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추운 날"
요 근래 들어 가장 추웠다.
아들은 실기 시험이라서 일찍 나갔고 딸은 머리를 탈색하고 머리 부분만 봤을 때는
저게 내 딸이 맞나 확인을 해야 될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하고 집안을
어슬렁거려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릴듯하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매일 술을 마시고 다녀도 짱짱하던 남편이 술마시는 일에 바빠
늦게 들어 오더니
이제 남편은 술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들어오고
대신 아이들이 늦게 들어온다.
들어오는 시간이 각각 다른 아이들은 먹는 메뉴도 다 달라서
가장 먼저 들어 온 막내는 멸치로 육수를 내서 끓인 청국장에 밥을 먹고
12시 가까이 들어 온 둘째는 팔도 비빔라면에 군만두
항상 우리 집 문을 닫고 다니는 큰 아이는 둘째 보다 더 늦은 시간에 들어와서
밥을 찾았다.
큰 애는 삼겹살에 청국장 김장 김치
새벽이든 밤이든 낮이든 차려 달라는 대로 차려주는 미덕을 지닌
나는 내가 생각해도 그런 부분은 대단하다 여겨진다.
물론 우리 엄마도 말하는대로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셨고 그건 지금도 여전하시다.
잔치국수를 하고 있으셔도 한 사람이 비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게 뭐 어렵냐며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반반 하셔서 주시고
팥칼국수 먹고 싶다고 하면 직접 팥 사다가 삶아서 끓여주시고
말하기가 무섭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 나신다.
내가 그걸 닮아 나도 식구들 입 뒤치닥거리는 잘하는 편이고
그래서 몸이 피곤하다.
둘째가 학교에 떨어지니 마음이 우울해지고 모든게 싫어질 때가 있었다.
엄마한테 자주 드리던 전화도 하지 않고 의기소침해져 있었을 때
엄마는 엄마대로 내 눈치를 보느라 전화를 하지 않고
옆에 사는 여동생에게만 전화를 해서 언니는 괜찮냐고 물으시곤 했었다.
그무렵 엄마가 택배를 보내셨다.
이것저것 들어있던 택배 상자 한 귀퉁이에 직접 만드신 청국장이 들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는 일 조차 귀찮고 하기 싫어져서 식구들 밥도 신경 안쓰고 싶었을 때였다.
그런데 무슨 마음이었을까
신김치를 쫑쫑 썰어 멸치 육수를 내고 두부를 듬뿍 넣어 청국장을 끓였다.
성당에서 돌아 온 일요일 오후의 점심이었다.
커다란 국 냄비에 청국장을 가득 끓여서 점심을 먹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내 목소릴 듣고 우셨던것같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지금 누가 더 힘든지 생각해보라고 너보다 니 딸이 더 힘들다"
그러니 너는 기운을 차리고 아이 뒷바라지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니가 니 딸이 힘들어서 마음이 아픈것처럼 나도 내딸이 힘들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엄마의 청국장을 먹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힘든건 여전했지만 다시 해보자 그런 마음이 불쑥 들었던것같다.
엄마의 청국장이 쏘울푸드처럼 힘을 주었다.
엄마의 음식이란 그런것이다.
아침에는 수육을 해서 막내에게 주고
칭찬을 듬뿍 받았다.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좋은 아침이다.
집안 일 말고는 별 일이 없는 오전을 맞이한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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