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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일기

"우리 막내"

by 나경sam 201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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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


구미에 놓고 올라오면서 엉엉 울고 왔던 우리 막내가 일학기를 마치고

여름 휴가를 받아 교토에 왔다.


여름 방학이라고 해도 운동선수이기때문에 감독의 허락을 받아야 짧은 휴가지만 마음 편하게 보낼수 있기 때문에

엄마한테 올려고 얼마나 애를 썻는지 우리 막내 힘들었다.

어디 저만 힘들었을까

나는 진짜 엄마고 또다른 엄마인 즈이 언니 "은진이"가 대구에서 오사카로 오는 티켓도 끊어주고 용돈도 주고

언니인지 엄마인지 모를만큼 동생을 챙기고 산다.

은진이도 막내가 갈 수있도록 신경많이 쓰고 힘들었을것이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타느라 구미에서는 새벽부터 나서서 교토로 왔다.

같은 방 룸메 "유나"랑 함께


얘가 어떤 딸인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구에서 1999년 6월 9일에 낳았다.

온 나라가 아이엠에프여서 수민이를 낳을 때는 공무원 보너스 달이었던 4월과 7월의 정기 상여금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도 셋쨰까지 씩씩하게 자연분만을 했고

특히 수민이를 낳을 때는 나름 분만의 여신이 되어 새벽에 산부인과에 가면서도

일층에서 이층으로 엘레베이터도 타지 않고 걸어올라가면서 분만가방조차 내가 들고 올라가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에게 넘겨주었었다.


셋째답게 아이도 쉽게 출산했었고

낳아놓고 보니 큰 놈이랑 판박이도 그런 판박이가 없다 싶게 닮아 있어서

유리창 너머로 셋째를 보면서 나는 셋째를 낳은게 아니라 승범이를 또 낳았구나 했었다.


둘째와 터울이 15개월밖에 나지 않았지만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 둘째는 큰 애기로 강제 소환되었고

막내는 둘째의 시샘과 호기심을 피해 대구 관사의 골방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자랐다.


1999년 6월의 대구는 참 더웠었다.

에어컨 없이 살다가 그때 처음 에어컨을 사고 막내 덕에 덥지않은 대구의 여름을 보냈었다.


잘웃고 잘울던 그 막내가 오늘 교토 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얘는 대학에 가서도 키가 컸는지 키가 더 커서 왔다.


내가 교토에 간다고 집 식구들중에서 유일하게 반대하고 생각날때마다 징징거렸던 아이다.

그런데 그게 꼭 싫지많은 않았다.

 

물론 다른 식구들이라고 해서 꼭 쿨하게 보낸 것만은 아니지만

가장 뒤끝있게 나를 괴롭히면서 가지말라고 하던 막내의 그 말들이 귀찮거나 짜증이 난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엄마라는거

내가 이 아이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거

그런 것들을 다시 느낄수가 있었다.


오늘 교토는 38도였다.


더워도 꼭 가고 싶었던 "니죠성"에 갔다.




바람 한 점 어디서 빌려올 데가 없었고

햇볕은 작정을 하고 뜨거운 하루였다.

양산을 쓰고 모자를 썼어도 달궈진 지열이 반사되는 뜨거움으로 얼굴이 익어버린 하루였다.


교토의 16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에서 유일하게 "성"인 곳이다.

그럼 나머지 15곳은 뭐냐

"절"이다.


아무리 날씨가 더웠지만 관광객은 날씨와 상관없이 많았다.

지금 기온 마츠리 기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것같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엄청 큰 가마를 다섯 때 쯤 봤다.





일본 3대 마츠리중의 하나가 "기온 마츠리"라고 한다는데

규모가 큰 만큼 관광객도 그만큼 많고

도시가 더 북적북적했다.



집에 와서 밥해먹고 얼굴이 익은 하루를 차가운 팩으로 마무리



눈이 저절로 감길 만큼 피곤한 하루였다.


자식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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