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지도 않은 시댁의 4남매가 시간을 맞춰서 부모님 생신을 챙기는 일도 아주 어려워졌다.
어지간하면 어른 생신 뒤로 넘기는 거 아니라고 했다는데 올 해는 뒤로 한참 넘겨서 만나서 식사를 했다.
음력 9월 2일이 생신인데 음력 9월 10일에 만났다. 내 생일에 말이지.
나 "이번에 가면 아버님한테 며느리 생일인데 용돈 좀 주세요" 할거야
남편 " 그러든가"
고속도로 막혀, 국도 막혀 길처럼 생긴곳에는 죄다 차가 있어서 시댁 내려가는 길이 추석때보다 막혔고 용돈 받으러 내려 가는 길이 아주 험난했다.
추석에 길이 막힌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택 관광 3곳을 들렀던 벌을 늦게 받았을까.
점심 식사를 하는 식당까지 점심 시간에 갈 수가 없어서 결국 시댁으로 갔으니 힘든 길이었다.
이제 나이드셔서 용돈 주는 봉투도 마다 하시고 정말 늙은 할아버지가 된 우리 시아버지는 옛날 시아버지가 아니시다.
하지만 (돈 봉투 필요없다하시면서도 받긴 하신다)
시댁 벽에는 시아버지 환갑인지 시어머니 환갑에 가족 모두 마당에서 사진사를 불러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우리 셋째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승범이는 사진사가 아무리 앞을 보라고 했어도 말을 안듣고 먼 산을 바라보는 컨셉으로 혼자 딴곳을 보고 있는 사진이라, 돈 주고 부른 사진사가 맞나. 떼서 처 박아 두고 싶은 사진이지만 30년이 곧 돌아올만큼 같은 곳에 당당하게 걸려 있다.
시아버지 환갑 생신에 찍은 사진에 서른 살 초반이던 남편이 벌써 환갑 생일이 다가오고, 먼산보는 컨셉으로 사진이 찍힌 우리 큰 애가 사진 속 남편 나이가 되어간다.
사진으로 남은 우리들의 청춘은 나이도 안 먹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 "아버님, 오늘이 며느리 생일인데 용돈 좀 주세요"
시아버지 "니가 나한테 용돈을 줘야지"
네, 네, 그래도 오늘이 며느리 생일인데 용돈 좀 주떼요...
혀를 반으로 온 마음으로 접은 후, 다시 한 번 용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봉투가 하나 돌아왔다.
당신 슬하에 자식이 넷이지만 내가 안다. 어느 자식 하나 아버지에게 혀 접어가면서 용돈 달라고 못 했을텐데
그 어려운 걸 제가 했습니다요..
올라오는 길, 차 안에서 이번에는 내가 시아버지에게 받은 용돈을 반띵해서 남편에게 주고 사이좋게 웃으면서
수원으로 올라왔습니다..
피곤하지만 즐거웠던 시아버지 생신 나들이. 이제 시댁 가는 건 뭐든 즐거운 나들이라고 가스라이팅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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