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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식당

나를 위한 저녁밥 마파두부

by 나경sam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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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던져 놓고 밥 하러 주방으로 뛰어 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게 고달프다고 하면 엄마가 그랬다.
'그때가 좋은 때다'
지나고 보니 엄마 말씀이 맞다. 애들이 밥 달라고, 뭐 사달라고 조르던 때가 좋았구나. 
이제는 배 고프면 알아서 시켜먹고 사 먹고,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들이 번 돈으로 사니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에서는 놓여났는데 그것이 매우 기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아니니!
그래, 좋았던 추억으로 치자.
 
저녁에 밥 차려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먹는 저녁은 제대로 먹지 않는 날이 많다.
주말부부인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자기를 위해 만드는 저녁밥이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다는데
나는 나 말고 저녁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뭘 만들기가 귀찮고 싫었다.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주식하는 인간들이 물렸을 때 45층에도 사람있어요. 그러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다.
'너도 사람이잖아. 오늘 하루 애썼잖아. 따뜻하게 저녁지어서 먹어. 너도 밥 먹을 사람이잖아'


마파두부밥이 그런 기분에 딱 맞는 요리였다.
퇴근하면서 같은 방향이라 함께 걷는 선생님이 어제 저녁마파두부 해 먹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그러길래
그 길로 홈플러스 들어가서 두반장사고, 볶음밥 용 채소 다져진 거 두 팩, 두부 두 팩, 돼지고기 간 거 한 팩, 크림스프 한 봉지 사서 왔다.
 
나의 요리생활은 결혼하고 시작되었다.
콩나물 국 하나 만들줄 모르고 결혼했으니 엄마가 온갖 음식을 다 해서 나르고 택배로 부쳐주고 우리 엄마는 본인이 음식 가르치지 않은 벌로 딸 넷에게 음식 보따리를 산타처럼 날라주셨다.

애 셋 낳아서 키우다보니 점점 요리도 늘어서 이젠 먹고 싶다하면 만들어 내는 중견 아줌마가 됐지만 김치는 못 한다.

일본에서 일 년 지낼때는 답답하니 김치도 대충이라도 해서 만들어 먹었지만 일 년만 그랬을뿐 이번 생에 내 손으로 김치 담글 일은 없을 것이다.

나 "내가 김치 못 담그는게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 "엄마 탓으로 돌려야 편하면 그렇게 해라"

평생 반찬해서 보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게 엄마다.

우리에게 세상만만한 엄마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팍팍한 삶이었을까

나를 위한 마파두부를 만들어서 따뜻한 흰 쌀밥에 무김치 오도도득 깨물어 먹으며 저녁을 먹었다.

맥주 한 캔 부르는 각이었지만 참았다.
레지오가야 되니 성모님 앞에서 술 냄새를 낼 수는 없다. 🤔

 


엄마는 세부에 놀러 가셨다.
올케랑 썬글라스에 양산까지 들고 리조트 산책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세부가기 전 여동생이 전화해서 짐쌌냐고 물었더니 "김 굽고 있다" 그러셨단다.
역시 엄마다.

저녁 먹을 사람이 너라는걸 잊지 말아라
우리 두 딸들에게도 알려줘야겠다.
엄마는 그거 아는데 오십 육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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