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홥니다. 1985년 불어시간
제 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던 고등학교 때, 느끼남이었던 불어 선생님은 프랑스에 관한 질문 받는 걸 좋아하셨다.
해외 여행 가는 게 어렵던 시절, 프랑스는 사회과부도에서 본 나라였지만, 우리들이 프랑스에 관한 질문을 하면
불어 선생님은 열심히 설명해주셨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일본도 그렇고 모든 외국의 나라들은 사회과부도에서 보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생각해보면 불어선생님이라고 그 시절에 프랑스에 다녀 오셨을리도,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셨을 리도 없었을텐데
불어 선생님에게 손을 들고 '선생님, 프랑스에서도 데모를 하나요?' 그 어떤 쓰잘데기없는 질문을 해도 대답해주시느라
지루한 불어 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우리반 애들은 하다하다 '프랑스에서도 오곡밥을 먹나요?' 질문도 했었다.
어이없어하던 선생님 표정은 기억나지만 프랑스의 오곡밥 질문에도 대답은 해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셨거나 완전 할아버지 되셨을 불어선생님, 보고 싶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냄새도 싫었던 나물들이 이젠 먹을만하다. 나물 먹는데 사십년 이상 걸린 여자가 바로 나다.
입 짧기가 내 또래 아줌마들 중에 상위 3프로 쯤 안에 들 내가 어렸을 때 나물 안먹었던 것은 당연한 일,
김치도 고학년 돼서 먹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 입 짧다고 뭐라 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가려 먹는 일이 오래갔다.
그래도 뭐 살면서 44사이즈는 한 번도 찍어 본 적이 없으니, 먹는 것과는 별개다 싶다.
다른 걸 많이 먹었을거다. 아마도... 그렇지. 체중은 정직하더라!!
이젠 보름이면 나물도 먹고 싶고 동지면 팥죽도 먹고 싶지만 못 한다.
그래도 해서 주는 사람이 있으니 (엄마 말고도 있다니, 세상 잘 살았다.) 성당 다니길 잘했지. 레지오 활동 하기도 잘 했지.
나물에 오곡밥, 김치까지 레지오 단장님에게 푸짐하게 받아서 보름대잔치를 벌리고 비벼먹고, 그냥 먹고, 바닥을 봤다.
사진속에 있는 것들을 골고루 덜어서 주셨다. 레지오 단장님^^
만들지 못 해도 해서 주시는 분이 있으니 먹고는 산다. 그리고 말이지.
얻어 먹고 사는 애들이 직접 만들어서 먹고 사는 애들보다 훨씬 잘 먹고 산다. 나를 보니 그렇다.
레지오 단장님, 여름이면 콩물 갈아서 주고, 금요일 퇴근 할 때면 저녁 반찬 해 놨다 주시고, 당신 딸네들 준다고 멸치 볶음 한 거 나한테도 수양딸처럼 똑같이 덜어 주시고, 맛은 또 을매나 기가 멕힌지 모른다.
멸치를 그냥 숟가락으로 퍼 먹게 되는 맛이랄까.
세상 살면서 화가 나서 불퉁거리게 될 때,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니 마음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속 썩이는 인간들 있으면 감싸주는 사람들도 있고 세상이 그래서 균형 맞추고 돌아가나 싶다.
하지만 그래도 힘들 때가 있으니 그럴 땐 나잇값하면서 감정 조절해야지 별수없지.
그동안 먹은 밥이 얼만큼인데. 그래 밥 값하고 나잇값하고, 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