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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프니까 중년이다.

by 나경sam 202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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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커피가 마시기 싫을 때가 세 번있었다.

지금까지....

 

둘째가져서 입덧할 때,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꽉 채운 일박이일

 

금요일 저녁부터 아프기 시작한 몸은

38도를 넘는 열과 함께 근육통, 인후통이 함께 와서

자는것도 괴롭고, 눈 뜨고 있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박이일을 보냈다.

 

밥솥에서 쿠쿠가 내 뿜는

밥냄새가 구역질나고

일년에 요리라고는 할 일이 없는 남편이

어쩔수 없이 고기를 볶는 냄새가 속을 뒤집어

모두 나가서 먹고 오라고 하고 싶어도

소리지를 기운이 없었다.

 

이러다 나 죽나봐

코로나 진단 키트 결과 한 줄이었으니

분명 감기일텐데, 감기치고는 독감이다 싶을정도로

무지무지 쎈 놈이 쳐들어와서 널부러진 주말이었다.

 

물론 일도 많았다.

노가다 수준으로 교실의 쓰레기를 버렸고

가림막을 뜯고

애들 책상 아래와 사물함을 열고

남아있는 것들을 버렸다.

놀잇감들을 버릴것과 다시 쓸 것을

구별해서 청소했더니

돌봄 준비기간으로 아이들이

오지 않는 이틀 중 하루를

가뿐히 써버린것이다.

 

석달이었지만 대체라는 이름을 떼고

정식으로 발령이 나서 본 아이들이라

나에게는 첫번째 아이들인 셈이었다.

아이들이란 참 신기한 데가 있어서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하거나

안됐구나 할 이야기도

그들만의 생각으로 접근하면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며칠 전, 갑자기 아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아이가 우리 아빠는 자동차 연구원이야

그러자 어떤 아이가 우리 아빠는 회사다녀

우리 아빠는 자동차 만들어

아빠들이 직업이 다양하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떤 애가 큰소리로

"우리 아빤 배달해"

나 혼자 이건 무슨 분위기지

갑 분 싸가 되어 어색해졌는데

 

나 혼자만 어색해졌고 애들은 난리가 났다.

자장면이 얼마나 맛있는데 형은 좋겠다 라며

가장 최고인 아빠로 등극하신거다.

 


공무원들만 시보기간이 있는 게 아니다.

공무직도 석달의 기간이 말하자면 수습기간이다.

석달이 무사히 끝났다 싶었더니 심한 감기로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자각을 해준것이다.

 

남편을 오밤중에도 깨워서 물떠와라

약 가져와라 곶감 사와라 전복죽 사와라

부려먹고 나는 나았다.

 

그리고 승범이가 아팠다.

 

전복다섯개를 넣고 특 전복죽을 끓였다.

엄마가 나은 후에 아픈 아이는 복있게 아픈 거다.

사온 죽이 아니라 엄마표 전복죽에

복숭아 통조림을 먹게 했다.

 

우리집 아팠을 때 메뉴는 항상 정해졌다.

전복죽에 복숭아 통조림

단 걸 먹게 하면 몸에 기운이 좀 생기고

죽은 전복 만원어치면 사다 먹는 죽 보다

전복양도 많으니

번거롭다 말하면 엄마라고 말하기도 미안할 노릇이다.

 

내장도 다섯개

전복도 다섯개

참기름에 쌀을 볶다가 다섯마리 전복을 넣고

들들 볶다가 물 붓고 지긋이 참고 기다려서

푹 퍼진 전복죽을 먹게했다.

 

내일 아침이면 좀 나아지겠지

젊으니까

감기로 죽게 아팠다고 하면 호들갑이라고 하겠지만

아파보니 감기도 무섭다는 걸 알았다.

 

하여간 내 인생에서 커피 마시기 싫어지면

그땐 끝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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