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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섭섭 수선집

by 나경sam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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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똑딱이 단추를 달아준 블라우스를 입고

고터에서 산 트위드를 걸치고 샤넬 라인의 검정 스커트를 입었더니

바로 봄이 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입고 돌아다녔던 날 추위와 멋을 퉁쳤다.

앞 깃이 벌어질까 똑딱이 단추를 달아주고 섭섭은 청주로 갔다.

먹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빨래개기와 다림질, 자식들 돌보기, 나랑 놀기,텃밭가꾸기에는

진심인 남편은 바느질을 아마 나보다 더 잘할것이다.

애들 교복다려입힐때 남편이 다려놓은 은진이의 계원예중 주름치마는 군기가 확 잡혀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아이들 교복을 다려서 보면대에 주르르 걸어놓고 혼자 좋아했었다.

정작 남편을 제외한 우리들은 당연한 일이라 별스럽지도 않아서 다림질하는 남편을 보는게 특별하지 않았지만

바느질은 좀 다르지 싶다.

 

언제부턴가 꿰매는 일도 남편이 조신하게 앉아서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자기 바지같은 걸 나한테 맡기지않고 혼자서 바느질하는걸 본 아이들이

아, 우리 아빠는 바느질도 하는구나 생각했던것 같고 아이들이 어쩌다 옷 단이 터지거나 했을때

아빠, 나 이거 터졌어, 꿰매주라. 이랬던게 섭섭님 바느질의 역사가 되었다.


바느질을 맡기면 조신하게 앉아서 수선을 해놓고 우리가 마음에 들어하면

좋아하고, 잘못됐다면 두말없이 뜯고 수선해주는 불평없는 바느질쟁이지만

내가 마음에 든다고해서  끝나는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들어야 끝나는 바느질이다보니 수선해주는 사람의

갑질을 감수해야 되는 남편의 바느질은 본인 마음에 들때까지 끝날때까지 끝나지 않는 바느질이다.

돈주고 맡기는 집 같으면 다시 안가는 바느질 집^^;;;

입어봐라, 다시 벗어라, 아니 잘못된것같다. 이건 자기가 용납을 못한다. 이런식의 바늘로 휘두르는

갑질을 견뎌야만 고객이 될 수 있는 섭섭수선집,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섭섭하나 바느질 솜씨는

섭섭하지 않은 집이다.

 

주말에 올라와서 살짝 보이는 똑단추를 옮겨주겠다고 애프터서비스를 예약해놓고

청주로 쪼르르

 

마지막 출근 날, 블라우스를 입고 트위드를 입었더니 봄이 그냥 와버렸다.

대신 하루 종일 추웠지만 마지막 날, 화사하게 마무리하고 이젠 걸어서 다닐

새학교가 3월 2일부터 기다리고 있으니 봄이 아직이어도 왔다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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