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고 나니 눈이 내렸다.
막내가 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앞에서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도
아이는 늦게 나왔다.
나온 시간이 거의 제2외국어까지 선택해서 본 아이들 시간즈음에 드디어 나왔다.
너무 어려웠고 진짜 수학은 하나도 모르겠더라며 일관성있게 3번으로 찍고 잤다면서
아유 피곤해 진짜 힘들었어 그런다.
저녁 메뉴로 자장면과 떡볶이의 갈림길에서 자장면을 택한 막내를 데리고
아들만 빼놓고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까지 곁들인 저녁을 먹고
성당으로 가서 성가대 연습까지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제법 펑펑 내리고 있는 눈
가로등 불빛 아래에 쏟아지는 눈이 소담스러웠다.
고등학교 1학년때 성탄절 전에 아버지가 근무를 하시다가
집에 전화를 하셔서 우리 다섯 남매를 근무하는 곳으로 오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눈이 진짜 펑펑 내리던 명산동 언덕배기 길을
우리 다섯은 뛰다가 걷다가 십오분쯤 되는 시간을 걸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었다.
아마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계 근무를 서느라 명산동 사거리에서 계셨던 것 같았다.
내가 큰 아이라고 동생 네 명 줄 세워서 아버지한테 찾아갔더니
아버지가 늘 빵을 사오던 명산동 사거리 해태당빵집으로 우릴 데리고 가서
마음껏 빵을 고르라고 하셨다.
늘 아버지가 사오던 해태당빵이었지만 우리들이 직접 먹고 싶은 걸 고르는 재미는
너무 좋았고 빵집에 다섯명 웃음소리가 가득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같이 근무서던 친구분인지 동료분에게 우리들을 인사시키면서
아직 고등학생인 나를 우리 딸 이대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셨다.
겨울방학이라 내려와있는거라고 거짓말을 너무 멀쩡하게 하셔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그 분이 너무나 나를 대견한 눈길로 보는 바람에 아니라고도 못하고 굉장히 당황했었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아마도 큰 애인 내가 이화여대에 가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는게 나의 소원이었었는데 아버지의 그 말 이후로
이화여대에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번씩 했었다.
아버지 거짓말이 내게 수줍은 꿈을 안겨주었지만
나는 아버지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어디 아버지 뜻대로 안된게 한두가지이겠는가
돌아가시고 나니 효도란 별게 아니었다
함께 여행가고 맛있는것도 먹고 아버지가 내게 바랬던 멋지게 사는 모습도 보여 드리고
그랬음 좋았을 걸 아쉬운것들만 생각나서 돌아가신 후 마음이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함박 눈이 푸짐하게 내리던 그날 저녁
해태당 빵봉지를 들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우리들은 늦게까지 빵을 먹고 떠들다 잠을 잤다.
그 날 빵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집에 못들어오고 근무를 섰던 경찰관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미안해서 준 선물이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면 그날 명산동 언덕배기를 뛰다가 걷다가 달리다가 하던 우리 오남매가 생각나고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운 아버지
벌써 삼주기가 돌아온다.
발인 전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발인 날 아침 차가 제대로 선산까지 갈 수 있을 까를 걱정할정도로
오지게도 눈이 내렸었다.
나도 살면서 그렇게까지 펑펑 내리던 눈은 몇 번 안본것같을 정도로 많이 내렸었다.
선산을 향해 조심스럽게 가던 버스안에서 외삼촌이 "매형이 가기 싫은 모양이다"라고 혼잣말을
큰소리로 했을 때 나는 그때까지 넋이 나가서 그말을 듣고 눈물도 나지 않았었다.
선산가는길에 큰 호수같은 게 있었는데 잔뜩 온 눈으로 호수전체가 얼어 있었고 쌓인 눈으로
호수가 아니라 평지인것처럼 보였었다.
이듬해 봄에 그 길을 지나면서 보니 호수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겨울과 봄의 풍경이 그렇게 달라져 있었다.
계절이 세 바퀴를 돌아 풍경은 세 번 바뀌었고
눈물 콧물 쏟으며 다니던 이년 쯤의 시간이 흐른 후 눈물은 거짓말처럼 더 나지 않았다.
이후 일년은 가끔 생각나서 쓸쓸할 때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웃긴 일에는 웃고 맛있는것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식이었다면 절대로 그럴수 없겠지만 부모는 그렇게 되어 있다.
안그럼 살 수 있겠는가
남들이 이렇게 해주던 위로도 야속할 만큼 그리웠던 아버지였는데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성가대 연습 마치고 나와서 문득 올려다 본 가로등 아래 내리던 눈을 보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리던 눈과 아버지와 해태당 빵과 우리 다섯 남매의 소란스러움이 함께 내 마음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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