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보다 조금 더 오래 살기로 했다.
한 달전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무증상으로
감격스럽게 자나갔으나
독감같은 감기가 (절대 코로나 아니었음)
지난 주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나를 진짜 미치게 하고 있다.
이틀 죽게 아프고 하루 살 만하다가
오일 소강상태로 그저 그렇게 가더니
목요일 저녁부터 오한에 두통에 고열에
내 손으로 119불러서 응급실 가고 싶은 상황
하지만 진통제로 버티고 세시간 간격으로 깨서
열 체크하고 38도 넘는 경이로운 숫자를 확인하고
또 해열제 먹고
백신 주사 3차까지 가는 동안 두 번 먹었던
진통제를 한 통 다 털어넣고
겨우 출근했다.
살이 내 살이 아니고 혀가 내 혀가 아니라서
배도 안고프고 맛도 안느껴져
누가봐도 코로나지만 미안하게도 자가진단키트
두 번 음성이라 꾸역꾸역은 딱 금요일 출근하는
내 꼴에 어울리는 말이다.
승범아, 은지나, 수미나,남편 놈아
나 죽는다를 하고 싶었으나
자식들한테는 차마 못그러고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남편에게만
죽네사네,했지만 진짜 죽을것 같은
진통제 투혼의 금요일
하필 그날따라 옆 반 선생님 아들 입대로 연가라서
내가 7시까지 남아서 봐주기로 한 날이라
5시에 퇴근도 못하고 옆 반 아그들까지 데려다
우리반 애들처럼 봐주느라 두 시간에 한 알씩
진통제 아껴 먹어가며 하루를 보냈다.
급식먹으러 가기전 오늘 식단 뭔지
확인하고 가는 게 취미인데
금요일은 그것도 패쓰, 쏘 쿨하게
![](https://t1.daumcdn.net/keditor/emoticon/face/large/012.png)
약 먹으려니 밥은 필요해서
급식 개시 3월 3일 이후
처음으로 남아 있던 내 식판의
밥과 반찬들이여.
쏴-------리
언니가 그런 언니가 아닌데 그날은 밥도 사기같아서
안넘어가더라.
대신 딸기는 다섯알을 받아서 아작을 내주고
그렇다고 딸기맛이 느껴졌나? 오노
딸기의 아무 맛도 못 느껴본 생애 첫 날
그치만 교실에서 애들한테
니들은 급식에서 딸기 몇 개 받았냐?
나는 다섯개나 받았지롱----
약 한 번 올리고, 매일 읽어주던 동화책을
내몸 상태도 모르고 읽어달라던 애들 땜에
토끼, 너구리, 다람쥐가 친구로 나오는
동화책을 세 마리 소리 달리해서 읽어줬는데
몸이 아프니 머리도 빙글빙글 돌아서
나중에는 토끼소리가 너구리 목소리 됐다가
세마리가 섞여 버려 대 환장 동화책 피날레
그래도 애들은 몰라-.-
그 와중에 효성초에서 갈고 닦은 보드게임
컵스 할리갈리를 하자는 애들이 있어
나까지 셋이 했던 할리갈리에서
죽기살기로 카드를 따 먹고 1등을 했더니
1학년 여자애가 화를 내며
자기는 안한다고-.-
얘얘 너 그렇게 살면
나중에 친구 없어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야 이제는 그런 말은 속으로만 하는
어른이니까
쿨하게 게임에서 빠지고 진통제 투혼으로
금요일을 보내고 청주에서 부터 데리러 온
남편과 함께 사모님 퇴근
(남편 차를 타는 순간부터 나는 사모니임)
밥을 못먹고 있으면 죽이라도
센쓰가 있다면 끓여봐야 사람아이가
우리 남편은 사람이 아니었나벼
내가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그렇지
시키지 않으면 뭘 못하는 요리 수동형 인간이라
머리 싸매고 드러눠있다가
도저히 속 쓰려 안되겠길래
"여보 흰 죽이라도 좀 끓여줘봐"
했더니, 열심히 끓여 온 흰 죽속에 밥알들이
죽지도 않고 살아 있어, 오메 이게 죽이냐, 밥이냐
냉장고에 있던 소고기로 소고기죽 좀 끓이랬더니
흰 죽도 어려웠던 분이 난이도 상의 죽은 무리였다.
소고기를 한 점 한 점 가위로 잘게 자르고 계신
유주부를 보는 순간 결심했다.
내가 저 인간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구나
그래도 물가져와
일으켜줘
죽 끓여줘
약 사와, 청소 좀 해, 냄새나는것 같아
온갖 꼬장을 있는대로 부렸어도
남편없었더라면 내 꼬장 다 받아 줄 만만한 놈을
어디서 구하겠어.
알바생도 극한 알바라고 거부할지 모르는
오대녀의 병간호를 남편이니까 말없이 다하고
다른 때 같았으면 월요일 새벽에 갔을 남편이
일요일 저녁에 후다닥 청주로 갔다.
내가 그 심정 알것도 같길래 곱게 보내줬다.
가서 쉬고 싶었을것이다.
남편보다 좀 오래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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