼저 발령이 나서 가 있었고 보름정도 지난 뒤에 나는 짐을 정리해서 이사를 했다.

막상 이사를 가려고 하면 언제나 짐과의 전쟁이었다.

나름 "얼리어답터"인 나는 새로운게 있으면 일단 손에 넣고 써봐야 되는 타입이라 전주에서 제주도로 이사들어갈때는

그동안 얼리어답터로서의 쌓여 있던 물건들을 버리고 가는 게 짐을 꾸리는 것보다 더 힘들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승범이를 데리고 분리수거장으로 매일 나가서 물건을 버리는게 일이었다.

동생들은 막 기저귀 뗀 아기들이었기 때문에 걔네들은 집에 가둬놓고 승범이랑 물건 버리고 또 버리고

일곱살에 학교들어가서 2학년이라고 해도 아직 어렸던 큰 애를 잘도 부려먹었었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짐들을 제주도 이삿짐 센터에 맡기고 이삿짐보다 먼저 제주도에 들어가서 공항에서 남편을 만났었다.

제주도는 매일 매일이 즐거웠었다.

우리나라라고는 하지만 자주 갈 기회가 없었으니 우리 가족에게는 마치 외국같은 기분도 들었었고

아직 공부에 대한 부담도 없을 때라서 우리 애들은 관사 마당에서 노는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과라서

밥만 먹으면 나가서 놀았고

끼니 때가 되면 대부분 남의 집에 가서 먹었다.

관사 마당에 나가서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듣고 나오거나 그 집의 엄마가 "우리 집에서 밥 먹어요"라든가 답장이 왔었다.


여름이면 "한담"이라는 작은 해수욕장에 가서 매일 놀았었다.

우리가 살던 관사에서 가깝고 유명한 해수욕장은 "곽지""협재" 해수욕장이었지만

본토 제주도 사람들이 가는 해수욕장은 "한담"이라는 작은 해수욕장이라는걸 나중에 제주도 직원한테 듣고

"한담" 해수욕장에 가서 자주 물놀이를 했었다.


물놀이가 끝나면 해안도로를 운전하고 오다가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 정자에 앉아서 부르스타에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먹고 애월 하나로마트에 들려서 장을 봐서 들어오거나 했었다.

해안쪽은 항상 더웠지만 해발 400고지 관사로 운전을 하면서 올라오면 점점 기온이 내려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관사는 시원했었다.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았던 유일한 동네였다.


"소길리"

지금은 이효리 동네지만 원래는 우리 동네였던 "소길리"

가을이면 "소길리"체육대회가 열렸고 우리도 가서 행사가 끝난 뒤에 추첨해서 나눠주는 상품을 타 온 적도 있었다.

뽑기에 운이 별로 없어서 기대를 안했지만 고기굽는 불판을 번호 뽑기에 당첨되서 탔었다.

물론 우리 옆 관사의 어떤 집은 자전거가 당첨되는 바람에 우리 집 상품은 너무 작은 게 되버리긴 했지만

불판을 한참동안 잘도 썼었다.


제주도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던 승범이는 음대생이 되었고

납읍의 선생님 댁 까지 산길을 운전하면서 데려다 주던 그때의 나는 젊었었다.

제주도 살 때 결혼 10주년이라고 애들 데리고 해안가의 펜션에 가서 하룻 밤 자고 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결혼 24년차다.


관사의 아저씨들이 술을 많이 마시던 동네

해발 400고지는 인간의 숙취가 풀리는 동네라나 뭐라나 헛소리를 해가면서 술을 몽땅 마시던 관사의 아저씨들은

이제는 다 늙은 중 늙은이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 다시 갔었을 때 우리 윗 집 살던 애기 아빠 "정민이"아빠도 완전히 아저씨가 다 되어 있었다.

우리가 거기 살 때 정민이 아빠가 둘째를 봐서 기저귀를 사다 줬던 것같은데 벌써 둘째가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가 가장 즐거웠었구나 싶어서 물론 다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랑 수영하고 컵라면 먹던 이야기에서 모두가 나에게

"고상의 이야기"가 가장 행복하게 들린다 라고 말하면서 앞에 나가서 발표하라고 했다.



지금 교토에서 지내고 있는 이 시간들도 또 나중이 되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가 되겠지

시간이 지나 교토 이야기를 하면 또 재미있는 이야기 추억이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다.

물론 밤 새 태풍이 지나가던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오늘까지는 태풍이 지나간 깨끗한 하늘과 35도 아래로 내려간 추운 날씨가 고맙다.


3주 지나면 또 가을 방학이 되고

다음주에는 2학기 학비를 내야 되고


이제 가을 방학이 지나가면 본격적인 2학기가 시작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의 새로운 생활이 또 시작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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