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가톨릭합창단 10주년 연주가 끝났다. 오디션보고 1차에 붙어서 들어갔을때부터가 운이 좋았던것같다.
내가 들어간 이후로 응시연령에 나이제한이 생겨서 내 나이로는 오디션도 못 볼뻔했는데 10주년 기념 음악회까지 서게 됐으니, 내 인생으로 봐서도 이건 꽤 괜찮은 운이잖은가.
게다가, 이번 연주에서는 누르고 있던 나의 재능을 알아봐주신 지휘자님의 덕분으로 퍼포먼스까지 하게 됐으니
이걸로, 1987년 전북대 합창단 오디션에서 "그 집앞"을 부르고 떨어진 한을 풀기로 하자.
과 동기였던 애숙이가 합창단 오디션을 보러 가야 되는데 혼자 가기 부끄럽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보통 탤런트들은 그런 경우, 얼덜껼에 따라간 친구는 합격하고 작정했던 사람은 떨어지는 스토리더만
친구따라 갔던 나는 떨어졌고 애숙이는 합창단에 붙어서 활동을 했다.
어디서 "그 집 앞"이라는 가곡만 나와도 듣기가 싫었던 것은 원하지 않았어도 합창단 오디션에 떨어진 게 원인이었다.
그래도 그때 스무살 때는 애숙이만큼 절실하게 대학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고, 합창이 그렇게 좋은 줄도 몰랐다.
합창이 주는 위로같은걸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나이를 먹은 지금이다.
작년에 스트레스 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때, 월요일 저녁 두시간씩 하는 합창 연습이 나에게는 피로회복제였으며 진통제였다. "남촌"을 부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고, "만유의 하느님"을 부르면 카톨릭 신자라는게 자랑스러웠으니 월요일 합창 연습이 돈주고 맞는 링거보다 낫지 싶은 정도였다.
그러니 간식 담당하는 회계로 일하라고 해서 매 주 60명 넘은 단원들 간식준비하고 메뉴 고민하는 일도 즐거웠으며
한 달에 한 번 회계보고하고 돈 맞추는 일도 즐거웠다.
입단하고 보니 이년이 훌쩍 지나가서 10주년 연주회도 했고 지휘자님의 꽤 뚫어 보는 눈으로 발탁돼서 합창곡 "씨엠송"에서 중간에 퍼포먼스하는 여자로 등장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님이 그랬다. "아니, 어떻게 그 끼를 누르고 사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순둥이들도 많지만 센 언니들도 제법있는 합창단에서 빌려다 놓은 고양이처럼 앉아서 있다가 퍼포먼스하라고 하니까 머리에 딸기 모양 스카프 두르고 선글라스끼고 휘젓고 다녔으니, 우리 지휘자 선생님 놀라셨겠지만
사실은 그게 저랍니다.
연주한다고 메이크업에 헤어까지 예약해준 딸 덕분에 30년전 결혼식 이후로 붙임머리 하고 무대에도 서보고 협연하는 아들과 맞춰서 노래도 했으니 굉장히 축복받은 연주였다.
이걸로 다시 한 번 37년 전 "전북대 합창단" 오디션 떨어졌던거 "퉤퉤퉤"
엄마가 합창하고 아들이 연주하는 걸 해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테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다.
내가 서 있는 알토 자리에서 뒷통수가 보였던 클라리넷 자리의 우리 딸도 내가 보냈던 따뜻한 눈빛을 받았으려나.
남양성모성지 축복받은 성당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도 우리 아이들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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