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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제 그토록 바라던 오늘"

by 나경sam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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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토록 바라던 오늘"


"오늘" 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의미가 남다른 하루다.

어지간한 학교를 제외하고는 늘 오전 시험이라서 준비는 새벽부터 이루어지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챙겨야 될 준비물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핫팩,보온병에 보리차 물,수험표,바나나,손수건

챙겨야 될 준비물이 자잘자잘 많은게 실기시험 보는 수험생의 특징이다.


전날 잊어버릴까봐 전날 저녁 미리 챙길 품목을 적어놓고 잤지만

아침에 서초에 도착하고 보니 수험표는 또 빠뜨리고 그냥 왔다.


2차 수험표를 꼭 지참해야 한다고 써있었기 때문에

딸은 홀을 빌려 반주 맞추는 동안에 근처 피씨방에서 또 출력

나는 왜 그렇게 허당일까 싶다.


급하게 출력해서 나와보니 딸은 이미 본인 수험표를 챙겨서 가지고 있었다.

괜히 나만 바빴던 아침

수험표같은걸로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말도 못하고 동동거리고 다녔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나보다 나은 딸

세상을 잘 살아 나갈것같다.


오늘까지 춥다더니 워낙 껴입고 나와서인지 생각보다는 춥지 않아서

시험장 밖 벤치에 앉아서 묵주기도를 했고

사뭇 1차때와는 달라진 풍경들이 보였다.


1차때는 가을이었고 사람들도 더 많았기때문에

음대 앞 작은 광장이 꽉 차있었고

시끄럽기까지 했었는데 오늘은 추운 날씨에 다들 광장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있거나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재수생 엄마의 내공"


1. 일단 그다지 심하게는 초조하지 않다.


내 아이가 떨어져서 아픔과 쓰라림을 겪어봤기 때문에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이 경쟁자라고 해도 그 아이들에게 축복을 기원하게 된다.

마치 그건 넘어져서 살갗이 드러나게 아픈데 그 상처의 자리에 소독약을 들이붓는 것 처럼 "악"소리나게 쓰라렸었다.


2. 입시장에서 만나는 현역 엄마와 농담을 하며 웃을 수 있게 된다.

3. 아이들을 기다리는 같은 악기를 하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다 알게 된다.

( 상대방은 나를 몰라도 - 아니 그 사람도 나를 알 지도 모른다. 나를 모르면 어쨌거나 우리 아이라도 알게 된다 )


순서가 조금씩 딜레이가 되어서 아이는 생각보다 늦게 나왔다.

문열고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살피는 일이 참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막 시험을 치고 나온 (성질 좀 드러운) 딸 사용 설명서"

1. 저게 잘 본 얼굴인가 못본 얼굴인가 순간 파악을 잘해야 되고 일단 잘봤는지 못봤는지 절대 말을 시키면 안된다.

2. 아무 말 시키지 않고 함께 걸으면서 딸이 전화통화 하면서 걸음을 멈추면 나도 멈추고 다시 걸으면 걷는다.

3. 점심을 먹으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 시험을 보고 나서 한참 후 까지도 잘먹지 못한다)


겨우 재수 쫌 시켜놓고 되게 엄살이다 그러겠지만

내게 있어 재수란 "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물 한병 없이 건너는 일" 같았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딸은 이제 그 사막을 건너 또다른 메마른 땅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본인은 아마 다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딸보다 세상을 더 살아 본 나는

딸앞에 또다른 사막이 있으며 그곳도 힘든 여정이 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시험을 끝내고도 미리 예정되어져 있었던 연주가 있어서 서울에서 늦게 내려왔다.

서울에는 저녁 무렵 눈이 펑펑 내려서

눈을 보는 마음이 평온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당장에 머리탈색부터 벼르고 있는 스무살의 청춘

내가 일명 "재수생 룩"이라고 부르던 검정 후드티와 추리닝 바지를 입고

살았어도 딸은 모를것이다.


스무살은 뭘 입혀놔도 반짝반짝인다는것을

반짝이는 스무살

멋지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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