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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훅 지나갈 뻔했다.
아기 손처럼 꽁꽁 얼어있던 손바다 화단
척박했던 흙을 뚫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아줌마, 안녕" 하는 얘길
못 들을뻔했다.
수선화가 꽃을 피울까
작년에 열심히 심고 가꾸던 화단에
올 해는 어떤 애들을 채워넣을까
옷장에 옷을 채워넣고 싶은 마음따윈
없어진지 오백 년
화단에 어떤 애들을 데리고 와야 될까
작년에 심었던 애들은 다시 잘 살겠지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봄이다.
국룰이란 바로 이런게 국룰이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
작년에 심어놨던 애들이
다시 인사를 하러 나오는 것
낡은 주택들로 둘러 쌓인 동네에
드디어 뒷집이 두 동을 부수고 빌라를 짓는다.
우리 바로 뒷 집이라
그동안 막히지 않아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주방 쪽 창문이 이젠 막힐 것이다.
아침부터 포크레인이 건물을 부수더니
몰라도 삼십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켰을
건물 두 동이 주저앉는 건 순간이었다.
이제 말끔하게 생긴 건물 한 동으로 올라갈것이다.
이 동네에서 이제 주택이라곤
우리집이랑 앞 집 그리고 건너건너 두 집뿐이고
모두 빌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작은 화단이라도 있는 집은 우리집 뿐이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 지 싶다.
봄이 왔으니 또 마음내키는대로 예쁜 꽃들을 사서
모종삽 한 삽 뜰 자리만 있으면 꽃을 심을 것이다.
봄에 부리는 사치
봄이 왔으니 또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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