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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태풍이라고 쓰고 지진이라고 읽는다"

by 나경sam 201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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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라 쓰고 지진이라 읽는다"


어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그렇다면 내가 겪었던 것들은 무엇이었나 아무렇지도 않은 마치 가을처럼 높아진 하늘도 그렇고 어제 다녀 간 손님이

정말 있긴 있었나 싶은 말짱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분명히 태풍이 지나간다고 했지만 체감의 정도는 한 번 겪었던 지진과 비슷했다.

오히려 지진때보다 더 무서웠었다.

왜냐하면 지진이 왔을 때는 한 번 심히게 흔들리고 그 뿐이었지만(물론 여진이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흔들린 축에도 끼지 못하니 제외)

태풍은 교토를 통과하는 동안 강한 바람과 무서운 소리 흔들림 폭우까지 동반해서 교토를 통과했다.

동네가 정전이 되서 낮에 나간 전기가 밤에 찾아왔다.

양초도 없고 손전등도 없는 집은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수가 없어서 비가 좀 그친 다음에 맥도날드로 나왔더니

사람이 평소보다 더 많아서 모두 나같은 입장이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학교도 휴강이었었고 교토의 모든 학교가 휴강이었었다.

빵집 알바를 원래는 오후에 하는 건데 내가 휴강이라 집이 먼 아줌마하고 바꿔서 오전에 알바를 하고

(그때까지는 하늘이 괜찮아서 태풍이 지나간다는 말도 거짓말인가 싶을만큼 하늘이 맑았었다)

그러다가 오후에 갑자기 돌풍이 불고 집이 흔들리고 일본 전체가 난리가 난거다.




비바람이 좀 그친 4시 넘어서의 히가시야마 산죠 풍경이다.

이 사진 정도면 그래도 얌전한 편이다. 저정도의 태풍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봤었고

특히 제주도 살 때 겪었던 "매미"는 아직도 기억이 날 만큼 무서웠었으니까

길에 나뭇잎 좀 떨어져 있다고 무서울 일은 아니지만 태풍이 세 네시간 교토를 통과하는 동안 집에서 겪었던 두려움은

공포였다.


집안에서 겪었던 공포에 비하면 거리가 얌전한 정도라고 느꼈으니 집에서 혼자 오들거렸던 내가 오늘 생각하니 좀 불쌍하다.

하지만 알바다녀온 후라 그 공포속에서도 낮잠을 좀 잤다. 물론 무서워서 자가 깨다 하긴 했지만 어쨌든 잤다.

우리집 애들이 보낸 카톡을 보니 "돌아다니지 마라" "머리에 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거리 다닐 때 뭐 떨어지는거 조심해라는둥"

걱정이 세 놈다 가지각색이다.

남편은 또 그와중에 틈을 노려"그럼 돌아와야지"라는 말을 해서

"가고 싶어도 공항이 정상이 아니라 못간다"고 말해줬다.


지진과 오오아메와 태풍까지 겪고 넘겼으니 살면서 이제 뭔들 무서우랴 그런 마음이 씩씩하게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말짱해진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이라서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맥도날드에 와서 숙제도 하고 저녁으로 햄버거 셋트도 시켜서 먹고 그나마 집근처에 맥도날드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근처에 사는 한국 유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얘네 동네는 정전이 안됬다고 해서 (나는 히가시야마 3조 걔는 히가시야마 2조)

어쩔수없이 "하마다상"한테 라인으로 연락을 했다.

"하마다상"은 출근을 했기 때문에 빵집이 오후에 정전이 되었으면 우리 동네 전체가 정전이 된게 맞으니까 확인차원에서

라인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친절하게 전화를 해주었다.


나 - "고상인데요 정전된거 맞나요"

하마다 - "맞아요.빵집도 정전입니다. 지금 어디예요"

나 - "맥도날드요.무서워서 집에 있다 나왔어요"

하마다 - "가와이소우-.-" (가엾다-.-)


평소에는 12시까지 하는 맥도날드가 태풍으로 10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점원이 2층으로 올라와서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영업시간 단축을 알렸고 정전이 해결되었는지 안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지만

갈 데가 없다. 찜질방도 없고


먹을것도 없어서 "프레스코"에 들러서 뭐라도 좀 사갈까했더니 24시간 슈퍼마켓 "프레스코"조차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친절한 알림판. -.-;;;


집으로 가는 골목을 들어서는데 차 한대가 삐융하고 나왔다.

