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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정리하는 월요일. 속이 시원하다.

by 나경sam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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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일년 맡아 온 합창단 회계를 후임 회계에게 넘겨주는 월요일. 관리하던 두 개의 계좌를 그녀에게 보내고 잔액이 0원이 되었지만 잔액이 0원인게 이렇게 기쁠 일인지, 위청수 마시고 속이 뻥 뚫린것처럼 시원합니다.

비포
애프터

 

아침 일찍 후임 회계에게 돈을 이체하고 가벼워진 계좌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 하지만 눈꺼풀은 살짝 무겁습니다요.

어젯밤, 사당까지 가서 남편 친구 부부와 일요일 밤 수다 파티를 열고 왔더니, 친정까지 다녀 온 주말 2박 3일의 휴유증.

눈꺼풀로 옵니다. 그래도 즐거웠던 밤 나들이에 회계까지 인계했으니 그걸로 오늘은 충분히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수입 지출 잔액 맞추고 행사 후 회계로서 챙겨야 할 일들이 쏠쏠하게 있어서 돈 버는 직장 일보다 바쁠 때가 있었는데 이젠 책임이 없어졌으니 섭섭할 일은 없고 시원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회계를 맡아 일 년을 해 보니 돈이나 숫자보는 눈이 좀 생겨서 뼈속까지 문과생인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으니 어떤 일이든 해 보면 그만큼의 이익이 있지 손해는 없다. 를 알게 되었네요.

 

고 2로 올라가면서 문, 이과로 나눌 때 문과는 6반 이과는 3반이었습니다.

나야 뭐 고민없이 문과를 써 냈지만 아이들은 이과 썼다가 한참 있다 다시 문과로 고쳐 쓴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영신이는 친한 친구였는데 이과로 가서 2년을 같은 반을 못 하다가 3학년 때는 우리 반 옆에 영신이 반이 있어서 복도에서 자주 수다를 떨었는데 그 때 영신이가 말 한 이과를 갔던 이유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우선 영신이는 엉뚱한 구석이 있던 아이였는데요. 우리가 메이커 병에 걸려서 어떻게든 남들이 알아주는 옷을 사 입지 못 해 안달나있던 1984년 고 1 때 같은 반일 때도 영신이는 움베르또 세베리같은 비싼 남방을 매일 학교에 입고 올 만큼 넉넉한 집 안 딸이었는데, 절대로 그걸 티내지 않았던 쿨한 아이였습니다.

오히려 옆에서 애들이 호들갑이었죠.

 

아이들 : "영신아, 니 옷 움베르또 세베리 맞지?"

영신 : "몰라, 집에 있어서 입고 나왔어"

다른 애들말이라면 그런 말 조차 거만하게 들렸겠지만 영신이는 진짜 그랬을겁니다. 얘가 워낙 그런 걸 싫어하니 영신이 엄마가 사다 놓고 얘는 그냥 입고 다녔을거다.

영신이가 자주 입고 다녔던 "움베르또세베리"

 

엄마 협박해서 겨우 뻬뻬로네 여름 티셔츠 두 벌 정도 사서 바지는 옹달샘 바지로 맞춰입고 메이커 돌려막기를 하던 그 시절에 영신이는 매일 다른 움베르또 세베리를 입고 다녔고 있는 티도 절대 내지 않았으니 나는 영신이의 그런 쿨한 면이 좋았었는데 이과로 가서 만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멀어졌었다는 거 아닙니까..

 

살아보니 문, 이과가 뭐라고 그땐 그랬었나.

이 나이돼보니 문과였던 나도 이과처럼 살고 이과였던 아이들도 문과처럼 살 텐데 말이지...


다시 돌아가 1986년. 어느 날 복도 계단에 영신이랑 둘이 앉아 진지하게 진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 영신아, 너는 무슨 과 갈려고 이과갔어. 

영신: (내 질문에 이미 정신나간 표정과 눈이 반 쯤 풀려서) 항공대학교. 갈거야.

나: 와 멋지다. 영신아. 너한테 그런 꿈이 있는 지 몰랐어.

영신: 내가 왜 항공대학교 가고 싶은 지 알려줄까. 에어울프때문이야.

영신이가 좋아했던 에어울프 미드

 

영신이는 에어울프 이야기 하면서 주인공 남자가 너무 좋아서 자기도 그런 조종사가 되고 싶어서 이과를 선택했고 항공대학교를 간다고 했는데 영신아, 정말 내년 1월에 이탈리아가는 비행기에서 기장이 영신이면 좋겠다.

 

세상 살아보니, 문 이과 아놔 떡이다. 퉤퉤퉤!!! 수학1에서 끝난 나의 수포인생이지만 합창단 회계 일 1년동안 잘했다. 

박수 짝짝짝. 0원된것도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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