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군산에 가느라
조퇴와 지각을 달고
청주까지 운전해서 섭섭이와 만나 군산까지
노을을 보며 달렸다.

돌아가셨던 2014년 12월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선산에 차가 올라가지 못해
돌아가신 아버지도 차에 타고 있던 우리들도
고생을 했다.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차안에서 외삼촌이
"매형이 가기 싫은가보다"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하셨다.
작은소리였는데 크게 들렸다.
음력으로 10월 23일에 지내는 제사는
돌아가시던 해를 제외하고 음력 10월 23일에
눈이 내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가시려고 그랬는지 그 해 겨울은
진짜 추웠고 마음은 더 추웠다.
화장을 해서 분골을 마친 후에 매장 방식으로
진행 된 아버지 장례식 마지막날
눈이 너무 내린 선산에서 발이 너무 시려워서
오죽하면 얼른 집에 가서 발부터 녹이고
쉬고 싶었다.
입원하시고 이 주후에 돌아가셔서 내가 해드린 것은
일반 병실에 계실 때 두 번
의식이 없으시던 중환자 실 병문안 세 번도 하지 않고
돌아가셨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는 날에도
자기 발 시려운게 우선이지 싶었다.
우리집 제사에는 축문이라는 형식으로 편지를
읽어드린다.
1년동안의 대소사가 다 들어있다.
이번에는 남동생이 독일 축산박람회에 출장을 가서
남동생이 써놓은 편지를 내가 읽었다.
막내 여동생과 우리 내외 사촌 오빠가 참석한 제사였다.
첫 해부터 제사와 명절에 지내던 제사에 써놓은 편지가
8년이 되니 편지지 한묶음이 될 정도로 쌓였다.
아버지의 시간은 2014년 12월에 멎었어도
자식들부터 손자 손녀의 시간은 흘러 8년동안의 편지글에 들어 있다.
이사갈 집 고치는 얘기
고등학교 입시보는 큰 손주 이야기
코로나로 군입대 미뤄진 부산 조카 이야기
하계 졸업식 한 우리 은진이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옆에서 듣는 것처럼 다큐멘터리로 써내려간 남동생의 편지는 우리를 꼭 울게 만들고 웃게 만든다.
큰누나가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자기는 하노버에 있을거라며 독일어로 아버지께 인삿말을 써놓았다.
구테 나흐트
독일어 인삿말에 나도 일본어로 아버지 곤방와(일본어 저녁인삿말)로 인사를 전하고 우리집 제사는 끝났다.
엄마는 대봉부터 곶감 김치 들기름 고기
쌀까지 나눠줄 수 있는 것들을 엄청 내주고 하루를 아프셨다.
부모는 그런거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리 통장에 들어와있던 부의금을 보고 부모는 돌아가시면서도 자식들에게 주고가는구나 슬펐다.
부모노릇이라는게 당신 죽어서까지구나 싶으니
자식들 건사하는 베품이 한이 없구나 했으나
딸년은 함박눈에 아버지를 산에 묻어도 자기 발 시려운게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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