"관서 전기 어쩌고 저쩌고"

아직도 정전상태로구나 싶어서 골목을 쳐다봤더니 시골 마을처럼 깜깜했다.

불 하나가 없는 동네는 너무나 깜깜해서 골목으로 들어갈 용기도 안 날만큼 무서웠다.

내가 지나가면 집 앞의 순간등이 팍 하고 저절로 켜지던 골목 앞 맨션의 순간등도 반응을 하지 않고 동네가 정전상태인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가로등이 한 개씩 팍 팍 팍 시차를 조금씩 두면서 켜지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등장해서 지팡이로 가로등의 불을 차례로 끄던 그 장면


저 장면이 나한테는 반대로 일어났다 한개 두개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온 동네의 집들에 불이 팍팍팍 들어왔다.

걸어가는데 길이 환해졌다.

정전을 겪고 나면 비로서 습관처럼 쓰던 전기가 얼마나 고마운줄 알게 된다.




4시 이후에 집에서 나올 때는 이미 골목은 깜깜했었는데 집앞 상점가의 "미즈00 생화" 아저씨는 뭔가 돈계산을 하는 듯

손전등을 켜고 열심히 영수증을 보고 있는 게 보였었다.

언제나 부지런한 동네 꽃가게 아저씨 얼마니 일을 많이 하셨는지 등이 굽으셨다.

언젠가 맥도날드에서 공부하고 11시쯤 들어오는데 아저씨가 동네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뺴서 마시는 걸 봤다.

이 동네에서 술집 빼고는 11시까지 하는 집이 없는데 하여간 꽃가게 할아버지는 진짜 부지런하고 한마디 말을 해본 적이 없어도

저 분이 평생 열심히 산 분이라는건 알 수밖에 없다.


"타카하시"상과 알바를 바꾸준거는 정말 잘한 일이었다.

요즘엔 빵집 일이 없기 때문에 나는 어제 6시간 일을 했고 타카하시상은 내 대신 8시간을 일을 하게 된다고

"후지모토"아줌마가 나더러 괜찮냐고 물어보셨지만 (2시간 손해를 본 다는 결론)

하하하 저는 괜찮아요.알고보면 부자랍니다. 그렇게 말해줬다.

물론 농담이라고 급 수정을 했지만 - 이 아지매들은 농담도 진담처럼 믿는다 -

두시간이면 1800엔 이고 나는 1800엔을 덜 받게 되지만 타카하시상의 안전은 시급 두시간에 비교할수가 없으니

자발적으로 바꿔준건 내가 생각해도 "국위선양"급이다.


수요일이 되자 예상처럼 하늘은 파랗고 맑았으며 바람까지 불어서 아직 여름인게 틀림없지만 살짝 가을같은 기분이 나서

긴 셔츠를 입고 학교를 갔다.

물론 곧 후회를 했지만 - 이미 때는 늦었다.다시 돌아가는 건 늘 힘들어 가던 길 가는 게 낮지 -

2학기 학비도 35만엔 학교에 들고 가서 내고 (분명히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35만엔이 350만원인데도 마지막 숫자에 영이 하나 있고 없고는

평생 살아 온 습관이 무서운지라 그다지 큰 돈인것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그냥 35만엔. 알고보면 350인데도 말이지)


교실에 올라갔더니 여전했다.

처음에는 일본어로 열심히 안부를 묻다가 결국 답답하니까 자국어로 끼리 끼리 얘기를 하면서 어제의 무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중국애들은 중국애들끼리 우리는 우리 끼리 마구마구 얘기를 하고 그래야 좀 마음이 풀린다.


이 와중에도 지각을 늘 하는 슈상은 오늘도 지각을 해서 지난주에 자리 바꾼 자기 자리가 또 어딘 지를 모르고 서 있었다.

그러면 항상 내가 알려준다.


"아 이노무 시끼 그러니까 결석을 하지 말아야지 썅노무시끼야"


항상 지 자리가 어딘줄을 몰라 욕 먹어도 싸다 싸


알바가 없어서 오는 길에 "업무스-파"에 들려서 무도 사고 씨리얼도 사고 우유도 사고 어제 프레스코가 문을 닫은 걸 본 뒤라

잔뜩 사서 양손에 들고 힘들게 걸어 오면서 느꼈다.



"먹고 사는 일은 참 무겁다"


아침에 여기저기서 괜찮냐고 카톡 문자를 받고 보니 누구말대로 "급 애물단지" 된게 분명하긴 하지만

나처럼 귀여운 애물단지가 또 있겠냐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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