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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비소집"

by 나경sam 2017.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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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소집"


2차 시험이 남아 있는 마지막 학교의 예비소집이 일주일 미뤄진 오늘 있었다.

뭐든 어려서부터 혼자하기를 좋아하던 아이라서 데려다준다고 해도 그냥 혼자 간다고 해서 딸은 혼자 학교에 갔다.


그런데 수험표를 출력해가지 않았다고 실기시험에 필요한 반주자증을 주지 않더라면서

혼자서 대학교의 학생회관을 찾아가서 출력해서 받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춘천에서 수원으로 전학을 왔을 때도

바빠서 데려다 주지 못했더니 한 학년 아래 동생을 해당 반에 데려다주고 

본인은 스스로 자기 반에 찾아가서 앞문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간 노크전학의 원조녀이시다보니

혼자서 뭘 하는건 잘하고 믿을 만 하다.


아이들 초등학교때 세명을 데리고 나혼자서 서울을 데리고 온 적이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 한성대입구역에서 혼잡한 사람들을 뚫고 내리면서 내가 큰 아이만 데리고 내려서

뒤따라 내리던 둘째와 셋째가 사람들을 뚫고 내리지를 못해서

지하철 미아가 될 뻔 했었다.


이미 큰 아이와 나는 내렸고 사학년 삼학년 쯤이었던

둘째와 셋째는 지하철 안에서 얼이 빠져서 우리를 쳐다봤고 지하철은 떠났다.

그때는 아이들 핸드폰이 없을 때라서 나도 떠나는 지하철을 보면서 어찌할바를 몰랐었는데

둘째 딸은 셋째 손을 꼭 잡고 울지도 않고 나를 차창 너머로 쳐다봤었다.


그래서 나도 정신을 차리고 손하나를 올리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언니 손에 의지한 셋째는 지하철이 슬슬 떠나갈 무렵 고개를 숙이고 우는게 보였고 그런 와중에도 둘째는

믿음직했다.


다음 지하철을 타고 바로 다음 정거장으로 갔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이미 한정거장 가는 동안 셋째는 엉망이 되게 울었고 둘째만 셋째 손 꼭 잡고 울지도 않고 있었다.



시험이 금요일 오전으로 나왔다.

금요일까지만 고생하면 토요일부터는 오후까지 자는 딸을 집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재수라는게 시켜보니까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고

둘 다 재미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도 한 달이 길었나 싶을 만큼 하루가 안갔고 일주일이 안갔고 한달이 가지 않았다.

사춘기도 유별나게 하지 않고 무탈하게 지냈던 아이였었는데 사춘기를 하는 아이처럼

한마디하면 두마디하고 불퉁불퉁대고

차 한대만 지나가면 딱 좋을 길을 저와 내가 쌍방향에서 운전하고 오면서 서로 기싸움을 하며

비켜주지 않는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들이 여러번 있었다.


작년에 수시모집에서 불합격하고 "가"군에서 본 학교가 발표에서 예비1번이라고 떴을 때

이미 그말이 불합격을 의미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둘째는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갔다.


지금까지 힘들었던것 다 털고 오겠다며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하고

혼자서 가장 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화장을 떡칠하고 여행을 갔다.


다녀와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워낙이 씩씩하게 말하길래

걱정은 했지만 믿는 마음으로 보냈다.


삼박사일의 일정이었고 용돈조차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기 돈으로 가는 아이여서

내가 해 줄 일은 별로 없었다.


"예비1번"이 주는 희망고문일랑 버려버리라고 말해주었었고

아이도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제주도 간 지 하루도 안 가서 새벽에 울면서 전화가 왔다.

갈 때의 마음으로는 그동안 힘들었던거 혼자서 여행도 하면서 풀고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재수가 결정된 자기 현실만 생각나서 도저히 갑갑해서 못있겠다면서

두시 쯤 울며불며 대성통곡을 하는 딸을 달래면서 붙들고 함께 울었다.


갈 때는 알뜰하게 계획세워서 갔으니까 리무진도 다니지 않는 시간대의 저가항공을 타고 갔지만

올 때는 계획을 뒤집어서 빨리 오고 싶은 마음만 남아 있었기에

딸은 아주 비싼 돈을 들여서 집에 왔다.


그와중에도 동생 준 다고 공항에서 쵸콜렛을 몇 박스 사온걸 보고

저 마음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가 했었다.


기숙학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다니는 예체능 재수는

일년 사이에 부모는 늙고

아이는 애가 탄다.


이제 다 끝나간다.

 저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그 빛을 향해서 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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