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하고, 화단의 마른 가지들을 쳐냈다.
전지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화단 정리를 하고 깨끗해진 화단을 보니
미용실 다녀온것같은 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건 땅에서 올라오는 것들,
가지에 숨어 있는 봄의 새순들을 발견한 것이다.
숨은 그림찾기처럼 새 순을 찾아냈다.
화단에 있던 아이들이 땅 밑에서 준비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나보다.
언제 나갈까 얘들아, 자기들끼리 으쌰으샤하고 있었는지 화단은 벌써 은밀하게 봄이었다.
옷장은 정리를 해도 다시 정리할게 생기는 무서운 공간이다.
그동안 옷장정리를 했을 때는 수거함에 버렸지만 이번에는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키로당 400원인데 아저씨가 300원 더 줘서 3,100원 받고 흐뭇한 내 마음도 봄이야.
신발장 정리도 했는데 구두, 운동화도 받는다니까, 나는 아직도 더내다 팔 게 있다 이거지.
하지만 키로당 400원 준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이제부턴 소비를 현명하게 하는게 돈버는 거라는걸
고물상에 비싼 옷 내다 팔고 나면 공부가 된다.
그걸 알게 된 것도 봄이지. 날씨만 풀린다고 봄이냐. 내 마음에 새로운 마음이 싹트는게 진짜 봄인거다.
남편은 씨 뿌릴 준비를 하느라 옥상에 올라가서 반나절 삽질을 하고
나는 옷장정리, 냉장고 비우기, 후드의 기름때 벗기기, 화단정리
손목이 시큰거리게 일을 했지만 이 또한 먹고 사는 일의 연속
냉장고에 자고 있던 오징어 세마리중 한마리를 과감하게 잡았다.
우리밀 밀가루,부침가루,김장김치에 김칫국물 넣고 올리브유로 바사삭 지져서
두 장이나 부쳐서 둘이 먹고, 안방에서 거실에서 따로따로 뒹굴뒹굴하다가 내가 물었다.
나 '당신, 집에 오면 편하지"
섭섭 '그럼 완전 편하지'
집이 편하면 봄이지. 별게 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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